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배범식 노후희망유니온 상임위원장-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1953년 6.25 전쟁이 휴전되고 1955~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가 올해 은퇴기를 맞는다. 57~65세인 이들은 군사정권 시대에 보릿고개와 새마을운동 등을 통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단 30년 만에 대한민국을 세계 11위 경제선진국으로 만들었다. 1987에는 6월항쟁을 통해 민주화의 위업을 이뤄냈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온 이들이 ‘은퇴세대’가 됐다.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올해 한국의 노인 인구가 15%를 넘어섰다. 인구 학자들은 2025년에 20%가 되면서 세계 최고 초고령화 사회가 되고, 30년 후인 2050년이면 60세 이상이 40%로 늘어 2천만 명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부머 세대는 ‘빈곤’(貧困, Poverty)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빈곤율도 OECD 1위다. 연금제도와 노후 기본소득 보장도 꼴찌다. 또 전통적 가족 시스템 붕괴로 외롭고 가난한 노인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불공정한 사회의 노후 세대에게 희망의 빛이 되기 위해 출범한 노후희망유니온 배범식 상임위원장은 “OECD 복지 선진국들은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 공적이전소득(公的移轉所得)을 통해 노인소득을 보전해주는데, 우리나라는 개인이 용돈 벌기나 근로소득 같은 사적이전소득(私的移轉所得)에 의존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노인빈곤율은 무려 45.7%에 달한다. OECD 12.5%보다 4배 높다. 빈곤과 질병, 사회적 냉대 도 노인들이 세상을 등지게 만드는 원인이다. 노인 자살도 세계 1위다. 노인 일자리도 매우 열악하다. 더 심각한 일은 정부와 국회, 언론이 침묵하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 노후희망유니온이 조사한 서울시 노년층 노동실태를 보면, 90.5%가 생계비 마련을 위해 늙어서도 일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5년 기준 한국 노인의 58.5%가 생활비를 본인이나 배우자가 직접 마련하고 있지만, 갈수록 노인 일자리가 매우 열악해지고 있다.”고 밝히는 배범식 위원장을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배 위원장은 베이비부머 맏형 뻘 세대다.

‘건강한 노후, 행복한 미래’를 위해 2014년 9월에 창립한 전국단위 조직인 노후희망유니온 배 범식 위원장을 통해 3만 불 시대 ‘노인소득과 빈곤’ 문제를 짚어보고 고령화 시대 연금제도, 노인주거복지와 인권, 노인 의료비 국가책임제, 맞춤형 노인 일자리, 희망의 사다리를 잃은 청년세대 결혼관과 청년실업 문제 등을 들어본다.

 

- 베이비부머 세대는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를 이룬 우리 사회 중추 세력이다. 근세사에서 일제 식민과 한국전쟁에서 고난을 겪은 선배 세대와 다르게 이들은 전후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국가에 헌신한 공로도 크다. 역사적 재평가를 한다면.

▲ 베이비부머(이하 부머 세대)는 1945년 해방과 6.25 전쟁 등 사회적 격동기 이후에 폭발적으로 태어난 세대다. 1955년부터 1963년까지 8년 동안 매년 약 100만 명이 폭발적으로 출생했고, 그 숫자는 830만 명에 달한다.

바로 우리 위 형님이나 아버지 세대들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정치-사회적 격동기에 큰 고난을 겪은 세대다. 선배 세대들에게 부머 세대는 사실상 진정한 해방의 상징이었고, 미래의 새로운 희망이었다.

형님-아버지 세대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고생한 세대였지만, 전후에 태어난 아이들을 잘 키우면 집안이 잘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희망의 세대가 됐다. 1955년생은 부머 세대 맏형격인데, 이들이 1987년 민주화 운동 당시 길거리에서 맨몸으로 최루탄을 맞으며, 전두환 군사정권으로부터 ‘6.29선언’이라는 정치적 항복을 받아냈고, 끝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

여기에 1987년과 1988⋅1989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오늘날의 민주노총을 구축한 사람들이다. 위의 형님-아버지 세대가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을 겪은 고난의 세대였다면, 부머 세대는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과 G7에 초청되는 선진국 반열에 끌어올린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들이다. 그러나 은퇴하는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가난과 사회적 홀대뿐이다.

 

- 은퇴기를 맞은 부머 세대가 열악한 노후복지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부머 세대들은 신교육과 해외 신문화를 받은 첫 세대다. 당시 미국팝송과 영화, 장발, 통기타, 나팔바지로 상징되는 자유와 문화를 구가했고 ‘치맥’(통닭과 맥주)의 원조이기도 하다. 또 세계 10위권의 경제선진국을 이룩한 주역이었고,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대한민국이 방역선진국임을 전 세계가 재확인했다는 자부심도 크다.

외형적으로 세계 10위권을 자랑하지만, 내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노후연금복지 제도 등을 국가가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1987년 민주화 열망이 폭발하면서 군부체제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됐다. 1년 후 1988년에야 연금제도가 도입됐다.

1995년에 GNP 1만 불 시대가 열렸지만, 수백만 명에 달하는 부머 세대에 대한 연금제도는 무늬만 요란했을 뿐 실질적인 혜택은 매우 빈약했다. 국민연금공단이 밝혔듯이 이들 대부분은 평균 40만 원 안팎의 연금을 받고 있다. 극소수만 1등급 190여만 원을 받는다.

당시에는 ‘해방과 전쟁’ 이후의 시대적 상황이 산업화에 집중하면서 노후세대를 대비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나마 만시지탄이지만 군부정권이 연금제도를 시작했다. 하지만 GNP 3만 불 경제 규모에 비하면, 우리의 연금제도는 선진국에 비교해 상당히 더디고 열악하다.

 

- 고령자 자살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 노화에 따른 병원비 지출은 노인들을 헤어날 수 없는 생활고에 빠뜨린다. 생명보험협회와 보건복지부 등의 조사에 따르면, 평생 지출하는 병원비의 절반 이상을 65세 이후에 지출하고 노인 1인당 평균 연간 3백30만 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령화와 함께 늘어난 치매는 암보다 두려운 병으로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75만 명이 치매 환자로 연간 한 사람당 평균 2,095만 원을 지출하고 있다. 노인 의료비의 국가책임제가 없는 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 절반 이상의 노인들이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노인 자살도 늘고 있다.

최근 10년간 통계를 보면, 젊은이 자살은 완화되었어도 노인층의 자살은 거의 배로 늘었다. 이 문제에 대해 지금 정치권이나 언론은 누구도 문제를 제기조차 하지 않는다. 정작 자신들의 문제로 이슈화해야 할 기존의 노인단체도 문제점을 제기하거나 거론하지 않고 그대로 넘어간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일본만 해도 국가주의라는 특수한 배경 덕택에 노인 문제를 그나마 해결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아직은 멀다. 이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소외와 고독도 우리 사회에 시급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노년층이 겪는 이러한 문제는 단지 노년층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의 문제다.

노년층 빈곤은 경제 활력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또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피할 수 없다. 정부와 국민 모두 합심해 문제의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의 모습은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노후소득과 노인 일자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은퇴세대에게 사회보장은 너무 멀고 열악한 일자리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 오히려 정부는 노인 세대보다 젊은 층 정책이나 일자리에만 집중했다. 하나의 선심성 정책으로 볼 수 있는데, 다분히 젊은 층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 군사정권 당시에 만들어진 대한노인회 같은 보수진영 노인단체를 해체하지 않았고, 현 정부가 그대로 끌어안았다.

재정적 지원도 연 150억 원을 주면서 정치적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서울시도 25억 원 넘게 지원하고 있다. 촛불 시민에 의해 탄생한 정부가 적폐청산을 외면하고 정권 유지에만 사활을 걸고 있다. 과거에 적폐가 됐던 과거사를 묻지도 않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이중성을 보였다. 정치가 갖는 교활한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어느 나라든 진보와 보수가 존재한다. 특히 한국 노령층의 역사와 정치의식이 극보수에 가깝다는데, 어떻게 분석하나.

▲ 고령화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는 지난 10년 사이에 매우 빠르게 늘었다. 저출산 영향도 있지만, 평균수명이 늘면서 노인층이 급증했다. 지난 대선에서 60세 이상 유권자만 24.4%로 1천만 명을 넘었다. 이들은 젊은 시절에 해방과 한국전쟁, 냉전과 군사독재 등 근현대사에서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몸으로 겪은 세대다.

시대적 요구와 정치적 상황에 의해 이들 대부분은 보수적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정치사회 문제와 연관해 집단적 저항경험이 없다. 역사적 경험도 대체로 군사정부 주도로 유포된 이념과 사상, 종교적 영향을 깊게 받았다.

당시 열악한 사회복지에 보완적 역할을 많이 했던 종교 단체들의 영향도 컸다. 특히 일부 기독교 대형종교단체에 의한 보수 이데올로기에 동화돼 버렸다. 그러다가 1997년 IMF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국내 자본시스템 붕괴로 경제가 멈췄고 생계가 어려워졌다.

이런 일련의 글로벌 경제 한파가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대비되면서 과거의 향수에 젖게 만들었다. 그때보다 삶의 처지가 열악해지고 사회경제적 박탈감에 시달려온 노인들이 ‘태극기 집회’를 비롯해 보수 우익이 주도하는 시국 집회에 손쉽게 동원되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 향후 ‘부머 세대’가 ‘진보사회 가늠쇠’가 될까.

▲ 지난 19대 대선 당시 60대 이상 유권자들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심상정 등 소위 민주-진보진영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26%에 그쳤다. 이는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와 1대1로 격돌했던 문재인 후보가 얻은 27.5% 득표율과 큰 차이가 없다.

이렇듯 60대 이상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이 너무 한쪽으로 깊게 편향됐음을 입증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30년 후 2050년이면 60세 이상 노인 인구가 대한민국 인구의 40%를 넘는다는 점이다. 2천만 명으로 늘 전망이다. 인구 학자들은 한국이 세계 최고 극초고령사회가 될 것을 예견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진보진영 정권 유지와 재창출을 위해서는 노후세대의 올바른 역사관과 정치의식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 교육이 절실하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투쟁을 이끌었던 부머 세대가 어느덧 노년기에 들어섰다.

최초로 고등교육을 받았고 국내외 문제에 민감한 이들의 정치 성향이 과거 윗세대와는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예견된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들을 그냥 이대로 놔두면 문제가 된다.

이들이 전국 각 지역의 경로당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면 결국에는 이들도 ‘보수화’에 물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노인=극우 보수’라는 고정프레임을 깨기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잘 조직하고 묶어 세워야 한다. 이것이 노후희망유니온의 중요한 사업의 하나이기도 하다.

 

- ‘이념과 빈곤’의 벽을 깨지 못한 상황에서 노후세대의 최후 보루인 국민연금마저 정경 세력이 결탁해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첫 은퇴기를 맞는 부머 세대에게 월 150만 원은 돼야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과 문화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 40만 원으로는 노후의 삶을 영위하기가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40만 원 연금세대’로 전락한 원인의 하나는 국민연금 통폐합 실패 때문이다.

국가가 노동자, 서민 등 일반 대중보다 군인이나 공무원, 교원에 중점을 두어 지원했고, 이들의 굳건한 충성을 주문했다. 이처럼 관료적 집단이기주의와 정권의 편리에 따라 운용되면서 ‘연금제도’는 기득권층의 텃밭이 되어 버렸다. 노른자위는 힘 있는 계층이 다 빼가고 ‘무늬만 연금’인 빈 껍데기만 남았다.

이제라도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 교원(사학연금) 등을 하나로 묶어서 통폐합해야 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들은 이를 알면서도 방관했다. 한술 더 떠서 삼성 이재용의 경영 승계 사건에서 보듯이 힘없는 국민의 곳간인 연금까지 헐어서 최소 5천여억 원의 손해를 입혔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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