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비채

ⓒ위클리서울/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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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1917년 교토 어느 절집의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야만적인 전쟁의 나날을 견딘 후 효고 현 니시노미야 시에서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 생활을 하다 2008년 고인이 된 무라카미 지아키. 작가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아버지 지아키는 소년 하루키에게 끔찍한 전장의 기억을 공유한다. 그중 중국군 포로를 군도로 척살해버린 무도한 기억의 조각은 현재까지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그 일은 대학살이 일어났던 악명 높은 난징전에 아버지가 참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발전했지만 작가는 어쩐지 아버지에게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한 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채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서고부터는 절연에 가까운 부자 관계가 된 탓에 작가는 끝내 그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채 아버지와 사별하고 만다. 그러던 칠십대의 어느 날, 작가는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아버지의 삶의 풍경들을 글로 써 정리해보자고 결심한다.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출발했다. 독자가 직접 뽑아 그해 최고의 글에 수여하는 ‘문예춘추독자상’을 수상하는 등 열렬한 박수를 받는 한편, 일부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간 일본 문학 특유의 사소설풍 서사와는 다소 거리를 두어온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사적인 테마 즉 아버지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제목 그대로 아버지와 바닷가에 고양이를 버리러 간 회상으로 시작하는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유년기의 입양과 파양, 청년기의 중일전쟁 참전, 중장년기의 교직 생활, 노년기의 투병 등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 개인의 역사를 되짚는 논픽션이다. 이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존재론적 근간을 성찰하고 작가로서의 문학적 근간을 직시한다. 작가는 시종 아무리 잊고 싶은 역사라도 반드시 사실 그대로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아버지의 역사를 논픽션이라는 이야기의 형태로 용기내어 전한다. 글 쓰는 사람의 책무로서.

번역을 맡은 김난주가 “곳곳에서 작가의 머뭇거림이 느껴졌습니다. 쉼표도 많았고, 접속사 ‘아무튼’이 몇 번이고 등장했죠”라고 작업 소감을 밝혔듯, 무수한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글이다. 100페이지 남짓한 길지 않은 책으로 완성되었지만 이야기의 중량감과 여운은 결코 가볍지도 짧지도 않다.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문예춘추>(2019년 6월호)에 처음 공개되어 그해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기사에 수여하는 ‘문예춘추독자상’을 수상했고, 수정·가필을 거쳐 삽화와 함께 단행본으로 출간, 아마존 재팬, 기노쿠니야, 오리콘 등 각종 도서 차트 1위를 석권했다. 묘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13컷의 삽화는 타이완 출신 신예 아티스트 가오 옌의 작품이다.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를 읽으면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첫머리에 등장하여 일 년 가까이 행방불명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고양이 와타야 노보루는 물론, 산 사람 가죽 벗기기 등 소설 속 잔인한 풍경들이 작가의 삶의 조각에서 비롯되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중국행 슬로보트'라는 작품의 출발점도 '후와후와'의 보드라운 회상이나 '기사단장 죽이기' 속 난징전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은 물론, 직간접적으로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경험한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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