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연기 속에 가려진 것
소독약 연기 속에 가려진 것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0.08.26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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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편혜영 작가 소설 ‘재와 빨강’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역병이 창궐할 때 인간은 쥐와 무엇이 다른가

항상 ‘쥐’가 문제다. 쥐는 병을 옮긴다. 쥐벼룩이 옮긴 페스트는 중세 유럽을 초토화시켰다. 흑사병이라 불린 ‘페스트(Peste)’로 죽은 이들은 7500만 명에 달한다. 유럽에서만 2500만 명이 죽었다.

평범한 직장인인 남자의 인생도 ‘쥐’ 때문에 꼬였다. 쥐는 남자가 새로 부임한 이국 도시에서 전염병을 옮기는 강력한 매개체였다. 남자는 쥐와 같은 취급을 받는 수준으로 전락한다. 아니 쥐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쥐와 인간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때론 인간이 쥐보다 끔찍하다. 쥐가 전염병을 옮기는 것보다 더 많은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편혜영 작가의 소설 ‘재와 빨강’(도서출판 창비)에서는 인간이 쥐와 같은 존재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편혜영 작가 소설 ‘재와 빨강’
편혜영 작가의 소설 ‘재와 빨강’ ⓒ위클리서울/  창비

평범한 방역업체 직원에게 갑자기 일어난 일

편혜영 작가의 소설 ‘재와 빨강’은 어찌 보면 평범할지도 모르는 한 직장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 끝날 때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 남자 ‘그’는 방역업체의 약품 개발원으로 재직 중이다. 그가 약품을 연구 개발하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속한 회사는 본사에서 개발된 약품을 가져다 국내 기준에 맞게 안정성 실험을 하고 판매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도 역시 기획 및 영업사원에 더 가까웠다.

그가 속한 본사는 해외인 ‘C’국이다. 평범하던 그가 갑자기 본사 C국의 차기 지사장 자리를 염두에 두고 파견됐다. 그가 차기 지사장 후보라는 걸출한 자리를 꿰차게 된 것은 직원들을 휘어잡는 리더십도, 유창한 C국 언어도, 탁월한 업무 능력 때문도 아니었다. 지사장의 집들이 자리에 나타난 한 마리의 회색 쥐 때문이었다.

그가 지사장 집 정원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쥐를 잡았던 것은 특별히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그는 평소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남의 가방을 집어 들어 쥐를 명중시킨 것도 꼭 명중시켜 죽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얼떨결에 그의 손에 죽게 된 쥐는 지사장의 마음에 그를 차기 지사장감으로 낙점한 이유가 됐다. 지사장은 당시 내장이 덜렁거리는 쥐의 꼬리를 잡아서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사내의 모습에 감동했다고 말한다. 쥐는 그의 인생을 이렇게 처음으로 개입한다.

그가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빨리 C국으로 가고 싶었던 이유는 개인 가정사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와 이혼했다. 아내가 없는 집은 더 이상 그가 머물고 싶은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불투명한 가정사를 미뤄둔 채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가 파견된 C국은 심각한 전염병이 돌고 있다. C국 공항의 안내문과 표지판에는 전염병의 위험과 안전수칙이 가득 적혀 있었다. 전염병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증세는 감기 증세와 비슷했다. 감염자들은 기침과 발열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소문이 떠돌았다. 병원균이 신경계를 침입해 점점 의식이 몽롱해지고 나중에는 환각 증세가 심해지다 결국 피를 토하고 죽는다는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나 증세가 마치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와 비슷하다.

우리에게도 코로나19와 관련한 가짜 뉴스가 난립했을 때가 있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소문으로 인해 공포가 두려움이 증대되는 데 있다.

 

KTX서울역 방역작업
KTX서울역 방역작업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인간이 쥐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사냥으로 증명하는 남자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파견된 C국의 본사에서는 그를 부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직원에게 배정된 숙소로 오는 길에 로비에 잠시 둔 캐리어 가방을 분실해 그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핸드폰이 없는 그는 방 안에 있는 유선 전화기가 울리길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처음 본사에서 온 전화는 무조건 ‘대기하라’는 말뿐이었다. 그는 어리석게도 전화를 끊고 나서야 ‘어디로 다시 연락하면 되는지 물어보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C국의 전염병은 점점 심해졌다. 그는 직원 숙소로 지정된 건물에 사실상 격리됐다. 시에서 지급하는 도시락을 먹으며 격리상태로 본사의 전화를 기다리는 수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무작정 나선 거리에서 강도를 당할 뻔했기 때문이다. 전염병으로 망가진 도시는 위험했다.

그래도 아직 그에게는 일상의 삶이 보장됐다. 격리 중이기는 하지만 전염병이 나아지면 그는 다시 본사로 들어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전염병 사태에서도 늘 일상을 기대하는 것처럼 그에게도 그런 평범한 일상이 소중했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쥐보다 못한 삶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되는 급작스러운 사건이 생겼다. 그의 아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가 C국에 오기 전 아파트에서 기르던 개를 그대로 두고 왔다는 생각이 미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는 전처의 남편에게 연락을 해서 아파트 비밀번호를 불러주고는 개를 풀어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한다.

어찌 보면 그의 정신상태는 처음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무리한 부탁이었고 그의 기억은 파탄 그 자체였다.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술 때문이었다고 말하지만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내와 개의 죽음은 그와는 상관없었다. 그렇게 그는 생각했다. 그랬기에 전처의 남편에게 아파트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개를 처분해달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도망을 쳤을까.

그의 부탁대로 아파트에 간 전처의 남편은 죽어있는 전처와 개의 소식을 그에게 전했고 그는 직원 숙소로 들이닥친 경찰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들을 피해 창문을 뛰어내린다.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탈출한 그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리의 부랑자가 되는 길 외에는 없었다. 그는 버려진 옷과 신발을 주워 신고 쥐와 경쟁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다퉜다.

명백히 그의 처지는 쥐보다 못했다. 아무데서나 잠을 자고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을 뒤져 먹이를 구한다는 점에서는 쥐와 같았다. 하지만 쥐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었지만 그는 닥치는 대로 먹었다가 여러 번 탈이 나서 고생했다는 점에서 쥐보다 열등했다.

이미 C국은 전염병으로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쓰레기는 제때 치워지지 않았고 상점이나 약국은 약탈되어 물건이 남아있지 않았다. 공원의 부랑자 관리도 전혀 되지 않았다. 정부는 희뿌연 소독약을 내뿜는 방역차만 내내 가동했다.

전염병은 더러운 생활을 하는 부랑자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전염병의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고 소문은 정확하지 않았다. 부랑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감염자로 추정되는 부랑자들을 ‘처리’했다.

피부병인지 전염병인지 알 수 없는 부랑자가 또 다른 부랑자 무리에 의해 시체운반용 부대인 보디 백(Body bag)에 억지로 씌워 소각장에 던져졌다. 그리고 그 또한 전염병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 하에 소각장 신세가 된다.

소각장에서 벗어난 그는 지상 벤치에서 지하 하수구로 터전을 옮긴다. 전염병에 걸렸다고 판단되는 그는 지사에서 부랑자들조차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끝없이 나락을 빠뜨릴 것만 같은 상황은 어이없게도 쥐로 인해 다시 반전된다.

그는 지하에서 쥐를 잡으며 소일한다. 그가 쥐를 잡은 이유는 그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었기에 쥐를 사냥할 수 있었고 그 우월함은 다른 곳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쥐를 잡는 일은 그에게 복으로 돌아왔다.

전염병이 수그러들지 않은 C국에는 그처럼 쥐를 잘 잡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방역업체의 직원으로 채용됐다. 쥐를 잡은 일이 이름도 없이 쥐와 같이 어둠 속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에서 다시 지상의 빛을 받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해준 셈이다.

전염병의 실체는 알려지지 않았고 백신도 치료제도 없었지만 C국은 일상을 되찾았다. 주인공인 그 또한 쥐를 잡으며 새로운 인생을 C국에서 시작한다. 그가 저지른 죄와는 무관하게 모든 것이 묻힌다.

소설은 ‘재와 빨강’이라는 제목처럼 온통 잿빛과 피비린내가 가득하다. 전염병을 방역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뿌려대는 희뿌연 소독약 연기도 느껴진다. 마치 우리가 지금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전염병 팬데믹(세계 대유행) 과정을 겪으며 미처 보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이 소독약 연기 속에 가려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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