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불신을 선언한 딸내미의 일기장
결혼 불신을 선언한 딸내미의 일기장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0.09.18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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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갯벌 출근중
갯벌 출근중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인생살이라는 것이 참 고달프구나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가 하면 또, 인생살이라는 게 참 기쁘구나 하는 순간도 있다. 고달픔과 기쁨이 항상 즉각 출동 상태로 대기하고 있다가 이번에는 너, 다음에는 나, 하는 식으로 적절한 시간에 방문해 준다는 느낌조차도 있다.

내게 은근한 악취미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요즈음이다. 뭐 그리 놀랍지는 않다. 타인의 슬픔과 괴로움과 안타까움을 접하면서 혼자 남몰래 고개를 끄덕인 게 어디 한두 번이랴. 심지어는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굳이 그 현장을 몇 번씩이나 찾아가서 살펴보고 ‘아 이것이 이래서 그랬던 것이로구나’, 했던 자가 나라는 사람이다.

요즘 내가 나가는 갯벌 현장에서의 최대 관심 키워드 둘을 꼽자면 사위와 손주라는 단어이다. 사위가 일등인지 손주가 일등인지 구별하기는 어렵다. 가끔 사돈양반이란 단어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끔이고, 그마저도 사위와 손주를 강조할 목적으로 차용하는 부가적 개념으로서일 뿐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아들 하나 딸 하나 둘 있는 자식들이 모두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도 결혼 같은 데는 관심이 없다 한다고, 이런 세상을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폭폭 내쉬던 아주머니가 지난 3월 꽃소식이 들려오는 계절에 손녀를 보았다. 울거나 웃거나 두 가지밖에 모르던 갓난쟁이 그 녀석이 어느새 뼈가 굵어서 지금은 혼자 힘으로 할머니의 침대 위를 기어 올라가기도 하고, 떨어지지도 않고 용케 어떻게 내려 내려오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아슬하게 재미있는지 혼자 보기 아깝다는 얘기를 여러 가지 버전으로 되풀이 한다.

“아이고 또 그놈의 소리. 그만 좀 해. 그만 어?”

“아이고 미안, 미안, 내가 그만 또 깜빡 했네.”

그만 좀 하라고 꽥 소리를 지른 아주머니는 하늘을 본다. 누가 뭐라고 한 마디만 잘못 하면 죽이겠다고 덤비거나, 금방 와악 하고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다. 미안하다고 말한 아주머니는 무안해 하면서도 안면에 가득한 웃음기를 대번에 삭제하지는 못하고 히죽, 히죽 하는 형식으로 조금씩 아깝다는 듯이 감추어 간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다. 일 분도 채 안 돼서 다시 손녀 얘기를 꺼내게 되고, 그러면 다시 그만, 그만, 소리가 나온다.

작년 봄까지만 해도 두 여인은 같은 걱정과 같은 낙담으로 만나면 서로의 눈을 보며 위로하고 위로를 받곤 했었다. 두 집의 딸이 생일은 달라도 태어난 해는 같은 동갑네기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닌 사이였기 때문이다. 두 아이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다른 대학을 다녔는데 졸업도 전에 직장을 잡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괴상한 얘기를 틈만 나면 노래처럼 강조하기 시작했다.

 

출근행렬
출근행렬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작업준비
작업준비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결혼 얘기만 꺼내면 집에도 안와 버릴 거니까 알아서 해 엄마, 응?”

협박도 그런 협박이 없었다. 원 세상에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단 말이냐.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이럴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내 딸은 내 딸이라고, 내 딸 이상일 수도 없고 이하일 수도 없다는 엄마들의 믿음은 무참히 훼손되었다. 그래서 두 엄마는 틈만 나면 서로를 찾아가서 이심전심을 노래하고 동병상련의 쓰라림을 어루만졌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정말로 사위 보기는 틀렸나보다 하고 포기한 지도 벌써 몇 년째인 지난 해 어느 하루 한 집의 딸내미가 주말도 아니고 휴가철도 아니건만 예고도 없이 엄마를 찾아왔다. 금방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 같은 표정으로 대문을 들어선 딸내미는 아빠가 안 보이는 곳으로 엄마를 데려가는가 싶더니 불문곡직하고 엄마 어떻게 해. 나 어떻게 해,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란다.

다 자란 딸내미를 대하는 엄마의 감이랄까 촉이랄까, 직관이란 대단히도 신기하고 오묘한 것이어서, 엄마는 그 즉시 알아차렸다. 내 딸이 아이를 가졌구나 하고.

옛날 같으면 시집도 안 간 딸내미가 임신이라니 이게 뭔 사태냐 하고 난리법석을 떨었겠지만,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엄마는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해치운 결혼식의 결과는 놀라워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히죽히죽 웃어야 할 일이 날마다 생겼다.

제대로 큰 기쁨은 아들도 아닌 남자가 사위 자격으로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안부전화를 해 온다는 것이고, 주말만 되면 달려와서 용돈을 주고 간다는 것이고,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손녀딸이 울어댄 탓으로 밤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 아무 데나 가서 하고 또 해도 지칠 줄을 모르는 체력을 갖게 됐다는 점이었다.

그 엄마가 그렇게 날마다 젊어지는 것 같은 삶을 새로 개척하게 됐다면 다른 엄마, 그러니까 여전히 결혼 불가를 외치는 딸내미를 둔 엄마의 삶은 서글프기가 한이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처지라고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고 위로를 받던 사람이 느닷없는 사위에 손녀딸까지 갖게 됐다고 난리법석을 떨어대니 이게 뭔 꼴이냐.

그녀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우울증이 되살아나면 어쩌나, 두려웠지만 달리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우울증, 그것은 생각만으로 살이 떨리고 앞뒤좌우가 모두 캄캄해지는 그녀의 과거지사였다.

 

봉선화
봉선화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서울에 살던 시절 그녀는 툭하면 아파트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그런 노래를 흥얼거렸더란다. 그러던 어느 하루 그녀는 봉선화가 보고 싶었고, 봉선화가 피는 곳에 가서 살고 싶었고, 봉선화 한 송이 볼 수도 없는 서울이 너무도 싫어져 버렸다. 그래서 남편을 졸랐다. 시골로 가자고.

이른바 산후 우울증 탓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유야 무엇이건 그녀는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볶았다. 삼 년여 걸친 아내의 보챔을 견디다 못한 남편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부부가 다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사춘기도 안 돼서부터 도시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었다. 시골 살림이 얼마나 고단한가에 대한 훈련이 거의 안 돼 있었던 셈이다. 꽃 피고 새 우는 시골이 좋다는 말이야 입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해도, 살아갈 방법이 나 여기서 너희를 기다렸어 하고 나와 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몸에 스며든 도시물을 빼는 데만도 몇 년이 소요되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먹고살 방법을 모색하던 남편은 개장사에게 팔 목적으로 개를 키우기도 하고, 직접 개장사에 뛰어들었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염전 일을 다니기도 하고 해태 양식장 일을 하는 등으로 나름 동분서주하고 있었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내의 눈에 보이는 남편은 그저 무능력자일 뿐이었다.

게다가 주량까지 날마다 늘어간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더니 핑계는 좋았다. 처자식들과 함께 굶어죽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찾자면 사람을 많이 알아둬야 하고, 사람을 많이 알아두자면 술이 제일이라는 거였다.

아내는 남편의 그런 말을 듣는 순간에는 알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술이 취해서 들어오는 남편은 그렇게도 미워 죽겠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 냄새가 싫었다. 술 냄새 자체는 딱히 싫고 말 것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남편의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는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은 못 참아주겠다는 마음이었다.

 

작업중
작업중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마무리작업
마무리작업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내일은 안 참아. 절대로 안 참아.

그녀는 날마다 각오를 다졌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견뎌준다 해도 내일은 어림없다는 내용의 경고를 수도 없이 날렸다. 하지만 매번 그 순간뿐이었다. 남편은 매번 알았다고 하면서도 술이 취해서 들어왔고, 아내는 매번 이번 한 번 뿐이라고 하면서도 술이 취해 들어오는 남편을 쫓아내 버리거나 자기 자신이 뛰쳐나가 버리지는 못했다.

사람이야 그러건 말건 세월은 잘도 흘렀다. 그녀는 날마다 죽을 것 같았지만 죽지 않았다. 죽기는커녕 건강이 완전 회복되었고, 남편 이상으로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는 등 가정경제의 중심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불행은 끝나고 행복이 시작되고 있었다. 너무나 행복해서 과거의 불행 같은 돌아볼 시간조차도 없었다.

그렇게도 행복한 어느 하루 그녀는 놀라운 문건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딸내미가 다 자라서 서울의 유명 대학에 합격한 뒤의 일이었다. 이제 멋드러진 사위감을 찾아야 한다는 설렘으로 충만해 있던 시기였다. 서울 소재의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떠난 딸내미의 방을 정리하던 중에 그것이 툭 튀어나왔다.

“내가 파리일까. 엄마는 나를 파리채로 때린다. 파리채에 맞은 파리처럼 그렇게, 납작하게 나를 죽이려는 것일까.”

무슨 고고학적 자료처럼 색깔도 음울하게 퇴색한, 부분적으로 곰팡이까지 피었다가 사라진 흔적이 역력한 초등학생용 공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무심히,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휘리릭 넘기는 중인데 그런 문장 하나가 보이더란다. 알고 보니 그것은 딸내미의 일기장이었다. 일기장은 한두 권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날 종일토록 오래된 일기장을 탐색해 들어갔다.

“엄마가 나를 파리채로 때리는 이유를 오늘 알았다. 내가 파리 같은 것이라서 파리채로 나를 때린 게 아니었다. 아빠를 때려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아빠가 술이 취하면 엄마가 슬프고, 엄마가 슬프면 내가 파리채로 맞아야 한다.”

 

퇴근준비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엄마야 세상에 이게 뭔 일이냐. 그녀는 놀랐다. 그리고 슬펐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이제 그만 봐야겠다, 하고 일기장을 모조리 상자 안에 집어놓고 끈으로 묶었지만, 결국은 다시 풀었다. 그리하여 기어이, 그 문장까지 보고 말았다.

“나는 절대로 결혼 같은 것은 안 하겠다. 자기 딸을 파리채로 때리기나 해야 하는 그런 결혼을 뭣 땜에 하냐?”

머잖아 사위를 볼 수도 있다는 설렘을 가득 안고 있는 그녀에게 그 한 문장은 세상이 끝났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이제 전전긍긍하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방학이나 주말에 딸내미가 내려오면 차마 그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역시 세월이란 것은 약이었다. 다시 평온한 일상이 펼쳐졌다. 일기장을 보고 난 뒤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라 해도, 그냥저냥 대충 견뎌낼 수는 있었다. 딸내미는 일기 내용과는 달리 명랑했고, 공부도 제법 잘해서 학교 추천으로 유럽 몇 나라에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창창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딸내미가 유명 기업에 취업을 한 뒤부터였다. 졸업도 전에 스카웃이란 이름으로 취직을 한 딸내미가 회사의 지원으로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는 그런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불안했다.

“너는 어째서 남자친구 한 명도 안 데려와 주냐?”

웃는 얼굴로, 농담을 가장해서 슬쩍 운을 떠보았다. 그 답변이 놀라웠다.

“난 결혼 같은 데 관심 없어 엄마.”

딸내미의 그 한 마디가 엄마의 입에 자물쇠를 철컥, 채워버렸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게 된 그녀는 이제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한다. 돈을 벌어서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없다. 집에 있으면 속이 벌렁거려서, 그래서 그냥 집을 나오는 것일 뿐이다.

물이 빠진 뒤의 갯벌은 사람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온갖 것들을 품고 있다. 그 중에 무엇이든 골라서 잡아다가 내밀면 돈으로 바꿔준다. 이런 단순반복 운동을 몇 년 더 하고 나면, 그러면 아마 그녀에게도 무엇인가 해답이 보이겠지만, 일단 지금은 사위 자랑에 손녀 자랑으로 날밤이 새는 줄 모르는 옛 친구를 실컷 미워해주는 일인 것 같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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