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0.09.10 10: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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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남편의 고향은 전라도다. 경상도 여자가 전라도 남자와 만나 별 탈 없이 살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식문화였다. 이는 내가 경상도 음식에 입맛 들여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식재료의 범주를 크게 두지 않으셨던 엄마의 영향도 있었을 테고 먹는 일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나의 식생활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시집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식재료들이 많았다. 시집 식구들은 곱창을 전골로 해서 먹었고 닭똥집을 소금에 찍어 먹었다. 피부에 좋다며 껍데기란 것을 구워 먹기도 하고 빨간 양념에 조리된 형태로 먹기도 했다. 그 껍데기가 돼지 껍데기란 것을 알고 어떻게 돼지피부를 먹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그러한 음식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맛있는 걸 했다며 나를 불러 앉히셨다. 커다란 솥단지 뚜껑을 여는 순간 차곡차곡 포개어진, 수십 마리의 것은 족히 되어 보이는 닭의 발들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발들을 하나씩 손에 쥐고 생선뼈 발라내 듯 발톱들을 퉤퉤 뱉어가며 맛나게 먹어대던 남편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김치의 종류도 참 많았다. 고구마줄기, 민들레 잎이 김치의 재료가 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씀바귀는 노래 가사에나 나오는 풀데기로만 알았다. 하지만 난 아무리 노력을 해도 편협한 식재료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음식 솜씨는 도무지 늘 생각이 없는 똥손인지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잘하는 맛집을 알아두는 게 최선이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한 번은 남편이 고들빼기김치가 생각난다고 했다. 고들빼기김치도 시어머니가 곧잘 하는 김치였는데 나도 어렸을 때 먹어본 듯 했지만 흔한 기억은 아니다. 담그는 과정도 여타의 김치와는 달랐다. 목마른 이가 우물을 판다고, 남편은 시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는지 어느 날 고들빼기김치 한 통을 퇴근길에 들고 왔다. 자식들 중에서도 큰 아들 사랑이 제일로 지극한 시어머니는 남편이 먹고 싶다는 말에 며칠이 걸리는 그 김치를 담가 내셨을 것이다.

“당신은 좋겠수. 고들빼기 먹고 싶다고 하면 담가 주시는 엄마 있어서….”

부러웠지만 부러우면 지는 것 같아서 일부러 안 부러운 척 툭 내던진 말 한마디가 오히려 엄청 부러워 죽겠다가 돼버렸다. 엄마는 자식이 원하면 뭐든 해주고 싶은 그런 존재 아닌가. 자식은 기쁜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고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의지하고 싶고 알고 보면 나도 그러한 자식의 엄마이다.

얼마 전, 딸아이가 기겁하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평소에 좀처럼 흥분하는 법이 없고 냉소적이기 까지 한 아이가 그 날은 땅이 꺼졌는지 하늘이 솟았는지 천지가 개벽을 했는지 전화를 받자마자 고래고래 엄마를 불러대는 바람에 등골이 다 서늘했더랬다. 내용인 즉, 방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관리인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약을 뿌리고 친구들이랑 합심해서 잡으라고 했다.

“무서워어어어어”

딸아이 말 한마디에 나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차키를 집어 들었다.

제대로 된 옷으로 갈아입을 틈도 없이 마스크를 챙기고 약국에서 바퀴벌레 퇴치약을 산 뒤 퇴근 시간이 절정에 이른 길을 나섰다. 딸아이 방을 침범한 바퀴벌레 한 마리를 때려잡기 위해서. 그 날은 하늘이 수문을 개방하고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 물을 마구잡이로 퍼 붓던 날이었다. 얼마나 세차게 퍼붓던지 내려치던 빗줄기가 땅에 처박히는 순간 그 반동으로 길 위의 모든 것들이 들어 올려 질것만 같았다. 저녁 어스름은 퍼붓는 빗줄기 때문에 더 짙어졌고 와이퍼를 가장 빠른 단계로 작동시켰지만 차선을 구분하기는 힘들었다. 극심한 정체로 길 위에서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성인이 된 딸아이 방에 바퀴벌레 한 마리를 잡아주겠다고 앞뒤 볼 것도 없이 비가 내리퍼붓는 길을 나선 내 모습에 어처구니도 없고 잘 하는 짓인가 의구심도 생겼다. 헛웃음이 나온다. 방 구석구석 약을 뿌린 뒤 간단한 청소를 하고 있자니 내 뒤에서 뭔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손톱 크기만 한 그 놈은 살겠다고 버둥거리며 어느 구석에선가 뛰쳐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호기롭게 손바닥으로 탁 내리쳐 잡을 만한 배짱은 개나 줘버렸기 때문에 몇 겹의 휴지를 둘둘 말아 그 놈을 움켜쥐었다. 행여나 그 놈이 핵폭탄 연기 퍼지듯 마구마구 커져서 나를 덮칠 것 같은 두려움에 얼른 변기에 던져버리고 물을 내렸다. 하얗게 질렸던 딸아이는 살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평소 잘 하지 않던 말을 건넨다.

“엄마 진짜 진짜 고마워.”

하지만 나는 딸아이에게 차마 하지 못하고 목구멍을 지나 식도를 거쳐 십이지장쯤 되는 구석 어딘가로 내려 보낸 말이 있었다.

“엄마도…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위클리서울/창비

극단적인 공포 앞에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엄마였을 것이다. 엄마는 뭐든 다 해결해줄 것 같고 그 어떤 공포의 대상도 다 물리쳐 주리라 믿었을 테다. 마른하늘에 번쩍거리며 온 우주를 집어 삼킬 듯한 번개소리에 놀라 엄마 품속으로 기어들던 어린 시절 나처럼 말이다. 고들빼기김치가 먹고 싶다고 시어머니에게 말할 수 있는 남편에게도, 바퀴벌레의 출현에 기겁을 하며 나를 찾던 딸아이에게도 엄마의 존재는 그냥 거기에 있기만 해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될 것이다. 나는 엄마와 그렇게 돈독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울 때가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밀가루 풀을 쑤어 담근 뽀얗고 자박한 국물의 엄마표 열무김치가 생각난다. 감염 취약시설로 분류되어 면회가 금지된 지 반년이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열무김치 담그는 프로그램 활동을 했다며 복지사께서 보내주신 사진으로밖에 엄마를 만날 수가 없다. 살아내느라 힘들었을 엄마는 온 우주를 집어삼킬 것 같은 마른하늘의 날벼락 소리에 새파랗게 질려 있는 나를 안아주지는 않으셨다. 그럴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 지금은 이해한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중 실종된 엄마가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당신의 엄마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다가 속절없이 모든 것을 놓쳐버린 엄마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엄마의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밀가루 풀을 쑤어 담근 뽀얗고 자박한 국물의 열무김치가 먹고 싶은 때문만은 아니다. 남편에게 그렇듯, 딸아이에게 그렇듯, 나에게도 그냥 그렇게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그냥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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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RU 2020-09-11 06:35:39
바퀴벌레 퇴치를 위해 빗길을 달려 출동하셨다는게 참 멋집니다. 저는 집에 벌레 나오면 저희 누나한테 한 번 전화해보고 싶어지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