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작년 이맘때, 이름과 달리 맛은 좋지 않은 월병(月饼,yuèbǐng)을 먹다 버린 이후 올해는 월병의 ‘ㅇ’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다. 그러나 인간의 호기심은 끝이 없나 보다. 지인이 문화체험 형식으로 열리는 월병 만들기 행사를 추천하기에 처음에는 ‘내 사전에 월병이란 없다’고 생각했다가 전단을 보는 순간, ‘이렇게 생긴 월병이면 맛있지 않을까?’하고 넘어가 버린 것이다.

 

월병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전단 – 한 집 당 여섯 개를 가져갈 수 있는데 20위안(한화 약 3400원)이란 저렴한 가격이 마음에 들었고, 색깔이 알록달록한 걸로 보아 작년의 고기포(肉松, ròusōng: 소나 돼지 따위의 살코기 또는 생선을 말려 간장·향료 따위를 넣고 보송보송하게 잘게 찢어 만든 식품)나 계란 노른자(蛋黄, dànhuáng) 따위는 안 들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사진도 사진이지만 지인이 작년 행사에서 월병을 엄청 맛있게 먹었다는 경험담을 나눈 게 선택을 부추겼다. 행사가 토요일인 데다 가족 참여가 가능하다고 해서 아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이전에 만들어 본 다식처럼 생겼다며, 초코 맛(갈색 월병을 보고 무조건 초코 맛이라고 생각한 게다)은 자기가 먹겠다고 가자고 한다.

대망의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전날 하루 종일 내린 비로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아이가 하룻밤 새 코감기에 걸려버렸다. 결국 나 혼자 가족 대표로 출동한다. 체험교실에 도착하니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고, 다들 아이들이 한둘씩 달려있다. 종횡무진 아이들과 분주한 부모들 사이에서 본의 아니게 혼자만의 여유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분명 오늘 음식은 중국식 월병인데, 강사는 금발머리 러시아인이다. 서너 명의 중국인들은 옆에서 보조할 뿐이다. 신기함을 뒤로 하고, 월병 재료를 살핀다. 재료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먼저 외피의 재료는 다음과 같다.(월병 6개 기준)

- 찹쌀가루 47그램
- 쌀가루 20그램
- 녹말가루 10그램
- 설탕 13그램
- 우유 55그램
- 코코넛 우유 25그램
- 연유 18그램
- 식용유 5그램

커다란 그릇에 가루→액체의 순서대로 차례차례 넣은 뒤 주걱으로 잘 저어서 섞기만 하면 된다. 그 다음에 그릇에 랩을 씌우고 이쑤시개로 골고루 랩에 구멍을 낸 뒤 찜통에 20분 쪄내면 된다. 20분간 쪄낸 반죽이 충분히 식으면 꺼내서 한 덩이가 30그램이 되게 떼어낸 뒤 공처럼 둥글게 뭉쳐놓는다.

 

한 참가 아동의 도움을 받아 재료를 계량 중인 강사. 알고 보니 러시아에서 디저트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사진 제공: 행사 주관자 Aimee)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그 다음은 소를 준비할 차례다. 총 세 가지 소가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초콜릿 소와 단팥 소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 계란노른자 소였지만 모른 체하고 초콜릿 소와 단팥 소만 세 개씩 만들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소는 이미 만들어져 있어 계량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소는 한 덩이가 25그램이 되게 떼어낸 뒤 역시 공처럼 둥글게 뭉쳐놓는다.

 

열심히 월병을 만드는 수강생들.(사진 제공: 행사 주관자 Aimee)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반죽과 소가 모두 준비되면 반죽을 만두피처럼 밀대로 밀어서 평평하게 만든 뒤 그 위에 소를 올리고 소룡포(小笼包, xiǎolóngbāo) 모양으로 잘 감싸준다. 그 다음에는 월병틀(月饼模子, yuèbĭngmúzĭ)에다가 넣고 찍어내기만 하면 된다.

 

타오바오에서 판매중인 월병틀 – 원형, 정방형 등 틀의 모양부터 글씨, 문양, 꽃 등 안의 그림까지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 월병의 크기에 따라 틀의 크기도 달라진다. (출처: 타오바오)
타오바오에서 판매중인 월병틀 – 원형, 정방형 등 틀의 모양부터 글씨, 문양, 꽃 등 안의 그림까지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 월병의 크기에 따라 틀의 크기도 달라진다. (출처: 타오바오)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집에 가서 다시 쪄먹어야 하는 건가 했더니, 이미 반죽이 다 쪄진 거라 바로 먹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행사 참가자들 시식용으로 미리 만들어둔 월병(사진 제공: 행사 도우미 李勇)
행사 참가자들 시식용으로 미리 만들어둔 월병(사진 제공: 행사 도우미 李勇) ⓒ위클리서울/ 류지연 기자 

소를 집에서 만들 수도 있지만 요즘은 편리한 시대이므로 온/오프라인 어디서든 소를 살 수 있다. 가장 흔한 단팥 소(红豆馅, hóngdòuxiàn)같은 경우는 집 근처 슈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초콜릿 소(巧克力馅, qiǎokèlìxiàn)나 계란노른자 소(蛋黄馅, dànhuángxiàn)같은 경우는 베이킹 재료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타오바오에서 검색해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맛을 시도해보고 싶다면 ‘월병소 재료’(月饼馅料, yuèbĭng xiàn liào)를 검색해보면 된다. 참깨 소, 자색고구마 소, 밤 소, 파인애플 소, 녹차 소, 녹두 소 같은 익히 예상 가능한 맛부터 시작해서 연밥 소, 포도주 소 같은 모험형을 거쳐 우유·참깨 소, 카레·콩 소같은 퓨전형까지 각양각색이다.

그렇지만 잊지 마시라.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월병 초보 시도자에게는 해당하지 않으니. 경험자로서 월병 시식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모양과 색깔만 보지 말고 반드시 포장지를 뒤집어 어떤 맛인지 확인하고 먹기를 당부한다. 고기 월병 또한 많이 파는데, 그 고기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기 맛과는 다를 수 있으니 반드시 본인이 평소 중국 음식에 익숙한지, 중국의 향신료가 입에 맞는지 재고한 후 시도하기를 바란다. 덧붙이자면 대부분의 고기가공식품 맛이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 햄이나 소시지, 심지어 깡통햄마저도 아무거나 샀다가는 먹지 못하고 버리는 수가 종종 있다. 가급적 익숙한 맛을 찾는다면 햄이나 소시지, 베이컨 등은 ‘미국식’(美式, Měishì)이라고 적힌 제품을 고르면 된다. 소시지같은 경우는 닭고기 소시지를 고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쁜 빨간 상자에 담긴 여섯 개의 월병과 함께 월병 만들기 체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만드는 법이 간단해서 집에서 아이와 함께 놀이 겸 만들어 봐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소와 외피가 거의 1:1이다 보니 크기에 비해 생각보다 칼로리는 상당히 높을 거라는 느낌이다. 하긴 우리네 명절음식도 칼로리로 치자면 뒤지지 않지만. 뭐든 특별한 음식은 조금씩 즐겨야 하나 보다.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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