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0.09.04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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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데이비드 맥킨지 감독 영화 ‘제7의 봉인’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이 병에 걸리면 일단 사지가 뒤틀려 경련을 일으켜. 온몸에 난 종기를 쥐어뜯을 정도로 고통이 찾아오는데 손톱으로 핏줄을 잡아 뜯을 정도지.”

14세기 유럽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전염병이 떠돌았다. 바로 흑사병(Peste)이다. 흑사병은 쥐와 같은 야생 설치류에서 전파된 페스트균(Yersinia pestis)에 의한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당시 전 유럽은 흑사병의 폐해가 만연했다. 길거리에 쓰러진 채로 방치된 시체들이 마을마다 산처럼 쌓였다.

영화 ‘제7의 봉인' 포스터 

1957년 잉그리드 베리만(Ingmar Bergman) 감독이 그려낸 흑백의 영화 ‘제7의 봉인(The Seventh Seal)’은 흑사병(Peste)을 ‘신의 저주’라고 생각하고 참회하겠다는 어리석은 인간들과 그로 인해 더욱 커지는 죽음의 참상을 잘 나타낸다.

죽음으로 내몰리면서도 신을 간절히 찾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영화가 다루는 14세기 중엽은 십자군 전쟁이 끝날 무렵이다. 사람들이 전쟁보다 전염병으로 더 많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무려 300년이 걸린 종교전쟁은 그 어떠한 명분도 지켜내지 못하고 역병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마을을 결과물로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신을 찾았고 신을 갈구했다. 종기에 난 상처를 손으로 쥐어뜯으면서도,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들은 신에게 자신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전염병은 야생의 설치류로부터 사람에게 전파됐다. 균은 환자의 비말과 배설물을 통해 번진다. 오로지 환자와의 격리만이 살길이다. 지금 말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최선의 방역인 셈이다.

신종 코로나감염증바이러스-19(코로나19)로 연일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는 현대와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 그렇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사람들은 모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누가 환자인지도 모르는 체 서로 촘촘히 어깨를 대고 앉아 신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신을 찬양했다. 행렬을 이끄는 이는 침을 튀기며 “이 병은 신이 주신 천벌”이라며 “참회하라”라고 선동했다.

거짓말과 같이 600년 전 상황이 작금의 현실과 오버랩된다. 당시의 상황은 최첨단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낸 지금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성공적으로 방어하던 코로나19는 도심 대규모 집회를 시발점으로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연일 관련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이들은 방역을 방해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쓰며 훼방을 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며 궤변을 늘어놨다.

영화로 돌아가 보자. 주인공 안토니우스(막스 폰 시도우 분)는 십자군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오랜 전쟁으로 그는 몹시 지쳐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을 갈구했다. 그는 전쟁과 역병의 참상을 묵도하며 과연 ‘신이 정말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과 간절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던 차였다.

고향으로 가기 전 말과 휴식을 취하던 바닷가에서 그는 검은색 옷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뒤집어쓴 한 중년의 남성과 마주한다. 그는 자신을 ‘죽음’이라고 했다. 죽음은 어디에나 있었다. 길가에도 방앗간에서도 이발소에서도 성당에서도 사람들은 죽어 나갔다. 죽음이 그들을 데리고 갔다.

 

ⓒ위클리서울
영화 ‘제7의 봉인' 스틸컷

 

안토니우스 또한 죽음이 낯설지 않다. 죽음은 안토니우스에게 체스를 두자고 제안한다. 안토니우스도 이렇게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풀고 싶은 문제가 있었다. 죽음과의 체스 게임을 통해 그는 생을 유예 받고 계속 여행을 하게 된다.

신은 정말 있을까, 죽음의 사자를 두고 내기를 시작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흑사병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줬다. 고향을 돌아가던 길에 들렸던 한 마을의 성당 프레스코 벽화에는 흑사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안토니우스의 종자 엔스는 화가에게 벽화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흑사병은 오한, 고열, 호흡 곤란을 시작으로 달걀만한 종창을 동반한다. 사람들은 종기를 짜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벽화 속 사람들은 고통으로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다. 화가는 실상이 그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참혹하다고 말한다.

흑사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그림 옆에는 거리 행렬이 그려져 있다. 행렬 앞에는 십자가를 맨 사람들이 서고 중간에는 종교 지도자로 보이는 이가 설교를 하고 있다. 앞선 이들을 뒤에 선 이들이 채찍으로 때리고 있다. 행렬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거리 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울부짖으며 자신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며 노래하는 모습이다.

당시에는 흑사병이 세상의 종말의 신호라고 여기는 경향이 컸다. 종교 지도자들은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신이 벌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리 행렬은 ‘참회 행렬’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속죄 퍼포먼스’였다. 이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죄를 회개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약초를 캐서 마을 사람들을 치료한 작고 어린 소녀는 병을 치료했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렸다. 어린 소녀는 머리에 칼을 차고 사지가 묶인 채로 조롱받고 폭행당했다. 이렇듯 과학에 무지한 이들은 전염병의 원인은 엉뚱한 곳에 돌리며 외면했다. 그 결과 흑사병은 유럽에서만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흑사병이 돌아도 일상은 유지된다. 마을 공터에는 광대들이 무대를 꾸며놓고 사람들을 모은다. 피리를 불고 춤을 춘다. 이들은 광대 요프의 가족들이다. 고통으로 점철된 생의 비극 속에서 광대 요프와 그의 아내 미아, 돌쟁이 아기 미카엘을 만난 안토니우스는 처음으로 인간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따스함에 미소를 짓는다.

안토니우스와 그의 종자 엔스는 고향으로 가는 길 수많은 참상을 보면서 신의 존재에 대해 더욱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타나는 죽음. 죽음은 또 안토니우스를 찾아온다. 안토니우스는 죽음과의 체스 게임에서 말을 뒤집어 판을 엉망으로 만든 후 죽음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 틈을 타 요프 가족은 마차를 타고 황급히 죽음 근처를 떠난다. 광대 요프 가족과 만난 후 안토니우스는 광대 가족을 통해 희망을 봤기 때문에 이들만은 살아남길 바란 것이다.

 

영화 ‘제7의 봉인' 스틸컷
영화 ‘제7의 봉인' 스틸컷
영화 ‘제7의 봉인' 스틸컷
영화 ‘제7의 봉인' 스틸컷

광대 요프 가족과 헤어진 안토니우스는 결국 고향을 찾아 자신의 성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수십 년 전에 전쟁으로 이별을 고해야 했던 부인과 마주한다. 다른 이들은 전염병을 피해 모두 성을 떠난 상태다. 그의 부인의 눈은 경건함과 평안함이 담겨있다. 그는 남편을 맞이하고 함께 죽음을 결심한 상태였을 것이다.

이들 일행의 만찬은 소박하다. 마지막 식사가 되었을 그 만찬장에 역시 죽음이 찾아온다. 더 이상 체스 게임은 없다. 죽음은 이들 모두의 목숨을 가져간다.

죽음을 마주한 이들 일행은 결연한 상태다. 이들 눈에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폭포처럼 흐른다. 두려움, 공포, 체념, 좌절과 신을 만날 수 있다는 어떤 쾌락과 희열 같은 감정이 동시에 표현된다. 배우들의 명연기에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다.

마지막 영화의 장면은 죽음의 낫을 든 사신이 젤 앞에 서서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이다. 안토니우스 일행은 각각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죽음을 따른다. ‘죽음의 무도’라고 불리는 이들의 행렬은 단연 최고 명장면이다.

이들의 죽음의 춤을 바라보는 사람은 체스 말에 정신이 팔린 죽음의 눈을 피해 간신히 도망친 광대 ‘요프’이다. 부인인 미아가 무엇을 보고 있냐는 물음에 요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린다.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가족들이 혹시라도 잘못될까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난다.

요프 가족은 안토니우스의 희망이자 감독의 희망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러한 고통의 시간을 맞고 있는 우리들의 희망이다. 아름답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광대 요프 가족이 살아서 밝은 햇살이 비치는 바닷가 해변을 돌아가는 장면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을 결말이다.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거짓된 말로 신을 모욕하는 자들은 현실에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돌아보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사람들과 만나지 않아야 한다. 과학을 통해 빨리 질병을 차단하고 치료하는 것만이 과학이 부재했던 600년 전 무지했던 사람들과는 다른 현대인이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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