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알바, 캐디의 추억
지옥의 알바, 캐디의 추억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0.09.21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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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pixabay.com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알바를 몇 개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골프장 캐디였다. 피자집에서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 해봤자 하루 2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던 때라 하루 일당이 4만원이 넘는 돈을 받던 캐디는 어찌 보면 황금알바였다. 암튼 그래서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캐디면접을 보러 갔다.

“안경을 꼈네요. 이 일은 안경 끼면 못 합니다.”

“아. 그럼 콘택트렌즈 끼고 오면 할 수 있나요?”

“네, 안경만 안 끼면 가능합니다.”

나는 그 길로 엄마를 안경점에 끌고 가 렌즈를 맞춰 꼈다. 그런 다음 다시 면접을 봐서 드디어 캐디알바를 하게 됐다. 기뻤다. 이제 돈 쓸어 담을 일만 남았으니까. 지금에야 골프장에 가면 그 뭐냐 ‘골프 카’라는 게 있어서 사람도 골프가방도 싣고 다니지만 그때만 해도 그 무거운 골프가방을 캐디가 어깨에 메고 손님들을 따라 다녀야 했던 시절이었다. 한 여름 땡볕에 그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학교 다닐 때 무겁다고 책가방에 책도 안 넣고 다니던 내가) 가만 서있기만 해도 힘든데 필드에서 그걸 들고 18홀, 36홀을 돌다보면 거의 혼이 나갈 지경이 된다. 거기다 날아간 골프공의 행방을 손님대신 발 빠르게 찾아내어 ‘여깄습니다!!’ 라고 알려주기까지 해야 되니 진짜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할 일은 또 있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속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환하게 웃으며 ‘굿 샷~~~!!’이라고 열렬한 박수까지 쳐드려야 했다. 나 같은 초짜에 저질체력의 캐디에게 그나마 단비 같은 희망이 있다면 필드 중간 중간에 있는 쉼터(간이매점)에 들르는 일인데 손님들이 음료수나 간단한 간식을 사먹으며 캐디에게도 그런 것들을 나눠주곤 했다.

“언니도 이거 하나 먹을래?”

(묻긴 뭘 물어요. 숨 넘어가겠구만!) 나는 탄산음료나 떡 따위의 간식을 받아들고 허겁지겁 입에다 우겨넣었다. 안 그랬다간 필드에서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 갈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주 고약한 손님도 있었다는 거다. 오뉴월 바짝 타들어가는 여린 새싹(?)같은 내 사정 따윈 아랑곳없이 ‘오늘 공 잘 맞는다. 후딱 돌고 저녁 거하게 먹자!!’라며 쉼터도 들리지 않는 이런 부류의 손님을 만나게 되면 그날은 말 그대로 지옥체험이 돼버린다. 진짜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숨은 턱까지 차고 시원한 얼음물 한 모금이면 영혼까지 팔아버릴 수 있을 만큼 갈증에 시달렸다. 지금 생각해도 진짜 열악한 노동환경이었다. 목은 마르지, 어깨는 빠질 것처럼 아프지, 눈앞에 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헛것이 보이는 와중에 캐디인 나는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그놈의 골프공까지 찾아내야하고 때에 따라 적절하게 우드와 아이언을 뽑아 건네고 거리에 따라 1번에서 9번까지 중에 어떤 게 적절한지 조언까지 해야 한다는 거다. 아무것도 모르고 어버버버 하다간 이런 말까지 들어야 했다. ‘오늘 언니 잘못 만났다. 여기 물이 왜 이래됐냐. 아무나 막 갖다 쓰나봐.’

이런 막말하는 사람일수록 매점도 잘 안 들린다고 보면 된다. 필통에서 연필 찾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골프를 쳐본 사람도 아닌데 어찌 그걸 손님 입맛에 딱딱 맞춰줄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 내 눈엔 테니스공보다 작은 하얀 공을 때리고 굴려 구멍 속에 넣는 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손님들끼린 아주 목숨을 걸고 한다는 거다. 개중에 어떤 사람은 자기가 못 치는 걸 날씨 탓, 캐디 탓, 하다하다 마누라 탓까지 해가며 온갖 승질을 다 부리기도 했다(그럴 땐 우드로 뒤통수를 한 대 까버리는 상상을 하기도…). 18홀을 어찌어찌 겨우 다 돌고 필드를 빠져나오면 어깨는 내려앉고 식도는 말라붙고 다리는 천근만근… 그야말로 초죽음이 돼버린다. 그나마 일이 끝나고 나면 내 손에 쥐어지는 만 원짜리 몇 장 때문에 그 힘든 순간을 버티며 따라다녔다.

 

ⓒ위클리서울/ JTBC뉴스룸 캡쳐

캐디 알바를 하던 무렵, 나는 부산에 살다 서울로 이사를 온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압구정동 H아파트에 살게 됐다. 서울로 집을 구하러 온 엄마가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기사님. 서울에서 살기 좋은 동네 소개 좀 시켜주세요’라고 했고 ‘살기 좋은’을 ‘잘 사는’으로 잘못 알아들은 아저씨가 엄마를 압구정동의 한 부동산 앞에 내려주었고 수단 좋은 부동산 아주머니가 급매로 나온 좋은 물건이 있는데 오늘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한다며 순진한 엄마를 몰아붙이는 바람에 대출까지 받아 집을 사버렸고 우리 가족은 빼도 박도 못하고 거기서 살게 됐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말이 왜 나오냐면, 골프장 캐디 일에 적응해 가며 우드와 아이언의 번호를 외우고 ‘사장님 굿 샷!!’을 자연스럽게 외치고 매점에 들러 콜라 한 잔 하고 가자고 손님에게 아양도 부릴 수 있을 만큼 살아남기에 열심이던 나를 클럽 매니저가 어느 날 사무실로 불렀기 때문이다.

“김양미씨.”

“넹.”

“집주소가 진짜 여기 맞아요?”

“넹.”

“여기 왜 왔어요(미심쩍은 눈)?”

“돈 벌려고 왔는데요.”

“진짜요?”

“넹.”

“일단. 오늘까지만 나오는 걸로 합시다.”

“아니 왜요?!!”

“암튼. 일이 그렇게 됐어요.”

만약 지금 같았으면 조목조목 따지며 사무실 바닥에 드러눕기라도 했을 텐데 그때만 해도 쓸데없이 순진했던 나는 별 저항도 한번 못해보고 그렇게 싹둑 잘려버리고 말았다. 그 비싼 콘택트렌즈까지 맞춰 끼고 돈 한번 제대로 긁어 모아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잘린 이유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골프장 손님 중에 가끔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러니까 맘에 드는 캐디언니야(이렇게 부르는 손님들이 꽤 있었음)를 밖에서 따로 만나자고 불러냈고 그 바람에 얼마 전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문제의 손님 주소지가 H아파트였고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가당치 않은 그 이유 때문에 내가 잘린 거라고 골프장 캐디선배님이 말해주었다(뭐 이런 x같은 경우가). 거기다 라이벌 클럽의 사장 딸이 위장취업을 했다는 소문도 있었대나 뭐래나…. 그때 나는 아빠도 돌아가시고 없었고 집 주소만 거기였을 뿐, 엄마가 용돈도 잘 안 줘서 이런 지옥의 알바까지 하러왔고 골프장의 비리나 캐디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던 단무지(단순무식지랄)였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뭐 암튼. 캐디 알바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오늘 같이 비가 오던 날. 풀숲에서 골프공을 찾아 헤매며 렌즈가 빠져나올까봐 눈도 맘대로 못 비비고 얼굴에 흘러내리던 빗물을 가끔 빨아먹으며 하루 일당 4만원을 벌기 위해 뻘짓하던 그때가 생각났다. 코로나 때문에 요즘 알바자리 구하기도 많이 힘들어졌다는데…. 아무튼 알바생의 인권이 지켜지는 살기 좋은 세상이 오길 바래보며 대한민국 알바생들이여 모두 모두 힘내고 굿 샷!!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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