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밖에 모르는 남자와 많은 것을 아는 여자가 만났을 때
하나밖에 모르는 남자와 많은 것을 아는 여자가 만났을 때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0.09.29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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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그물청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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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하루 남자를 떠난 여인이 돌아왔다는 얘기로 갯마을이 발칵 뒤집어졌다. 알고 보니 남자를 만나고자 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리워하는 것은 남자라기보다 꽃게였다. 추석 즈음이면 꽃게가 살이 올라 맛이 좋다는 것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 남자와 함께 살면서 얻은 지식이었다. 꽃게의 맛을 제대로 안 것도 남자와 함께 살면서였다. 남자는 그 방면의 전문가였다.

여자는 아마 남자를 떠난 뒤에도 꽃게의 맛을 가끔 그리워했던 모양이다. 하긴 그래서 특별한 연고도 남아 있지 않은 마을을 다시 찾았겠지. 어쨌든 그녀는 한때 여보라고 불렀던, 꽃게 전문가인 그 남자를 만나야 했다. 그래서 그 시절 그녀 자신이 살림을 살았던 동네슈퍼 앞으로 갔다. 가던 중에 딱 부딪혔다.

기역자로 구부러진 골목에서, 바다에서 막 돌아오는 중인 남자와 도시에서 막 내려오는 중인 여자가 정면으로 만나버렸다. 두 사람 다 흠칫 놀랐다. 어쩌면 눈으로 보기보다 코와 귀 가 먼저 알아보고 긴장했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순간적으로 숨을 곳을 찾았고, 남자는 순간적으로 잡아먹을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꽃게 팔아요?”

숨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깨달은 여자가 머뭇거리는 투로 물었다.

“없어. 다 팔았어.”

남자는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는 투로 약 이 초 정도 여자를 째려보다가 퉁명하게 뱉어내듯이 말했고, 그리고는 장화 소리도 요란하게 터벅터벅 휙휙 여자를 비켜 가버렸다. 여자는 그 뒤에 대고 그럼 언제 있느냐고 물었고, 남자는 내일이나 모레나, 어쩌면 글피에도 없을지 모른다고 여전히 뱉어내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터벅터벅 거칠게 멀어져 갔다.

두 남녀의 그런 작은 실랑이 장면은 골목 바로 옆집 아주머니의 눈과 귀에 고스란히 녹화되고 녹음되었다. 두 남녀의 만남과 살림살이 그리고 이별의 과정은 안 그래도 가끔 회자되곤 하는 갯마을 사람들의 이야깃거리였다.

 

대기중인 모터보트로 가서
대기중인 모터보트로 가서
모터보트를 끌어내고
모터보트를 끌어내고

떠난 여자가 꽃게를 구실로 마을에 얼굴을 내밀었다는 얘기는 그러니까 최신 소식인 셈이었다. 그날 해가 지기 전에 그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온 동네로 퍼져나갔고, 다음 날 오전에는 갯마을 사람이 아닌 그 누구라도 갯벌에 나가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체 가구 수가 이백이 훨씬 넘고, 인구 또한 천여 명에 육박하는 갯마을에는 대를 이어 갯일을 하는 토박이도 많지만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사람도 많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은 대체로 어느 날 문득 보였다가 어느 날 홀연 사라져 버린다. 사라진 내력을 상세하게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도 당연히 많다. 그래서 이야기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살이 붙고, 없던 뼈도 생기고, 심지어는 날개도 생긴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확실하지가 않다. 하도 많은 버전이 있어서 추론조차도 어렵다. 어떤 사람은 틈만 나면 다방에 가서 종일을 보내다가 꾀어낸 여자라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단란주점에서 단란하게 서로의 술잔을 채워주던 관계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식이 둘이나 딸린 여자가 하는 일도 없고 돈도 없어 굶어죽을 지경에 처한 것을 보다 못해 데려온 것이라고도 하는데 구체적인 근거를 대는 사람은 없었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확실하게 이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은 오직 하나, 혼자 서 가게일 보랴 고기잡이 나가랴, 정신없이 바쁘게 살던 남자가 어느 하루 여자를 데려왔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아들 하나 딸 하나 애가 둘이나 딸린 여자였다. 사람들은 덕담 반 농담 반으로 별다른 수고도 없이 자식을 둘이나 한꺼번에 얻었으니 횡재한 거라고 했고, 남자는 부언설명 하나 없이 그저 히죽히죽 웃기나 하다가 겨우 한 마디 내놓았다.

“아 이놈의 가게를 누가 봐줄 것이여.”

가게 봐줄 사람이 필요해서 여자를 데려왔다는 남자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런대로 일리는 있어 보였다. 가게는 남자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개인 소유가 아니었다. 과거의 새마을 연쇄점을 폐지하지 못하고 이어가는 것으로,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년씩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보건 출장소까지 따로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도 구멍가게 하나 없는 현실이 반영된 일종의 마을 공동 사업이었다.

 

느긋하게 담배를 물고
느긋하게 담배를 물고

공동 사업이긴 해도 수익까지 공동인 것은 아니었다. 의무적으로 운영하는 2년 동안의 수익금은 전액 운영자 몫이 되는 구조였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수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어서, 온 종일 장사를 해봐야 갯벌에 나가서 한나절 조개잡이를 하는 수익의 반에도 못 미쳤다. 게다가 그 일은 끝없이 잔돈을 계산해야 하고, 외상장부를 수십 권씩 마치 고리대금 업자처럼 만들어놓고 들여다봐야만 하는, 딱히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도 피곤은 곱으로 쌓이는 괴상한 노동이었다.

어쨌든 남자는 여자를 데려온 즉시 가게 일을 그녀에게 맡기고 자신은 고기잡이에만 전념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연상케 할 정도로 큰 키에 커다란 덩치 그리고 큰 주먹을 갖고 있으면서 거칠고 위험한 바다 일로 근육까지 탄탄하게 다져진 남자에게 가게는 사실 지옥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남자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왜 그토록 가게 일에 넌덜머리를 내는지 알게 된다. 우선 남자의 고기잡이 방식이 아무 데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도구와 탈 것을 이용하며, 팽팽한 긴장감이 있는가 하면 느슨한 해찰이 있고, 아차하면 죽을 것 같은 위험한 순간들이 썩 괜찮은 낭만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굳이 비유를 하자면 철인삼종 경기 같은 역동성 플러스 중독성이 있다는 점이다.

자, 우선 썰물 때 밀려나가는 바닷물을 따라서 경운기를 타고 달린다. 가다가 종아리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활기차게 헤엄치는 꽃게를 발견하면 후딱 멈춰서 건져 올리기도 하고, 필리핀 인근 해역의 영향으로 물이 더디게 나갈 때는 아예 경운기를 세워놓고 꽃게든 뭐든 어린 것들은 보고도 못 본 척 건너뛰고 큰 것들은 재빠른 몸놀림을 잡아 올린다.

경운기를 타고 달리는 거리는 대략 3킬로미터, 거기 어디에 남자의 소중한 자산인 모터보트가 대기하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모터보트를 거기까지 운행해 온 것은 아니다. 물이 들어오면 바로 바다가 되고, 물이 나가면 모래밭이 되기도 하는 바로 거기, 그 주변이 그의 선착장인 셈이다.

이 선착장은 아무나 이용할 수가 없다. 주인이 따로 있어서 아무나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바다와 갯벌 그리고 바람의 삼각함수를 제대로 잘 알지 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감히 아무나 끼어들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경운기를 타고
경운기를 타고

관건은 시간이다. 물때를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 경운기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빠져 있어야 하고, 모터보트를 가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물이 차 있어야 한다. 없으면서도 있어야 하고, 있으면서도 없어야 하는 이 기막힌 물리법칙을 활용 내지 응용하는 기술은 어디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어도 좋다는 식의 무절제한 도전의식이 먼저 있었고, 죽지 않고 살고 보니 관심에 깊이와 애정이 생겼고, 보는 눈이 섬세해지면서 냉철한 판단력으로 이어진 것이니 결국은 자기 자신이 스승인 셈이다.

갯벌은 사막과도 같아서 지형의 변화가 매우 심하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나면 없었던 구릉이나 계곡이 생기기도 하고, 있었던 것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이럴 때 초보자는 길을 잃고 당황한다. 경험자도 밤이 깊을 때는 길을 잃지만 그리 크게 당황하지는 않는다.

길은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능숙한 어부는 눈을 감고서도 가고자 하는 길을 놓치지 않는다. 실제로도 남자는 하늘에 구름이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을 때는 앞을 보는 게 아니라 구름을 보면서 경운기를 달린다. 달리다 보면 경운기 바퀴와 엔진 소리가 전해오는 느낌이 달라진다. 여기서 그는 앞을 본다.

이십여 미터 전방에 모터보트가 물결에 살살 흔들거리며 서 있다. 남자는 경운기 시동을 끄고 내린다. 몇 가지 도구를 챙겨서 어깨에 메고, 대기 중인 모터보트를 향해 걷다 보면 종아리를 적시던 물은 어느새 무릎을 적시고, 이내 허벅지까지 차오른다. 어기적걸음으로 다가가서 모터보터를 잡아두고 있는 닻을 걷어 올리고, 비치해둔 장대를 물속에 넣어 수심이 적당하다 싶은 곳까지 삿대질을 해서 나아간 다음 비로소 모터를 가동한다.

물결을 헤치며 쾌속으로 달리는 모터보트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경운기를 타고 달리면서 바라보는 풍경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어깨가 들썩거린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십여 분쯤 달리다 보면 남자의 어장이라 할 수 있는 그물이 삐죽삐죽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당연히 들어올 때의 역순이다. 간단하게 그냥 역순인 것은 아니고, 온 몸의 감각기관을 열어놓고 냉정하게 계산을 해야만 한다. 그물에 걸린 고기가 엄청나게 많다고 혼자서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어서도 안 되고, 그물에 걸린 고기가 너무 형편없다고 담배나 뻑뻑 피워대느라 조류가 바뀌고 있음을 몰라서도 안 된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그에 맞는 콧노래나 흥얼거리며 일사분란하게 척, 척, 척,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얼른 빠져 나와야지 안 그러면 경운기와 함께 바다에 잠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는 것이다.

 

삿대를 저어서
삿대를 저어서

한편, 가게를 맡길 목적으로 여자를 데려왔다는 남자의 주장과는 영 다르게, 여자는 가게 일 같은 데는 아무 관심이 없는 것으로 이내 밝혀졌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항은 얼굴 마사지였다. 손님이 있거나 없거나 온갖 것들을 얼굴에 붙여놓고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는 시간을 천국처럼 즐기는 여자의 꿈은 놀랍게도 자동차를 몰고 지구 끝까지 달리는 것이었을 뿐, 가게건 뭐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그녀의 아들이요 딸이었다.

아들은 중학교 3학년이요 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두 아이 모두 가난한 엄마를 둔 탓으로 간식에 목이 말라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빵이면 빵, 아이스크림이면 아이스크림, 등등 없는 것이 없는 가게는 일종의 천국인 셈이었다. 자랑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의 특성상 이 천국은 자기들만 누리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온갖 친구들을 데려와서 마구잡이로 퍼 주기까지 하고 있으니, 그런 꼴을 보는 마을 사람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 여자와 여자가 데려온 아이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돈 먹는 하마들일 뿐, 남자의 살림살이에 무슨 도움이 되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손톱 발톱이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 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자를 마중은커녕 반듯한 자세로 드러누운 채 오늘은 뭐 잡혔어? 따위 질문이나 그것도 건성으로 던지고 마는 여자에게 무슨 미래를 기대하겠냐는 거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걱정을 가끔 넌지시 귀띔의 형식으로 전달해 보기도 했지만, 남자는 오불관언이요 마이동풍으로 들은 체도 안 했다.

여자는 갯마을에 들어온 지 두 달이 채 안 돼서부터 남자를 조르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몰고 지구 끝까지 달리는 게 소원이긴 하지만 지금 그것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하루에 한 시간씩만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그러니 승용차를 사 달라는 것이었다.

남자는 흥, 흥, 소리 정도로 여자의 소원을 깨끗이 무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틈만 나면 졸라대는 여자의 입술이 귀여워 보여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하여튼 어느 하루 여자를 데리고 나가서 덜컥, 승용차 계약을 해 버렸다. 그것도 경차나 소형이 아닌 중형 세단으로.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놀랐다. 돈이 생기면 읍내나 광주의 단란주점 같은 데 가서 다 써버리는 줄 알았던 남자가 저축을 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을 사람들은 무엇보다 놀라웠다.

 

쾌속으로 달린다
쾌속으로 달린다.

어디 한 번 크게 아프지도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를 나가서 모아놓은 돈이 그동안 얼마나 되는 알 수 없었지만, 남자는 이제 모아놓은 그 돈을 써야 할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최신식 노트북에 아이폰을 요구하는 아들에게도 돈을 써야 했고, 딸내미에게도 아들 못지않은 만큼의 돈을 써야 했고, 혼자서 드라이브를 즐기는 아내 명색의 여자에게도 당연히 차량 유지비 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쥐어주어야만 했다.

하루 한 시간씩의 드라이브를 소원했던 여자의 소원은 동물도 아니고 식물도 아니건만 매일, 매달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었다. 하루 한 시간이 세 시간이 되고 다섯 시간이 되고, 열 시간이 되는가 싶더니 외박으로 확대되었고, 외박도 처음에는 하룻밤 정도였던 것이 두세 달 뒤에는 이틀, 사흘이 되는가 싶더니 마침내는 승용차에 낮선 남자를 태우고 마을에 나타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바로 그날 사건이 터졌다. 자기 아내의 차에 낯선 남자가 타고 있다는 것을 안 남자는 거두절미하고 여자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솥뚜껑만한 손바닥을 쫙 펴서 번쩍 들었다. 그대로 내려치면 여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남자는 치켜든 손을 슬그머니 도로 내리면서 “너 새끼들 데리고 나가” 한 마디 하고는 홱 돌아섰다. 그리고는 그 길로 자기가 집을 나가버렸다.

집을 나간 남자는 사흘 뒤에 돌아왔다. 집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그 뒤로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남자는 겉으로 표현을 안 했다 뿐 속으로는 나름 큰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인지 피골이 상접해져 버렸다. 살은 한 점도 없이 뼈만 남은 것 같은 몸으로 바다를 나가고 들어오기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남자에게 느닷없이 나타나서 꽃게 운운하는 옛 여자는 아마도 애증, 뿐이었으리라.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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