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머리 울 엄마
흰 머리 울 엄마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0.11.20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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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얼마 전에 전국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백일장이 있었다. 처음엔 그냥 재미로 한번 응모해볼까 싶어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나도 철없었던 내 모습도 떠올라 마음이 참 그랬다. 좀 더 재밌고 좀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써 내렸다. 그때 쓴 글을 여기다 다시 옮겨본다.

마흔 여섯에 엄마는 백발이 되었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뒤에 생긴 일이었다. 자식 넷을 남겨두고 대책 없이 세상을 떠나버린 남편 때문에 얼굴이 창백해져버리는 대신 엄마의 머리가 먼저 하얗게 질려버린 건지도 모른다. 겨우 스물, 꽃다운 나이에 시집 와 아이 넷을 낳고 서른 평 남짓한 집 안에서 살림만 하던 여자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가장’이라는 검은 완장을 차버린 뒤였다. 하지만 진짜 기가 막힌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엄마의 외모에 심각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마흔 여섯 살 엄마의 머리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화솜 같이 새하얀 백발이 되어 버렸다.

아직은 단풍이 한창인 가을 어느 즈음에 설악산 대청봉에 첫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보고 있는 것처럼, 내 눈 앞에서 일어난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이즈음에서 엄마의 외모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한때 미모의 아나운서로 불리던 백지연과 몹시 흡사한 얼굴을 가진 엄마는 아이 넷을 낳은 여자라고는 보이지 않을 만큼 군살 하나 없는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들은 그런 엄마를 ‘이쁜이 아줌마’라고 불렀고 우리 집에 놀러왔던 친구들은 ‘너희 엄마 영화배우 누구랑 좀 닮은 거 같은데’라는 말로 내 자긍심을 높여주곤 했다. 그랬기에 하루아침에 백발이 되어버린 엄마의 모습은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염색약 하나만 있으면 엄마를 예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해서 집 안의 천재지변, 그러니까 하나 밖에 없는 아빠가 돌아가신 마당에 내 발바닥에 티눈, 그러니까 엄마의 새하얗게 변해버린 머리가 뭐 그리 대수라고 나는 그토록 심각하게 엄마의 머리색에 집착했던 걸까. 아빠도 없는 마당에 엄마까지 하루아침에 할머니가 되어버리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너도 봤니? 쟤네 엄마, 할머니 되어 버린 거. 불쌍해서 어쩌니. 아빠도 없는데….”

친구들이 뒤에서 이렇게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염색만 하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도 엄마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 지 막막한 마당에 머리 색깔 따위 빨, 주, 노, 초, 파, 남, 보면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어린 나이에 시집와 프랑스 왕비가 된 마리 앙투와네트가 성난 군중들에게 붙들려 와 참수형을 당하기 전, 그녀의 머리가 하루아침에 하얀 백발로 변해버렸다더니 엄마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그리 된 모양이었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엄마의 머리가 그 모양이 되어버린 이후로 나는 친구들을 더 이상 우리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들과 동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나오는데 그 앞으로 엄마가 지나가고 있었다. 발목까지 내려온 낡은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고 껍데기만 남은 듯 비쩍 곯은 몸에 모래처럼 버석거리는 백발의 머리를 흩날리며 말이다. 그 모습을 혹여나 친구들이 볼까, 엄마가 내 이름이라도 부를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친구들 팔짱을 끼고 엄마가 지나가는 반대쪽 방향으로 등을 돌렸다. 그때 친구 하나가 몸을 틀어 뒤를 돌아봤고

“양미야, 저기 너네 엄마 같은데!”

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를 부인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고개를 짤짤 흔든 베드로처럼.

“뭔 소리야. 우리 엄마 지금 서울 가있는데. 우리 엄마 아니야!”

벌게진 얼굴로 저 사람은 내 엄마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미안하지 않았다. 모든 게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뭔 자랑이라고 저런 모습으로 시장을 보러 다니고 누구 창피 주려고 허연 머리를 염색도 안 하고 돌아다니는지 화가 났다. 나는 아빠도 없는데 엄마까지 날 부끄럽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어떤 마음으로 엄마가 그 시간을 버티고 있었는지 철없던 나는 알지 못 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그때 엄마가 염색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됐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 엄마는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보이는 증상 때문에 안과에 갔다가 ‘급성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당장 수술을 해야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에 무리를 줄만한 것들은 하지 말라는 몇 가지 주의를 들었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머리염색’이었다. 독한염색약 때문에 혹시 백내장이 더 악화될까봐 그래서 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내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들었다. 남편도 없이 네 명의 자식과 세상에 남겨진 여자가 자기 눈까지 멀어 버리면 어쩌나 혼자 끙끙 앓았을 엄마의 마음을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던 거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br>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한 번씩 이런 상상을 해본다. 가냘픈 몸으로 낡은 베이지색 래시가드를 입고 발목에다 자식들이라는 네 줄의 리쉬를 묶은 채 험난한 세상의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결국은 다시 보드 위로 올라타는 하얀 백발의 서퍼 김영자 여사를 말이다.

아무튼 그런 엄마의 인생에 예기치 못한 커다란 파도가 또 한번 밀어닥쳤다. 이게 뭐랄까. 보기에 따라선 아주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파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둘째 언니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돼서 엄마는 손녀들을 봐주러 잠시 그곳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이웃에 살고 있던 한 남자를 만났다. 캐나다로 일찍 이민을 갔던 그는 거기서 자리 잡고 살다가 삼 년 전에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하나 있는 딸은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엄마보다 네 살이 많던 그 남자는 한 마디로 엄마에게 첫눈에 반한 모양이었다. 그 무렵 엄마의 머리는 백발이라기 보단 은은하고 세련된 은발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어떤 면에서는 아름답기까지 한 상태였다. 마음고생은 했어도 타고난 동안이었기에 환갑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언니가 보내준 사진으로 봤을 때 그 남자는 훤칠한 키에 제법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그레고리 펙을 살짝 닮은 듯 보였다.

엄마는 젊어서부터 영화를 몹시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나오는 ‘로마의 휴일’은 세 번이나 봤을 정도로 주인공들을 선망했다. 그러니까 로마가 아닌 캐나다에서 그레고리 펙을 얼핏 닮은 한 남자를 만나게 됐고 만난 지 두 달 만에 프로포즈까지 받게 됐으니 아주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버린 셈이었다. 그 일이 어떤 심정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는지 잘 모르겠으나 며칠 뒤 엄마는 근처 미용실에 가서 갈색 머리로 염색을 하고 나타나 언니를 놀래켰다고 했다. 나 역시 처음엔 놀랐고 다음엔 배신감이 몰려왔다. 내가 그렇게 졸라대도 하지 않던 염색을 그 남자 때문에 하다니! 변해버린 건 머리색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인 것 같았고 나는 버림받은 아이처럼 슬퍼졌다. 그 때문인지 대놓고 반대하진 않았지만 캐나다에서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문자가 왔다. ‘왜 전화도 안 받고 그래. 엄마 다음 주에 집에 간다. 재환이 동환이 옷하고 너 주려고 영양제 좀 샀다. 공항에 나올 거면 문자해라.’

언니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오드리 헵번이 그레고리 펙과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하듯 엄마도 그렇게 먼 곳으로 떠나버리기로 한 모양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엄마는 지구를 버리고 달로 떠나온 사람처럼 쓸쓸하게 웃고 있었다. 나이 마흔 여섯, 지금 내 나이보다 네 살이나 어린 나이에 혼자가 돼버린 엄마. 남은 생, 누군가의 곁에서 사랑 받으며 살아보고 싶었을 엄마가 정수리부터 하얗게 다시 올라온 은빛 머리를 반짝거리며 나에게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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