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회고(金井懷古)’ 시를 읽으며
‘금정회고(金井懷古)’ 시를 읽으며
  • 박석무
  • 승인 2020.09.0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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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박석무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박석무]  다산을 공부하다 보면 대단한 다산의 시문학(詩文學)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난번 홍성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하다 다산이 외직으로 근무했던 금정역이 있던 곳을 방문했노라는 내용을 기억하리라 믿습니다. 『여유당전서』의 시문집을 읽으며, 금정도찰방으로 근무했던 5개월 동안 그곳에서 지었던 다산의 시를 살펴보니 60여 수가 훨씬 넘는 많은 시가 보입니다. 연작시가 많아 60편이 실제로는 100수가 훨씬 넘을 정도입니다.

청양·보령·홍성 등 그 지방의 아름다운 강과 산에 대한 시가 많고, 명승지의 누각이나 정자에 올라 읊은 시도 많으며, 온양의 봉곡사에서 학회를 열어 학술대회를 개최할 때에도 친구들에게 시를 지어 증정하였으니, 그 지역의 명승·인물들에 대한 내용이 많아 역사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습니다. 더구나 그곳에서 만나 친구로 지내던 오국진(吳國鎭) 권기(權夔) 두 사람이 전해준 환곡정책의 비리와 부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분노를 참지 못해 지었던 「오·권 두 벗이 공주 창곡의 부패한 행정 때문에 백성들이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실정을 크게 외치기에 그런 내용으로 장편 삼십 운을 짓는다」라는 긴 제목의 시는 다산시의 대표작 중의 하나였습니다. 다산시의 진면목이 보이는 시입니다. 또 기행문을 남겼기 때문에, 시문을 통해서 그가 살았던 행적을 찾아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부여를 지나면 「부여회고」, 개성을 지나면 「송도회고」, 금정에 있을 때에는 「금정회고」를 읊어 역사와 문화와 지역과 인물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하여, 시 한 편으로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금정회고」는 금정이라는 샘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읊은 내용입니다. 제목 바로 아래 주를 달았습니다. “금정은 청양현 북쪽에 있다. 이 샘은 백제의 임금이 마시던 우물이었다.”라고 말하여 의자왕이 마셨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음을 사실로 확인해주고 있는 글입니다.

 

  그 시절 좋은 샘물 왕궁으로 바칠 적에                          當年玉溜進王宮

  백마강 깊은 물에 서린 기운 웅대했네         白馬江深伯氣雄

  말에 탄 수군 장수 멀리 먼지 날리고         一騎飛塵調水遠

  만조백관 술을 내려 모두 함께 술잔 들었네       百官揚觶賜沾同

  무지개 갠 우물벽 이끼 자라 파랗고                               虹銷古甃莓苔綠

  비에 씻긴 낡은 우물 담쟁이풀 불그스름                        雨洗荒眢薜荔紅

  자온대 아랫길에 머리 돌려 바라보니                            回首自溫臺下路

  저문 연기 속에 도르래소리 끊기네                                轆轤聲斷暮煙中

 

의자왕이 마셨다는 금정 샘물, 우물벽에 이끼가 끼고 담쟁이 넝쿨이 얽혀 있음은 오늘 보는 금정 그대로 모습입니다. 의자왕이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는 자온대(自溫臺), 그런 역사적 사실이 모두 우리의 옛 역사여서 더욱 재미가 있습니다.

 

천하의 절경이라는 보령 충청수영성 안에 있던 ‘영보정(永保亭)’에 대해서는 시도 여러편이지만 기행의 글도 읽습니다. 많은 시 중에서 자신의 신세를 읊은 짤막한 시는 지금의 우리 마음까지 아프게 해주는 내용입니다.

 

 「자소(自笑)」, 홀로 웃는다는 시입니다. 

 

  웃노라 내 인생 흰머리도 나기전에                             自笑吾生鬢未班

  험악한 태항산 길로 수레 모는 격                               太行車轍苦間關

  천 권 책 독파하여 대궐에 들어가고                            破書千卷入金闕

  산속이지만 집 한 칸 장만해두었는데                          買宅一區留碧山

  몸과 그림자 함께 바닷가로 내려오고                          形與影隣來海上

  명성 때문에 일어난 비방 세상에 가득했네                  謗隨名至滿人間

  비 피하려 누각에 베개 높여 누웠으니                         小樓値雨成高臥

  찰방이라는 말직 벼슬 온종일 한가롭네                      似是馬曹終日閒

 

문과에 급제하여 보람있는 벼슬에도 오르고, 서울 산비탈에 집도 한칸 마련하여 살만한 처지인데, 이름 조금 낫다고 비방에 휩싸여 미관말직인 찰방 벼슬살이 신세를 한탄한 내용이 애처롭습니다. 중상 모략으로 괜찮은 인재들이 고난에 싸이는 일은 예나 이제나 같은 일, 언제쯤 그런 세상에서 벗어날 날이 올까요.

 

※태항산(太行山)은 중국의 유명한 협곡이 있는 산 이름.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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