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크리스마스였으면…
매일 크리스마스였으면…
  • 김준아 기자
  • 승인 2020.10.1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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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나 – 세계여행]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스물두 번째 이야기.

낭만이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
낭만이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스트라스부르에서의 시간은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나타니의 크리스마스

나타니는 스트라스부르에 산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딱히 큰 변화를 꿈꾼 적은 없다. 삶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무슨 까닭인지 처음으로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 진 나타니는 생각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뭐하지?’ 회사 근처 호스텔을 예약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나타니는 알람시계부터 손비누까지 집에서 사용하는 모든 짐들을 챙겨 호스텔 체크인을 한다. 짐을 정리하는데 동양인 친구가 들어온다. 화장실에 손 비누가 없던 게 생각 난 나타니는 자신이 가져 온 비누를 사용하라고 말해준다. 물론 나타니는 평생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를 떠난 적이 없기에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른다. 하지만 느낌상 그녀가 다 알아들었다고 믿는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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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가 다양해서 그 열기 덕분에 춥지 않게 느껴진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짐을 정리하고 나갔다 들어오니 그녀가 자고 있다. 조용히 불을 꺼준다. 그녀에게 방해가 될 까 조용히 나가서 저녁을 먹고 왔는데 그녀가 없다. ‘내가 먼저 씻어도 되는 걸까? 그녀가 들어왔는데 바로 씻고 싶으면 어떡하지?’ 기다린다. 그녀가 들어온다. 이름을 물어본다.

“나는 나타니라고 해. 한국에서 온 주나? 반가워. 주나! 혹시 나 지금 씻어도 돼? 너 먼저 씻고 싶어? 나는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아침에 씻고 싶지 않아. 고마워! 그럼 먼저 씻을게.” 열심히 몸으로 말했다. 이번에도 분명히 그녀는 다 알아 들었을 거라 믿는다. 씻고 침대에 누운 나타니는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건다. “주나! 일어난다가 영어로 뭐지? 아 맞아 wake up! 나는 내일 출근을 해야 해서 6시에 일어나야 해. 알람을 맞췄는데 괜찮아? 조식 먹고 와서 출근할거야. 고마워! 메리 크리스마스. 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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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낭만적인데 무료로 공연 관람까지 할 수 있다니.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퇴근을 했는데 주나가 없고 새로운 친구가 들어왔다. 이름을 물어본다. 화장실에 있는 손비누를 사용해도 된다고 말한다.

주나가 아는 나타니의 정보는 6시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출근을 해야 하고, 알람시계와 대왕 손비누를 챙겨왔다는 것, 몸으로 모든 대화를 나눈 나타니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는 것, 출근해야 하지만 집이 아닌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설레 보였다는 것이다. 나타니의 다음 크리스마스가 궁금해졌고, 언제나 마음속으로 행복을 빌고 싶었다. 나타니가 사랑스러워서였을까? 스트라스부르여서인걸까?

 

요즘 산타클로스는 루돌프 썰매를 타지 않는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주나의 크리스마스

배낭여행, 그것도 세계일주 하면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유럽과 뉴욕에서 보내는 여행자는 흔치 않을 거다. 보통의 세계여행자는 여름을 따라가기 마련이고, 저렴한 시기를 골라서 일정을 계획한다. 일단 여름을 따라가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옷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 패딩 하나만 챙겨도 가방의 절반은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렴한 시기를 고르는 건 장기 여행이기에 비용 면에서 당연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처음 하는 이 세계여행에서 꼭 버킷리스트를 이루고 싶었고, 과감하게 표를 구매했다.

김준아의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26번 ‘프랑스 크리스마스 마켓 가기.’ 처음 이 버킷리스트를 적을 당시, 스트라스부르라는 지역 이름을 처음 들어봐서 그냥 프랑스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적었다. 알지도 못하는 곳을 선택 한 이유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된(500년 전통)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곳’이라는 문장을 어디선가 보았기 때문이다. 이 한 문장으로 크리스마스이브는 무조건 스트라스부르라고 계획했다. 더 예쁘고 더 화려하고 더 큰 곳들이 많을지 모르겠으나 나에게 스트라스부르는 처음 계획한 꿈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중세시대에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도시 광장에서 시작된 행사라고 한다. 나는 도대체 저 정보를 어디서 들었을까? 천만다행이다. 물론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로 갔다면 그 나름의 기쁨이 있었겠지만 스트라스부르에서의 시간은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프랑스 빵 그리고 산타 복장을 한 조깅하는 사람들 누가봐도 유럽이다.
프랑스 빵 그리고 산타 복장을 한 조깅하는 사람들 누가봐도 유럽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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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는 무고한 희생이 생기지 않기를.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가장 먼저 시작 한 스트라스부르는 쁘티 프랑스, 기차역, 노트르담 대성당 앞 등 약 10여 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작고 동화 같은 마을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는 파리에서 반나절 혹은 당일치기로 많이 다녀가는 곳이다. 하지만 히말라야를 내려오며 결심했듯 서두르지 않기로 했고 꽉 찬 2일을 이 곳에서 보냈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본 모습은 한 남자가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나와 옆에 있는 노숙자에게 건낸 거다. “보나베띠! (맛있게 먹어!).” 말 한마디 남긴 채 유유히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모든 거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인 스트라스부르. 11년 전 처음 와봤던 프랑스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바꿔준 곳이기도 하다. 너무 따뜻하고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이다. (그 때의 프랑스는 어린 내 눈에 악취와 노후 된 시설이 먼저 보였고, 엘리베이터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도 그 낭만에 취했는지 편의점에 갔는데 점원과 손님이 사랑에 빠지는 중이어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바로 나왔다. 계산을 하는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눈빛이 분명 사랑이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서울역’에서 프랑스 친구 두 명과 친해지게 되었다. 첫 끼로 프랑스 식당에서 빵을 먹을 것인가, 한국 식당에서 밥을 먹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밥집이 더 일찍 문 닫는 걸 확인하고 밥집으로 먼저 향했다. 오픈 시간까지 5분이 남아서 기다리는데 내 뒤로 프랑스 친구 두 명이 줄을 선다. ‘오 여기 현지인도 기다리는 한식당이군. 맛있겠다.’ 그리고 마침 잘 됐다 생각하고 식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을 찍어 준 뒤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어?”, “한국!”, “오 마이 갓!!! 진짜 한국인이야?” 이번에도 길 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 거다. 간단하다. 사진을 찍고,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같이 가게에 들어가서 같이 불고기 시켜 먹고, 또 수다 떨다가 스트라스부르에 대해 소개를 받고, 같이 크리스마스 마켓 쇼핑을 다녔다. 한국 문화와 k팝에 관심이 많고, 카카오톡까지 사용하는 친구들이었다. 나중에 스트라스부르 혹은 진짜 서울역에서 꼭 다시 만나기로 하고 여전히 종종 안부를 물으며 지내고 있다.

 

서울역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 Cindelle, Celia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아! 우리가 만난 밥집 이름이 서울 스테이션(Seoul station, 서울역)이다. 서울역 식당에는 한국에서 8년을 살다 온 프랑스 직원이 있었는데 그 직원이 우리가 원래 친구인 줄 알았다며 놀랐다. 하지만 난 그 직원의 한국어 실력에 더 놀랐다. “저희 불고기 진짜 맛있어요.”

스트라스부르에 취해 머무는 내내 정신을 못 차린 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선택하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실 스트라스부르에 가지 못 할 뻔 했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상상만으로도 설레던 곳에 갈까 말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터졌었다.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프라하에 지내면서 스트라스부르 숙소를 예약하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도 훨씬 비싼 방값에 머뭇거리다가 선뜻 결제하지 못 하고 미루게 됐다. 닥치면 망설임 없이 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정말 뒤늦게 예약을 하려고 하는데 방값이 절반 가격으로 뚝 떨어 진 거다. 곧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저렴한 방들은 예약이 다 찼을 텐데…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았다. 바로 검색해 보았다. 얼마 전 총기테러가 있었던 거다. 총기 소지가 당연히 안 되는 나라에 사는 나는 너무 무서웠다. 내가 만약 일찍 도착해서 그 현장에 있었다면? 끔찍하다.

이미 교통편 예약 해놓은 상태였다. 도착해서 상황을 보고 숙소에만 있기로 결정을 하고 스트라스부르로 향했던 거다. 어딘가 어수선 하기는 했지만 재개장한 마켓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 경찰과 군인들이 큰 총을 들고 다니고 있었고, 다리 곳곳에서 소지품 검사를 꼼꼼히 하고 있었다. 범인은 사살 당했고, 무고한 희생자가 5명이나 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제발 더 이상 그 어디에서도 테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일들을 겪을 때 마다 별 탈 없는 하루에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거 같다. 미래에 대해 너무 대책 없이 사는 것도 안 되겠지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 크리스마스를 또다시 유럽에서 보내는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크리스마스처럼 살고 싶은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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