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속 바이러스, 인간에게 덮치다
빙하 속 바이러스, 인간에게 덮치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0.10.20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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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배영익 소설 ‘전염병’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위클리서울/
사진은 성북구 선별진료소우의 모습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지금도 하루에 수천 명의 사망자를 만들어내는 신종 바이러스의 위력은 대단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이 팬데믹 후 전 세계는 모든 것을 멈춰야 했다.

바이러스는 먹지도 생산하지도 성장하지도 않는 미묘한 존재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된 존재의 몸 속으로 들어와 숙주의 자원을 아낌없이 소진시켜 파괴한다. 코로나 19와 같이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그 파괴력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배영익 작가의 소설 <전염병>(문 펴냄)에는 남태평양 빙하 속에 웅크리고 있었던 바이러스를 인간이 접촉하면서 생기는 일을 상상력을 동원해 풀어냈다.

 

ⓒ위클리서울/ 문

인간의 이기심, 고대의 바이러스를 발현시키다

이야기는 북태평양 망망대해에 떠있는 원양어선 한 척에서부터 시작된다. 추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얼음은 맨손을 대면 바로 붙어버릴 정도로 차갑고 밀도 높은 덩어리다.

원양어선 선원들이 하는 일은 날이 밝자마자 이 밀도 높은 유빙을 건져 어창을 채우는 작업이다. 북태평양 러시아 베링해에 있는 선원들에게 얼음은 치가 떨리게 싫은 것이었다. 북극의 얼음이 차라리 모조리 녹아 북극항로가 열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선원들이 깬 빙하 속에는 이제껏 고대의 시간 동안 잠자고 있던 바이러스가 숨어 있었다. 인류는 단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신종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상처가 난 피부를 헤집고 인간의 몸에 침투한다. 한 명의 상처를 뚫고 감염시킨 바이러스는 다른 원양어선 선원들을 순식간에 감염시킬 수 있었다. 열악하고 밀집된 배 안은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좋은 조건이다.

이 고대의 바이러스는 강력한 치사율을 가지고 있었다. 선원들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하지만 생존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유일한 생존자는 바이러스를 몸속에 지닌 체 서울로 돌아온다. 그의 이름은 ‘어기영’이다.

어기영이 서울로 돌아온 후 그를 만난 이들이 차례로 원인불명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무증상 감염자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무증상 감염자들이 많은 것처럼 어기영도 별다른 증세를 느끼지 못한 채 바이러스를 뿜어내며 차례로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킨다.

첫 번째 괴바이러스 질환이 기록된 환자는 어기영과 처음으로 술을 마신 기영의 선배였다. 그는 38.5도의 고열에 폐 주변 혈관에 집중적으로 혈종이 생겼다. 홍반과 부종, 눈과 코 등 점막 조직에서는 출혈이 심했다. 복부와 대퇴부, 허벅지 등의 근육조직은 함몰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환자의 상태는 이제껏 한 번도 관찰되지 않았던 바이러스의 증세였다. 의료진들은 이제껏 보지 못한 유형의 바이러스로 보였다. 이 괴바이러스의 치사율은 상당히 높았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치사율은 낮추고 전염성을 높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입장이다. 전 세계 팬데믹을 성립하게 하려면 황금비율은 5~10%일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1918년 세계적인 대유행을 멀고 온 스페인 독감이 대표적이다. 전 세계 약 3000만 명의 사망자를 불러온 이 병원균은 당시 치사율이 5%인 것으로 알려졌다.

괴바이러스가 발현된 시기는 하필 명절이었다. 차례를 지낸 성묘객들이 도로 위로 쏟아져 나왔다. 예년보다 2배 이상의 사고 신고가 접수됐다. 차례를 지내던 아들이 제사상에 고꾸라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주택가 일방통행로에서는 차 한 대가 멈춰 꼼짝 않고 있었다. 운전자인 여자는 문을 두드리는 남자를 향해 처절하게 기침을 해댔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여기저기서 자동차 사고가 속출했다. 차들은 갈지자로 방향성을 잃고 충돌했다. 도저히 믿지 못할 사고들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이 일으킨 사고들이었다.

더 큰 문제는 바이러스는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한다는 점이었다. 감염자들은 급격히 난폭해졌다. 공격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그들의 목표는 다른 이들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도록 하는 행위로 이어졌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다른 이들을 감염시키려고 했다. 비말과 혈액 등의 분비물을 통해 바이러스가 감염되는 것을 마치 안다는 듯이 감염자들은 상대방에게 침을 뱉었다. 심지어 고층 건물에서는 많은 군중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떨어져 죽었다. 떨어져 죽은 이가 내뿜은 수많은 피는 고스란히 모인 사람들에게 향했고 피가 튀긴 이들은 어김없이 감염됐다.

 

단 한 가지 방법은 인류를 구원할 항체를 찾는 것

전염병이 발병했을 때 가장 유용한 법칙은 감염자 혹은 감염 의심 환자들과 정상인들과의 ‘격리’다. ‘개인위생’ 또한 중요하다. 거기에 ‘집에 있으라’는 수칙도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지금과 다르지 않은 중대한 방역수칙이다.

소설 속 의료진들도 다음과 같이 전염병 예방수칙을 이어나간다. 바이러스의 감염경로를 알아내고 감염 의심 환자들은 격리, 차단하는 것을 최우선 방역 과제로 여긴다.

하지만 감염 사태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환자가 많아지자 문제는 의료진들 사이에서 발생했다. 감염자가 대량 발생하면서 의료진들의 피해가 막심했다. 감염자를 가장 가까이서 돌보고 감염 원인을 찾아야 하는 의료진들은 하나둘 감염으로 죽어갔다. 살아남은 이들조차 감염 병동 폭동으로 살해됐다. 안전이 위협받자 몇 안 남은 의료진들은 서둘러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남겨두고 철수해야 했다.

이제 의료진들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바이러스에 걸리고도 증세가 호전된 이들을 찾아 이들의 항체로 치료제와 백신을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첫 번째 바이러스 발병자 ‘어기영’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의료진들은 필사적으로 백신 개발에 매달린다.

우여곡절 끝에 백신이 만들어지고 발병한 지 이틀 이내의 환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결정되었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접종 셋째 날부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윤규진 교수는 이 괴바이러스를 물리칠 방법을 찾아냈다. 답은 백신이 아니었다.

그는 이 괴바이러스의 비활성 유전자를 활성화 시키면 바이러스가 박테리아로 변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열흘간 살아남은 환자의 몸에서 나온 항체는 백신인 줄 알고 잘못 주사한 박테리아였다. 박테리아는 항생제로 치료 가능했기 때문에 별도로 백신이 필요 없었다. 오히려 백신이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었다.

의료진들은 차근차근 답을 찾아나갔다. 그 결과 백신과 백신 부작용 환자에게 투여하는 박테리아로 환자들의 생존율은 96% 수준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완전하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백신을 만든 윤규진 교수는 무증상 감염이 보름째 이어지고 있다. 그는 바이러스를 영원히 몸에 지닌 채 살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것들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늙지도 않는다. 파괴될지언정 죽지도 않는다.”

작가는 고대 빙하 속에 잠자고 있던 바이러스를 이렇게 표현한다.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 온난화 현상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만년설이 녹고 남극의 빙하가 녹기 시작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지구 온난화는 고대의 시간에서부터 존재해왔을 그것들을 좀 더 빨리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이 고대의 수많은 바이러스를 발현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를 최대한 늦추는 것 또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작가는 빙하 속 고대 바이러스라는 상상을 통해 인간의 과도한 욕망에 제동을 걸고 경종을 울린다.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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