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만 쌓이네…
그리움만 쌓이네…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0.10.15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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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가을 하늘은 높고 공활하다는 애국가의 가사처럼 요즘 하늘은 정말 예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구름의 생김생김은 한 배에서 나와도 제 각기 다른 자식들의 모습처럼 어쩜 저리도 개성 강한 우아함을 드러내고 있는 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온갖 잡스러운 생각들도 어느새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린다. 며칠 전 업무 차 강변북로를 달릴 때였다. 도로위로 펼쳐진 하늘의 푸르름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도로에서 하늘거리던 코스모스들의 여리여리한 흔들림이 탄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가을이다. 추석 연휴가 지나가고 어느새 가을이 출근하고 있었다.

사계절 중에서도 가을이 되면 우리 난타팀은 바빴다. 지역에 가을맞이 축제도 많았고 재경향우회나 여러 단체들이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해 친목을 다지는 행사에 섭외가 되기도 했다. 어느 해는 서울시 문화행사와 지역 축제가 겹쳐서 공연을 하루에 두 탕을 뛴 적도 있었다. 두 탕도 좋고 세 탕도 좋고 불러만 준다면 어디든 가겠노라 호기롭게 마음의 자세를 다 잡고 있었다. 하지만 두 탕은 더 이상 없었다. 공활한 하늘아래 북소리 울리며 지역 주민들과 흥겨운 한 계절을 보내야 할 때이지만 올해는 아무것도 없다.

처음 휴강을 통보받았을 때는 내심 좋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하고도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삼 년 쉰 것이 전부였다. 물론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야근하는 그런 직장생활은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시간별 수업 스케줄 관리를 하고 새로운 음원에 작품구상을 해서 악보를 만들고 공연 연출을 구상해야 하는 등의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게다가 청소년들과 성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작품을 구상하고 교수법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일은 가끔 나를 지치게도 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올해 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여기저기서 확진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자 공공기관 산하 시설에서 프로그램 휴강을 결정했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잠시 쉴 수 있게 된 것이 오히려 좋았다. 아침마다 허둥지둥 아이들 학교 보내고 밥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한 뒤 대충 치우고 출근 준비를 했다. 어느 날은 빨래를 널기에 시간이 부족해 널다말고 수업을 간 적도 있었다. 그랬기에 휴강통보는 나를 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에 쫓겨 미루어 두었던 취미생활도 하고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구석구석 집안 청소도 했다. 난타 강사의 커리어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악보들도 수준별 장르별로 정리했다. 클리어 파일로 한 권이 나왔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뿌듯함도 느꼈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2월의 햇살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따스함이 느껴졌다. 커피 한 잔에 피어오르는 봄 아지랑이가 나를 너무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 힐링의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까. 길어야 한 두 달일 거야. 그 시간을 소중하게 써야 해. 맘껏 쉬고 작품 구상도 하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아이들에게도 좀 더 신경 써주고 해야지. 두 달이면 끝날 거야…. 그 땐 그랬다. 두 달이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것이라는 나름의 추측을 했다. 정말 현실이 다시 올 줄 알았다.

지나간 추억을 다시 일깨워 주는 SNS가 있다. 길게는 수 년 전 오늘, 짧게는 작년 오늘 내가 게시했던 스토리를 다시 공유해줘서 지난 기억을 회상하게 한다. 요즘 나의 SNS는 작년 혹은 재작년 이맘때의 내 스토리를 다시 공유해주고 있다. 대부분 공연했던 이야기들이다. U-20 월드컵 결승전 거리응원 식전행사에 섭외되어 불타는 애국심으로 오프닝 무대를 해냈던 일, 이제는 우리 동네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춤 축제 날, 아침부터 비바람과 강풍 때문에 행사는 취소되고 공들여 해놓은 무대화장이 아깝다며 우리끼리 모여서 한바탕 신나게 놀았던 일, 동네 주민행사에 초청되어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려는 찰나 주민 분께서 “한 판 더” 외쳐주셔서 예고에 없던 순서를 전혀 당황하지 않고 멋지게 마무리 했던 일 등. 최근 1, 2년 사이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올해는 공연은 고사하고 만나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데도 눈치 없이 가을은 오고 있다.

다들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팀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홍보하는 회장님, 공연 소품부터 의상 챙기기, 화장 용품 구매 등 우리 팀의 잡무를 도맡아 하고 있는 총무님, 화장 컨셉이나 의상컨셉을 찾아보고 제작하고 발품 팔아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구매하는 열정을 갖고 계신 코디님, 자칫 빠트릴 수 있는 공연 소품들을 챙기고 항상 뒤에서 마무리 해주시는 꼼꼼이님, 생업에 바빠 공연이나 뒷풀이 참석이 어려울 때 항상 통 큰 찬조금으로 분위기 띄워 주시던 님, 공연장으로 북 옮길 때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북 이동에 함께 해주시던 님, 난타를 하고 난 뒤부터 아팠던 어깨가 좋아졌다며 난타 찬양으로 나의 어깨를 뿜뿜 해주시던 님, 우리 팀의 유일한 청일점이지만 공연에는 절대 참여하지 않고 묵묵히 팀의 궂은일은 도맡아 하시는 오빠야(?)님까지. 다들 보고 싶지만 단체 대화방에서 가끔 안부 정도만 확인하고 있다. 언젠가 밥이나 한 번 먹자고 만났다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할 때 동아리 팀들이 만났다고 누군가가 민원을 제기하는 바람에 만남조차 조심스러울 뿐이다.

길어야 두 달 정도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금은 몸도 마음도 너무 쉬어서 좀이 쑤실 지경이다. 그러나 시국이 내 뜻대로 맘대로 되지 않으니 문제 아닌가. 높고 푸르른 가을 하늘 아래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이 깊어가는 가을을 함께 즐기고 싶을 뿐이다. 이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마음은 생활 예술을 하는 모든 예술인들의 바람일 것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도 아깝지만 느자구없이 지나가는 가을날도 야속하기만 하다.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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