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위클리 마음돌봄: 열두 번째 돌봄, 작은 마을

[위클리서울=구혜리 기자]  아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음 이전에 질병과 사고를 완전하게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잘 이겨낼 수는 있다. 도리어 이를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이의 삶은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몸이 아프면 온 신경은 아픈 부위에 집중된다. 하물며 감기나 생채기 하나에도 처방을 받거나 적절한 요법을 취하는데 마음에 난 상처에는 유독 무관심하다. 하지만 마음에도 돌봄이 필요하다. 위클리 마음돌봄은 삶에 관한 단편 에세이 모음이다. 과열 경쟁과 불안 사회를 살아가는 당사자로서 스스로와 사회를 돌아보는 글이다. 글쓴이의 마음의 조각을 엿보는 독자에게도 작은 위로를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그냥, 작은 마을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비대면 수업으로 개강을 맞으니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새로 산 옷가지 몇 벌과 고양이를 데리고 할머니 집에 왔다. 할머니 집 냉장고엔 음식이 가득 차있고 무엇보다 사람이 만드는 따뜻함이 가득하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살이 찌는 것이랄까?

오랜만에 본가에 찾아온 손녀가 반가운 할머니는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셨고, 할 게 많은 손녀는 밖을 나섰다. 한적한 카페를 찾아 시장을 걷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가을 하늘, 가을 향이 비릿한 생선 냄새, 튀김 냄새에 섞여 코끝에 닿는다. 오래된 동네의 낡은 길이 그리움 속에 피어난다. 여기는 소꿉친구와 놀던 놀이터고, 저기는 처음 이를 뽑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낸 치과, 동창의 어머니가 꾸리던 떡볶이 집을 이어 받았는지 흐릿하게 익숙한 얼굴에 주름이 패여 있고, 아이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눈빛은 어딘지 정감 있다. 타지에서 누군가 고향을 시골 취급하면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곤 했는데 다시 보니 시골이 맞다, 인정한다.

떠나간 이래 어색해진 이 동네를 나는 싫어했다. 오래된 시계가 멈춘 것 같은 작은 마을. 바깥 세계가 궁금해 떠나고 싶었던 곳. 오랜만에 찾은 작은 마을엔 여전히 그 향을 간직한 사람들이 바삐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여전히 같은 얼굴로, 또 일부를 떠나보내고 들여보내며 사람들이 모여 살아내고 있었다. 잊어버린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그들의 숨결을 느끼고 나서야, 나는 나의 근본에 대해, 나 자신과 두 번째 화해를 맞는다. 온 마을이 다함께 나를 키워냈다. 곳곳에 유년의 기억이 남아있다. 나를 길러준 땅 위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부모형제를 찾고, 어제가 아닌 내일을 본다.

 

인천 서구 가정동의 ‘가정집’

어디 보자. 어딜 갈까. 사람이 적고, 조용한 음악이 있는 곳. 따뜻한 빛에 이웃이 오고가는 곳. 인천 서구 가정동의 ‘가정집’을 방문했다. 가정집은 카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정확히는 청년협동조합 더블유 42에서 지역문화를 살리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시작한 ‘빈집 소셜프랜차이즈 1호집’이다. 청년협동조합 더블유 42는 골목길 재생 프로젝트를 위해 마을의 빈 집을 주민사랑방 ‘가정집’으로 리모델링해서, 지역 청년과 주민들이 함께 살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동네를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고 있다.

3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의 아메리카노와 생맥주, 3000원에서 만원 내외의 식사와 안주도 있다. 낮에도 밤에도 주민들은 언제든지 모임을 만들어 커피와 차, 술과 음식을 나눌 수 있다. 또한 가정집은 매주 월요일 다과 수업 같은 정기적인 주민프로그램, 마을 축제, 도시재생사업교육과 상담을 운영하거나 지원하고 있다. 주민모임과 프로포즈처럼 공간을 빌려 독특한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카페로, 펍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되어 가정동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간다.

나는 이런 식의 네이밍 센스를 참 좋아한다. 가정동의 가정집이라니 너무 귀엽지 않은가? 못 본 사이 어릴 적 지냈던 동네 곳곳에 모르던 가게들이 많이 생겼다. 서울의 모습을 닮은 감각으로 새롭게 단장한 그 가게들은 어딘가에서 행복한 기억을 담아온 청년들의 작품이었다. 마을에는 이런 공간들이 필요하다. 이웃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가꿔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또 먼 여정과 모험을 통해 다채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품고 돌아올 청년을 맞아줄 기반이 필요하다. 함께 어우러져 살기에 더 나은 곳을 만들고 싶은 그들이 마음껏 상상력과 용기를 내뿜을 수 있도록.

 

마을에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외출을 삼가고, 외출하더라도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게 된다. 얼굴을 절반 이상 마스크로 가리고 접촉을 피하게 된 사람들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마치 사람들이 지워진 텅 빈 마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잠옷에 겉옷만 걸치고 밤산책을 나왔다. 서울에서 혼자 지낼 때는 좀처럼 밤에 밖을 나서지 않았다. 산책보다 시설 내 기구 운동을 좋아했고 필요한 것은 집으로 주문할 수 있었으니까. 또 거리의 타인과 마주할 때 느껴지는 미묘한 이질감이 신경 쓰였다.

어둠이 깔린 마을은 낮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낯선 느낌을 준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어둠은 고요하게 거리를 안는다. 이제는 피부가 되어버린 마스크를 입고 살짝 숨이 차게 빠른 보폭으로 최대한 멀리 가본다. 돌아오는 길은 아주 천천히 걸으며 달릴 때 보지 못 한 것들을 섬세하게 눈에 담는다. 고요함 사이로 나뭇잎이 서로 닿는 소리, 바람이 춤추는 소리. 달리는 중에 보지 못 한 노인이 돌턱에 앉아 삶을 돌아보고, 그 곁에 주인을 기다리는 개의 숨소리. 가로등 빛이 섞인 하늘은 검정색도 보라색도 아닌 색으로 퍼진다. 집집마다 새어 나오는 밥 냄새에, 메뉴를 가늠해보고, 말과 말 사이를 채우는 웃음소리를 타고 발걸음을 맞춰본다.

고향의 밤거리는 무섭지 않다. 어릴 때부터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 무서울 때면 밤하늘을 집집마다 이어 붙인 커다란 이불이라고 상상했다. 이불은 반짝이는 별들로 수를 놓았고, 구름으로 솜을 채웠고, 달의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이불도 다채로운 색감으로 변한다. 아무도 없는 길목에서 이 검푸른 이불은 지상으로 펼쳐져 푸근하게 나를 덮어준다. 보이지 않는 숨결을 느끼며 나는 이 마을에, 사람들에게, 삶에 감사하며 힘을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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