남자들은 왜 그런다요?
남자들은 왜 그런다요?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0.08.14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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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까닭없이 슬퍼지는
까닭없이 슬퍼지는...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무슨 답을 기대하고 그런 엄청난 질문을 내게 던진 것은 아니었을 게다. 혼자 가만히 생각하면 할수록 속이 상하고 화도 나고, 답답하고 전라도 말로 애통이 터지니까, 무엇이든 한 마디 더 해야만 꽉 막힌 가슴이 열릴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를 힐끗 쳐다보며 그런 질문, 이라기보다는 혼잣말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무슨 바보 같은 정신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인지, 속상함이 가득한 그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내 입에서 맹랑하게도 한 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것은 마치 그녀의 그런 질문을 예상하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너무 자연스러웠고, 그런 말이라도 한 마디 맞장구를 쳐주지 않으면 그녀의 속상함이 배가 됐을 것 같은 느낌조차도 있었다.

”아 그래서 일찍 죽는 거겠죠.“

무슨 생각을 하고서 한 말은 당연히 아니었다. 평소에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런 말을 해놓고 보니 그게 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옆에서 다른 여인이 추임새를 넣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어쩌면 그런 신기한 느낌에 빠져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매 그 말이 딱 정답이요 야?“

추임새를 넣어준 그녀는 무슨 굉장한 진리라도 발견한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활짝 웃었다. 웃음의 시간은 매우 짧았다. 웃자마자 뭔가 다른 것이 찾아와서 그녀의 안면을 확 찡그러트렸다. 웃음과 찡그림 사이의 시간이 너무 짧아서 나는 당혹스러웠지만, 자신의 남편 생각이 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고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남자, 중에서도 남편이란 존재는 이상하다. 괴물도 그런 괴물이 있을까 싶다. 남편 자신이 잘못한 일도 마누라에게 화를 내는 어처구니없는 존재이다. 아들이건 딸이건 자식들의 언행이 마음에 안 들어도 마누라에게 화를 내고, 마누라가 잘못한 일은 당연하게도 마누라에게,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마치 금방 잡아 처먹기라도 할 듯이 화를 낸다.

 

이야기가 있는 시간
이야기가 있는 시간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이게 뭐냐. 왜 그런 것이냐. 그녀는 그런 문제제기를 하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나는 또 한 번 의기가 양양해져서,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또 지껄이고 말았다.

“어서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죠 뭐.”

이것도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생각 없는 말을 토해내고 나니 생각이 생긴다. 인간의 에너지총량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화를 내는 것도 에너지 소모다. 쓸데없이 아무 때나 화를 내는 남편이란 존재는 그러니까 에너지를 낭비 또는 허비하는 거다. 에너지를 그렇게 아무 데나 마구 써버리니, 생명이 단축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거기까지 설명을 하고 나서 내친 김에 사족 하나를 덧붙였다.

“일찍 죽어라도 주니까, 그나마 다행 아닐까요?”

그 순간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 같은 침묵이 돌았다. 이어서 와악, 웃음보가 터졌다. 침묵에서 웃음보가 터지기까지의 시간을 굳이 계량하자면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아따 그러고 봉게 참말로 그런갑소야.”

여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 떠들어대며 저마다의 웃음소리를 날리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배꼽이 빠지도록 와하하 소리를 내다가는 그만 뒤로 벌렁 넘어지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호미로 갯벌을 박박 긁어대며 키득거리고, 또 어떤 사람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은지 모르겠다는 투로 긍게, 긍게, 긍게 소리만 반복하며 히죽거린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머쓱해진 나는 하늘이나 보았다. 그러자 질문 같지 않는 질문을 던졌던 여인이 심각해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으찌케 하믄 그놈의 승질이 죽을께라우?”

 

지쳤다 한숨 자자
지쳤다 한숨 자자.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녀는 아마 남편이 자기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다는 뜻밖의 암시에 소름이 확 돋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할 말이 없고 보니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일을 너무 크게 벌여놓고 말았구나. 어떻게 하지? 다행히도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쨌든 여인들은 내 말을 일종의 진리로 받아들여 버렸다. 그래서 조금은 위안을 느끼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위안을 느낀 뒤에는 불안이 찾아왔다. 남편이 먼저 죽을 수도 있다는 느닷없는 문제를 만난 것이니, 심사가 복잡하게 엉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그런 심난한 마음이 오래 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란 물처럼, 바람처럼, 공기처럼 자유자재한 것이니 어쩌랴. 여기서 저기서, 딱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야말로 이구동성으로, 남편이란 이름을 가진 괴물 같은 존재에 대한 비난과 비판과 성토의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듣는 나로서는 뭐랄까, 황홀도 이런 황홀경이 또 있을까 싶다. 남자인 내가 나 아닌 다른 남자들이 무더기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장면을, 여인들이 떼로 나서서 실컷 욕해주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니 마음에 흡족함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때 느닷없는 의문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세상 모든 남자를 잠재적인 경쟁자 내지 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인가? 또한 나는 이 세상 모든 여자들로부터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해 왔고 지금도 그런 것인가?

이 문제는 복잡하다. 어렵다. 물리학이나 수학처럼 정말로 복잡해서 복잡한 것은 아니고, 어려워서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일정 부분은 내가 나를 속이기도 해야 하는 질문이기 때문에 복잡하고 어려운 것일 뿐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아귀
느닷없이 나타난 아귀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렇다 해도 나는 일단 흐뭇하다. 그녀를 화나게 한 그녀의 남편이 뭐랄까 잘 됐다 이놈아 깨소금이다 하는 뭐 그런 심사도 없지 않다. 내 마음의 이런 못된 복수심의 기원을 굳이 밝히기로 하자면 아마도 술버릇을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나는 술이 취하면 그냥 골아 떨어져 버리지만, 그녀의 남편은 술이 취하면 2차 3차를 외치는 사람이었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 식으로 사람을 엄청나게 괴롭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요즘 일도 안 한다. 자기 아내는 땡볕이나 빗속이나 가리지 않고 바다에 물이 빠지면 나가서 일 원이라도 벌겠다고 갖은 고생을 다하건만, 그는 딱히 무슨 철학 같은 것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핀둥핀둥 놀기만 한다.

그냥 논다고 했지만 정말로 그냥 놀기만 하는 것조차도 아니다. 아내를, 식구를, 가까운 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논다. 물론 그가 의도적으로 식구를, 아내를 괴롭히고자 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 테지만, 세세한 내면이야 어떻든 결과는 매번 그렇게 나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제는 금요일이고, 서울에서 코로나19 등으로 감옥살이를 하다시피 고생하는 딸내미가 오랜만에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어서 내려왔단다. 사실은 엄마도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노라고 했다. 결혼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사는 데만 관심이 있다는 이상한 말로 엄마를 무한히 실망시킨, 그래서 미워죽겠는, 미워서 더더욱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우리 딸이 언제나 오나, 언제나 오나 하고 기다리며 하나씩 둘씩 준비를 해 왔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갯벌을 드나들며 어쩌다 한 마리씩 발견되는 소라와 꼬막도 가져다가 안 먹고 냉동실에 보관했고, 백합도 역시 안 먹고 냉돌실로 직행시켰으며, 느닷없이 나타난 아귀도 한 마리 옹골지게 잡아다가 남편 모르게 숨겼고, 낙지라든가 완전 자연산 장어도 누가 잡았다 하면 달려가서 나 줘, 나한테 팔아, 해서 가져다가 저장해 두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딸내미가 내려온 그날, 그동안 모아둔 모든 것들을 꺼내서 다듬고 데치고 삶고 볶아내고 있는 참인데 이놈의 남편이란 자가 동네 가게에서 술타령을 하고 있다가는 “우리 집에 뭐가 있고 또 뭐도 있더라”하고 자랑을 해버렸다. 자랑을 들은 술꾼들은 당연히 침을 삼켰고, 그러자 이놈의 남편은 그들을 죄다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남편의 그런 행태는 사실 희한한 일도 아니고 낯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딸내미가 결혼에 관심 없다는 선언을 해버린 이후로 나타난 일종의 질병이란 것을 아내는 잘 알고 있었기에 불평불만이 있어도 가능한 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술꾼들 또한 그런저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툭하면 떼를 지어 몰려온다.

술꾼들을 심하게 유혹한 것은 사실 술이었다. 내 돈 주고는 도저히 사먹을 수 없을 것 같은, 듣도 보도 못한 각종 양주가 그 집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랬다. 거기에 양주가 있었다. 비싸기로 소문난 양주도 한두 병이 아니었다.

그 많은 양주는 딸내미가 아직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남편이 사서 모아온 것들이니 벌써 이십 년도 넘었다. 나중에 딸내미가 신랑감을 데려오면 함께 마시겠다고, 돈만 생기면 주류 도매업을 하는 친구를 찾아가서 한 병씩 두 병씩 사다가 진열해 놓은 양주가 찬장 하나를 가득 채울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슬프게도 딸내미는 결혼 같은 걸 왜 해? 해버렸다.

 

흐린 날의 갈매기들
흐린 날의 갈매기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어쨌든 그날은 유난히도 슬프고 화나는 날이었다. 남편이란 작자가 몰고 온 술꾼들 때문에 아내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게 돼버렸으니 아니 슬플 수가 있겠는가. 술꾼이건 뭐건 집에 온 손님인데 가라고 할 수도 없고,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 안주 없다고 할 수도 없어서, 딸내미 주고자 했던 그 모든 것들을 하나씩 둘씩 내놓다 보니 종당에는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다.

술이 술을 부르고 술은 사람을 부른다고, 술꾼들은 그 많은 안주를 게걸스레 먹어댄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찬다는 듯이 오랜만에 내려온 딸내미를 보고 싶어 했고, 남편은 싫다는 딸내미를 기어이 불러내서 술꾼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 정도에서나마 대충 마무리가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술꾼들은 딸내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로 딸내미의 심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

너는 어째서 흔해빠진 남자 하나도 안 데려오느냐, 시집은 안 갈 거냐, 애는 빨리 낳아야지 늦으면 안 된다, 등등 오만 잡소리로 딸 가진 엄마의 속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속이 뒤집어진 것은 물론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딸내미도 당연히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차올랐고, 차오른 화를 풀어낼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술꾼들이 돌아간 뒤에 엄마에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속이 상할대로 상한 엄마는 딸내미에게 호된 질책을 당하고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분노를 남편에게 풀어내고자 했지만 이놈의 남편은 마이동풍에 오불관언이라, 이놈의 세상을 어떻게 사나, 어떻게 사나, 혼자서 그렇게 밤새 슬픔이나 깨무느라 잠은 한숨도 못 자고 물때가 되어 바다로 나온 것이니, 그 분노, 그 슬픔, 그 억울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그렇게 문득, 불현 듯이 나를 쳐다보며 “아따 아저씨 남자들은 어째서 그런다요?”하는 질문, 이라기보다는 혼잣말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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