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쓰고 있네
시나리오 쓰고 있네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0.11.03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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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황서미 작가 (사진=황서미 제공)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그녀를 처음 만난 건 2년 전 쯤 이었다.

치킨보다 쫄면이 더 맛있는 대학로의 ‘림스 치킨’이라는 곳에서였다. 그녀와 나, 그리고 남자 하나. 우리 셋이 그곳에서 만난 사연은 이러했다.

3년 전 쯤. 페이스북을 시작했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눈팅만 했을 뿐 글을 쓰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의 글을 보게 됐고 ‘와… 미쳤다’ 싶게 재밌었다. 페친 신청을 했고 그녀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저렇게 글 잘 쓰는 사람과 알게 된 것이 영광스러웠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도 한번 써봐?’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그때부터 되든 안 되든 나의 일상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예전에 사랑했던 한 남자에 대한 글을 올렸다. 그런데 그 사람이 왠지 내가 아는 그 남자인 것 같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혹시 그 사람 이름이...”

“꺄악 맞아요~~”

“그 오빠랑 한번 얼굴 보기로 했는데 언니도 같이 만나요!”

그렇게 해서 우리 셋은 대학로의 쫄면 잘하는 치킨 집에서 만나게 됐다. 그 남자는 외모나 학벌 보다는 노래 하나로 각인 된 사람이었다. 송창식의 ‘나의 기타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

딩동댕 울리는 나의 기타는 너와 나의 사랑이야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그 남자는 분명 멋졌다. 그녀가 그의 어떤 부분에 반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나 내가 아는 한 그 노래도 한몫 했으리라 짐작했다. 아무튼. 우리 셋은 그날 골뱅이… 아니 치킨 집을 나와 2차를 갔고 거기서 얼마나 퍼마셨는지 나는 필름이 끊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혜화동 로타리 파출소 앞 꽃밭에 퍼질러 앉아 졸고 있었다. 그녀는 딩동댕 그 남자와 술을 더 마시다 헤어졌다고 했다. 오프라인에서 그녀를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자 (지금까지)끝이었다. 그녀에 대한 내 첫 인상은 한 마디로 이랬다.

속보이는 여자

ⓒ위클리서울/ 황서미 작가 (사진=황서미 제공)
ⓒ위클리서울/ 황서미 작가 저서 '시나리오 쓰고 있네' (사진=황서미 제공)

있는 거 없는 거 다 꺼내놓고 ‘볼 테면 보라지, 아님 말고’ 이런 식이었다.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고 꾸미지 않는 담백한 여자였다. 나는 그런 그녀가 당당하고 멋져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밥 먹고 자존감만 키운 거 같았다. 아무튼 그녀는 알맹이가 더 예뻤다.

그랬던 그녀가 얼마 전에 그토록 바라던 책을 냈다. 텔레비전 프로로 예를 들면 거의 ‘체험 삶의 현장’ 내지는 ‘현장르포 동행’ 급이었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달랐다. 진정한 고수는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해 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탁월했다.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 ‘그대 이름은 하객 알바’ 이거 하나만으로도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립반윙클의 신부’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하면 조금 오바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어느 것 하나 재미없는 것이 없었고 어느 것 하나 슬프지 않은 것이 없었다.

케이크까지 사들고 보험계약을 받으러 갔다가 뺀찌를 맞고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려 버리는 이야기. 집에서 엄마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그 케이크를 다시 뺏어오고 싶었던 이야기는 가슴 아프면서 너무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인생의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써낼 수 있는 글, 그녀의 이야기는 모두 그랬다.

나는 그녀가 글로 성공하고 돈도 무지막지하게 벌었으면 좋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배 아파 하지 않을 자신 있다. 왜냐면 결국 그녀가 나와 같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빽도 없고 돈도 없이 살아가는 여자들. 잘 돼서 아이들 데리고 여행 다니면서 맛있는 거 사먹고 싶은 엄마. 평생소원이 기역자로 꺾어지는 부엌이 있는 집에서 한번 살아보는 거라는 여자.

내가 리뷰를 가끔 쓰지만 대놓고 책을 돈과 결부시켜 말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그녀의 책만큼은 속보이는 리뷰를 쓰고 싶었다. 많이 팔려야 그 꿈이 이뤄지고 그녀 같은 대한민국 여자들의 꿈도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의 진짜 꿈은 시나리오 작가다. 아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멋진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번에 낸 책 제목도 ‘시나리오 쓰고 있네’라고 지었다.

그녀가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 내용을 살짝 공개하자면… 다섯 명의 전 남편이 죽은 전처의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장례식장에 모이며 시작된다. 딱 봐도 재밌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재미가 다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나리오가 논픽션을 바탕으로 써낸 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제로 5번의 결혼과 4번의 이혼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5번째 남편과 8년 째 살고 있는 중이다. 결혼 이전에는 수녀가 되겠다고 수녀원에 들어갔던 이력까지 있다. 이 얼마나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한 인생인가 말이다.

만두를 너무 좋아해 막내아들을 만두라고 부르는 여자. 그리고 한 가닥 한다는 팔도의 만두집을 죄다 돌아다니며 먹고 마시고(소주) 글로 써 올리는 여자. 1000만 관객이 봐줄만한 시나리오를 써서 언젠가는 떼돈을 벌게 될 내 친구 황서미 작가. 나는 그녀를 열나게 응원한다.

끝으로 ‘88만 원 세대’의 작가, 우석훈 박사의 추천사를 덧붙인다.

“황서미의 글에는 가볍거나 무겁거나, 그런 코미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딸 그리고 아직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폐아 아들의 삶을 보다 보면 우는 것도 미안할 정도로 먹먹한 감정 한 구석이 밀려든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감정을 오래 붙들고 있게 놔두지 않는다. 한국 영화에서 단골로 사용하는 신파가 시작될 지점이면 그녀는 정색을 하고 글을 꺾고 다른 코미디의 흐름을 탄다. 코미디의 천재인 그녀는 독자가 신파 속에서 궁상 떠는 걸 아주 싫어하는 것 같다. “웃으세요, 웃으세요, 이건 웃기기 위한 소재일 따름입니다”, 그녀가 만드는 웃음의 파도는 이어진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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