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 속에서도 사랑은 계속된다
역병 속에서도 사랑은 계속된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0.10.2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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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장 지오노 원작 영화 ‘지붕 위의 기병’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워킹스루진료소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최근 팔레스타인의 한 병원에서 사망한 어머니의 시신을 훔친 아들의 사연이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로 어머니와의 면회가 금지되자 아들은 어머니를 보기 위해 매일 병원 벽을 기어올라 어머니의 안위를 살폈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망하자 시신을 훔쳐 달아났다. 현행법상 감염병에 걸린 시신은 보디 백에 넣어 화장해야 하지만 아들은 그럴 수 없었다. 어머니의 유언이 비닐백에 넣어 화장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까닭이다.

이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 팬데믹(대유행) 사태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강제 이별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은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왔다. 먼저 병원과 요양원에 있는 부모와 면회가 금지됐다. 집단 감염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감염 증세가 의심되는 가족들은 한 집안에서도 격리 대상이다. 비말로 전염되는 호흡기 감염병 특성상 어떤 형태로 비말이 남아 감염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격리 형태로만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인사해야 하는 처참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역병이 돌면 누구나 자기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역병도 진실한 사랑 앞에서는 피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1995년도에 개봉한 영화 ‘지붕 위의 기병(The Horseman on the Roof, 1995)’에서도 역병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사랑이 펼쳐진다.

더럽고 진저리나는 최악의 전염병 유행 상황에도 남자는 전염병에 걸린 여자를 성심껏 목숨을 다해 간호해 목숨을 살린다. 정말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은 연인 사이가 아니다. 여자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정말 순수하게 육체를 탐하지 않고 인간의 생명을 위해 성심을 다한 인간애에 대한 신의 작은 선물일 런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풍광 뒤로 전염병 속에서 보이는 추악한 인간의 내면 압권

영화의 배경은 1832년 프랑스 액상 프로방스(Aix-en-Provence)다. 바깥에서는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마치 총소리가 연상되는 불꽃놀이 소음이 크게 퍼진다. 하지만 불꽃놀이 소리만 나는 것이 아니었다. 평화로운 강변에는 괴한들이 납치한 남자를 살해하는 총성이 불꽃놀이에 묻혀 사라졌다.

괴한의 정체는 누구일까. 괴한들은 오스트리아의 비밀경찰이다. 독립운동을 하는 이탈리아인들을 색출하는 의무를 가진 이들이다. 이들이 찾는 사람 중 한 명은 이탈리아를 독립시키기 위해 힘쓰는 25세의 기병 대장 ‘안젤로’다. 안젤로는 다행히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프랑스 남부 지방까지 달아날 수 있었다.

때마침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는 콜레라가 발생해 수많은 의문의 죽음이 발생하고 있었다. 안젤로가 도망가는 길목마다 사람이 죽어 쓰러졌다.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이 이방인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은 집단 광기에 휩싸여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다. 이방인이 우물에 독을 타 그 물을 마시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착각했다.

당시 유럽인들은 왜 이러한 전염병이 생기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제대로 소독이 되지 않는 물을 마신 이들은 하나둘 죽었고 환자의 비말이나 배설물에 접촉한 가족들과 이웃들에게도 급격히 병이 확산됐다.

안젤로 또한 이방인으로 낙인찍히고 무조건 잡아들이려는 광기 어린 시민들로 인해 지붕으로 도망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된다. 비밀경찰에 쫓기고 이방인이라고 쫓기는 상황에 이른다. 영화 속 안젤로는 몹시 굶주리고 지친 상태다. 그런 그에게 친절한 손을 내민 여성이 있다. 그의 이름은 ‘폴린’이다.

안젤로는 지붕 위로 도망 다니다 숨어 들어온 집에서 미모의 후작 부인 폴린과 처음 만나게 된다. 안젤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수한 귀족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언제든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안젤로는 자신의 더러운 옷차림을 부끄러워할 줄 알았다.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인 부분에 대해서도 사과할 줄 아는 면모를 갖췄다. 곤경에 처한 이에게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여성과 예의 바른 청년의 만남은 순수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들의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 콜레라가 확산되면서 군대가 시민들을 철수하고 격리시키는 과정에서 이들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언제 만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헤어진 두 사람. 이 둘이 처한 상황은 콜레라로 인해 점점 악화되기 시작한다.

 

집단 광기에 빠진 시민들, 역병 속에서 패닉 증세 보여

유럽의 수많은 죽음을 가져온 ‘콜레라’는 ‘비브리오 콜레라균’에 의한 급성 세균성 장내 감염증을 의미한다. 감염이 되면 구토와 함께 체액 및 염분이 손실되며 적시에 치료를 하지 않으면 탈수증 등으로 사망에 이르는 병이다. 지금과는 달리 비위생적인 환경과 하수도로 인해 오염된 물과 음식물, 부패된 어패류 등을 먹고 감염증에 걸리는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병에 대한 예방지식이나 치료법을 찾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역병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콜레라를 예방하기 위해서 가장 최소한의 예방법은 물을 끓여 먹는 것이다. 환자가 해당 증세를 보이면 즉시 격리해 환자로부터 나오는 비말이나 배설물로 인한 감염을 피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의학 과학적 지식이 없으니 이미 사망한 감염병 환자들을 처리하는 방법도 맨손으로 시체를 만지고 옮기고 하는 과정을 거치는 등 무지한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감독은 인간의 생명이 다루어지는 무지의 순간을 ‘까마귀’로 상황을 희화화한다. 이미 환자들이 즐비한 거리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시체들이 산 사람들과 함께 엉켜있다. 까마귀는 처음에는 시체의 살점을 먹기 위해 몰려왔다가 힘없이 방치된, 살아있는 사람들도 공격했다. 안젤로에게도 까마귀는 접근해왔다. 까마귀는 이미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인간이 힘을 잃은 무기력해진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지 감독은 카메라의 눈으로 생생히 담아낸다.

역병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미쳐 날뛰었다. 전염병으로도 죽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약탈하고 모함하며 서로를 죽였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살해를 저질렀다. 죽음의 사신이 드리운 순간에도 인간들의 재물에 대한 탐욕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하지만 안젤로와 폴린은 오로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만 집중했다. 안젤로는 ‘조국의 독립’이라는 거대한 대의가 있었다. 폴린은 남편을 찾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콜레라로 인한 수많은 죽음이 발생했다. 안젤로를 쫓던 비밀경찰도 콜레라에 걸려 숨졌다. 이탈리아의 독립군 의사도 콜레라로 인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어쩌면 역병이 돌았기에 안젤로와 폴린은 각자의 목표에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갖은 고생 끝에 고향에 돌아온 폴린. 폴린은 안젤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열정은 식지 않는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폴린은 임시로 거주하기로 한 저택의 주인의 드레스를 갈아입고 안젤로 앞에 나선다.

안젤로는 혹시나 콜레라에 걸린 사람이 저택의 주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쳐 폴린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만류하지만 폴린은 말을 듣지 않는다. 폴린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고 군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떠나기로 한 안젤로는 조금 더 빨리 자리를 피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남편이 있는 폴린을 연모하는 마음으로 대할 것을 염려한 탓이었다.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폴린을 찾은 안젤로는 폴린의 기이한 모습에 놀란다. 입지 말아야 할 옷에 손을 댄 폴린은 그날 고열에 시달리며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젤로는 직감적으로 폴린이 콜레라에 걸린 것을 알아차린다. 안젤로가 선택한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영화는 프랑스의 거장 장 지오노(Jean giono)의 동명의 소설 ‘지붕 위의 기병(Le Hussard sur le Toit)’을 원작으로 장 폴 라프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완성했다. 프랑스의 대표 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후작 부인 폴린 드 테우스 역을, 당시 신예 올리비에 마르티네즈가 기병대장 안젤로 파르디 역을 맡아 열연하며 처참한 역병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감정을 잘 그려냈다.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신의와 예의를 지키며 한 여인의 생명을 지켰던 안젤로를 통해 작가는 역병으로 생사가 갈리는 최악의 순간에도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사회적 신의와 예의, 도덕을 지킬 수 있다며 코로나 19로 지친 우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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