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눈의 바이러스, 악처럼 번지다
빨간 눈의 바이러스, 악처럼 번지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0.09.22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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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정유정 작가 소설 ‘28’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쿠키’, ‘쉬퍼’, ‘링고’, ‘스타’… 사랑스러운 이름을 가진 개들이 모두 죽었다. 사랑하는 연인 ‘스타’를 죽인 인간을 향해 인간의 목덜미에 송곳 같은 이빨을 박았던 ‘링고’는 연인 ‘스타’의 주인과 함께 죽어 나동그라졌다.

정유정 작가의 장편소설 ‘28’(은행나무 펴냄)은 통해 개를 통해 사람이 걸리는 인수공통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반려동물인 개가 치사율 100%의 전염병의 근원이 된다는 설정이다.

반려동물인 개에게서 인간이 치명적인 병을 옮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위치이기에 벌이는 수많은 만행들이 소설을 통해 고발된다.

 

ⓒ위클리서울/ 은행나무

개들이 가져온 빨간 눈의 바이러스

소설 ‘28’의 배경이 되는 가상도시 ‘화양’은 다섯 개 산과 열두 개 봉우리 안에 들어앉은 분지 도시다. 주인공 서재형은 화양시 백운산 기슭에서 유기동물보호소이자 동물병원이기도 한 드림랜드를 운영하는 수의사이다.

재형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알래스카 교포 1.5세대다. 그는 과거 알래스카에서는 개썰매 경주인 ‘아이디타 로드’에 출전한 최초의 한국인 머셔(개썰매꾼)였다. 재형은 개썰매 경주에서 자신들의 썰매 개들을 늑대 떼 속에 미끼로 버려두고 홀로 살아 돌아왔다. 누구보다도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자신을 따르던 개들을 혹한의 얼음 속에 버리고 돌아온 까닭은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이 더욱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알래스카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S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이제는 유기견 구조에 인생을 바치고 있다. 매일 밤 꿈에 나타나 아직도 추운 겨울 벌판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충직한 개들에 대한 속죄 행위다.

인간만 바라보며 인간만을 사랑하는 동물이 바로 ‘개’다. 개는 인간과 과거부터 특수한 관계를 맺어왔다. 과학자들은 석기시대부터 인간과 개가 관계를 지어왔다고 주장한다. 늑대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늑대들이 인간과 어울리면서 개로 변화했다는 가설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개와 늑대는 하나의 공동조상이 있고 어느 시점에서부터 인가 개와 늑대가 서로 다르게 진화해왔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사실이든지 간에 현대 사회로 오면서 인간과 개와의 관계는 더욱 끈끈하고 진해졌다.

하지만 개들이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사랑하는 반려동물이지만 곁에 둘 수 없을 것이다. 처분 대상이다. 우리는 데자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구제역에 걸린 수많은 소와 돼지들이 죽지도 못한 체 땅 속에서 살아있는 상태로 묻혀 ‘살처분’되는 끔찍한 광경을.

병은 ‘빨간 눈’을 하고 나타났다. 환자들의 눈 흰자위는 핏빛이었다. 안구 자체가 선지 덩어리처럼 거무튀튀했다. 눈꺼풀과 눈두덩에는 누런 고름이 차올랐다. 개들이 먼저 죽었다. 이어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빨간 눈의 원흉이 개라는 말이 돌았다. 소문은 사실로 확인됐다. 개가 사람에게 전파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전파했다. ‘인수공통 전염병’이었다. 원래 다른 종 사이에는 전염병이 전파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수공통전염병은 동물이 인간에게 병을 옮긴다. 지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 또한 인수공통 전염병이다.

인수공통 전염병은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병원균으로 지목되는 동물들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반려견들이 줄줄이 버려졌다. 하나같이 사랑을 듬뿍 받고 소중하게 대우받으며 살아왔을 가족과 다름없는 동물들이었다. 하지만 주인들은 병이 걸리는 것을 두려워하며 개들을 버렸다.

군인들은 ‘유기견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개를 향해 총을 쏴댔다. 개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어떤 전염병이든 인간에게 위해가 된다면 그 원인으로 지목된 종은 살아남을 수 없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개를 죽였다.

국가가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한 일은 ‘봉쇄’였다. 더 이상 병이 전파되지 않도록 화양 시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군인들은 이동 통로마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람들이 다른 도시로 가는 통로를 막았다. 봉쇄된 도시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에게는 발포 명령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죽어갔다. 먼저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었다. 격리자들은 트레일러에서 죽어갔다. 병원에서는 병에 걸린 이들이 차례차례 죽음을 맞이했다.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인간이 어떤 권리로 이렇게 생명을 징벌할 수 있는가

사람들과 개들 모두 죽었다. 아이스링크장은 거대한 시신들의 무덤이 됐다. 이제는 장례를 치를 장례지도사도, 시신을 거둘 의사나 간호사도 없었다. 모두 전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치안이 부재한 무간지옥이 되어버린 도시에 사람들은 광기에 전염됐다. 개 다음은 사람이다. 사람은 다 같은 위치에 있지 않았다. 전염병이 발발해 무정부 상태와 비슷하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여성의 존재는 개와 비슷한 위치로 전락한다.

무정부 상태에서 쓰레기와 같은 인간들은 자신의 이성과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을 저지른다. 그들은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려 나온 여성을 위협해 집으로 들어가게 한 다음 며칠에 걸쳐 여성을 집단 강간하고 집안을 초토화시킨다. 쓰레기보다 못한 인간들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여성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병원에서 사람을 살리던 간호사였다. 여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가 죽음을 결심한 것은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 악을 전파하는 인간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부모를 살해하고 방화를 저질렀다. 그릇된 신념과 정신상태가 그를 패륜아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지만 결국 아들의 손에 죽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아들의 악의 독주는 막았다.

하지만 언제든지 ‘악’은 다시 생길 수 있다. 누구든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세상이 어지러워진 상태에서 악은 부활한다. 악은 인간이다. 평상시에는 인간의 마음 저편에 똬리 틀고 있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진 다음에는 악을 전파한다.

‘링고’는 이러한 인간에게 경종을 울리는 늑대개다. 링고는 처참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링고는 투견판에서 상대방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살아남았다. 링고는 인간에 대해 적개심을 품은 개다. 개의 특성보다는 늑대의 특성을 더 가지고 있는 듯하다. 링고가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면 어떤 서사가 이뤄질까. 작가는 그런 마음으로 링고를 사람처럼 그린다.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링고는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결국 인간을 살해한다.

개가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개를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처참한 순간들이 소설 내내 이어진다. 이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감정의 서사가 묶여있다. 결국 링고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된 재형의 마지막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염병으로 일그러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처참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이기적인 인간들과 이기적인 것에 대항하며 끝까지 이빨을 세웠던 링고가 사람을 살해했다는 잔인한 결말보다 더 아련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 더욱 더 추악하고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그리고 또 그렇게 시간은 지나간다. 어둡고 더럽고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그런 순간도 지나간다.

작가는 ‘28’이라는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28일간 화양시에서 일어난 잿빛 디스토피아를 개라는 인간과 특수한 관계를 가진 존재를 통해 치밀하게 그려낸다. 소설은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또 얼마나 많은 동물과 자연에게 위해를 가하고 있는지 새삼 일깨워준다.

연일 수천 명이 죽어가고 있는 최악의 전염병 코로나19 앞에서도 그 두려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만 좋다고 혹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떼로 몰려다니며 쓰레기를 버리고 비말을 전파하고 있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작가는 전염병이라는 주제를 통해 다시 한 번 인간의 본성에 대해 되짚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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