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 있는 노동자
문 밖에 있는 노동자
  • 장영식
  • 승인 2020.11.17 12: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위클리서울=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 고공 농성을 해제하고, 땅을 밟은 지 9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김진숙 지도위원은 여전히 영도조선소 공장으로 들어가는 소금꽃 나무들을 바라보며 문밖에 서 있었습니다. 

 

한 시민이 직접 만든 꽃목걸이를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걸어 줍니다. ©장영식
한 시민이 직접 만든 꽃목걸이를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걸어 줍니다. ©장영식
김진숙 지도위원이 케익과 꽃목걸이를 받고 기뻐합니다. ©장영식
김진숙 지도위원이 케익과 꽃목걸이를 받고 기뻐합니다. ©장영식

생환 9년을 맞는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서 한 시민은 케익과 꽃목걸이를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걸어 주었습니다. 꽃목걸이는 꽃 35송이로 만들어졌습니다. 35송이의 의미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35년의 한과 눈물을 맺는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매일 가방에 대자보 두 장을 가져와서는 한 장은 영도조선소 담벼락에 붙이고, 또 한 장은 자신이 들고 서 있던 시민은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합니다. 

 

한 시민은 김진숙 지도위원 생환 9년이 되는 날,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합니다. ©장영식
한 시민은 김진숙 지도위원 생환 9년이 되는 날,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합니다. ©장영식

생환 9년이 되던 11월 10일 새벽, 김진숙 지도위원은 “새벽에 깨서 짐 자전거로 사료를 배달하다가 개굴창에 처박혀 울던 15살 때가 생각나 서러웠다”라고 합니다. 그 서러운 날들을 함께 하기 위해 매일 새벽이면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생이었던 2011년에 희망버스와 연대했던 한 청년은 9년 만에 다시 영도조선소를 찾았습니다. ©장영식
대학생이었던 2011년에 희망버스와 연대했던 한 청년은 9년 만에 다시 영도조선소를 찾았습니다. ©장영식

*오늘(11월 12일) 환노위 송옥주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 전문을 소개하겠습니다.  

 

회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위원장으로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우리 위원회는 한진중공업 대표이사를 증인으로 불러 노동조합 활동으로 1986년 7월 14일 해고된 김진숙 씨의 복직 문제에 대하여 신문한 바 있습니다.  
김진숙 씨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유로 해직된 자로 결정하고 복직을 권고한 바 있지만 아직까지 한진중공업에서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대표하여 위원장으로서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첫째, 한진중공업은 해고노동자 김진숙 씨가 조속히 회사에 복직하여 명예를 회복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할 것, 
둘째, 한진중공업은 법률에 따라 심의, 결정한 정부 권고를 받아들여 조속한 복직과 더불어 관련 제반사항을 성실히 협의할 것, 
셋째, 한진중공업의 주 채권단인 한국산업은행은 김진숙 씨 복직이 원만하게 결정될 수 있도록 조치, 협조할 것을 권고합니다. 
우리 위원회 여야 위원님들의 공통된 의견으로 이와 같이 엄중히 권고하는 바이니, 조속한 시일 내에 원만히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도 김진숙 지도위원은 35년의 꿈을 간직한 채, 출근하는 소금꽃 나무들을 바라보며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장영식
오늘도 김진숙 지도위원은 35년의 꿈을 간직한 채, 출근하는 소금꽃 나무들을 바라보며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장영식

<사진작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