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연 지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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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혹시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생각만 하면 괴롭고, 온종일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며,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의도치 않게 며칠 쉬었으면 하고 내심 바라본 적이 있는가? 어떤 일을 해도 감흥이 없고 항상 무기력한가? 이 질문들에 ‘네’라고 대답했다면 ‘번아웃’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완전히 지쳐 번아웃에 빠진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책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가 출간되었다.

쉼 없이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스스로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으면 누구나 번아웃에 빠지기 쉽다. 정신건강전문의 안주연은 의료 현장에서 경험한 수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번아웃에 다각도로 접근한다. 저자는 과도한 업무와 치열한 경쟁, 주변의 평가와 잣대에 짓눌려 모든 일에 심각한 무기력감을 느끼는 현대인의 건강 상태를 진단한다. 번아웃이란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지, 이런 스트레스가 몸과 마음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설명한다. 특히 ‘겨우 이런 일로 힘들어해도 될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피로의 자격이나 기준은 없음을 강조하며,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함께 소개한다.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과 태도가 필요하다. 이 책은 오늘도 하얗게 불태워 재가 되어버린 독자들에게 나 자신을 보살피는 법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번아웃은 사람이 지치고 소진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나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직무와 관련된 스트레스 상황을 가리키지만, 직무를 비롯해 학업, 개인적인 작업 등 그밖에 모든 일과 관련해 심각한 냉소, 효능감 저하, 소진 등을 느끼는 경우를 통틀어 번아웃(burnout)이라고 한다. 번아웃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74년으로, 미국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가 상담사들의 감정노동과 그에 따른 소진을 설명하면서 사용했다. 이 개념은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 2010년대 이후 자세히 논의되기 시작했는데, 그만큼 현대인이 번아웃에 더욱 취약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2019년은 ‘번아웃의 해’였다고 할 수 있는데, 2019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 상태에 영향을 주는 주요한 유해 인자로 번아웃을 새롭게 분류한 것이다. 직무 스트레스가 건강에 심각하게 개입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의미 있는 진전인 동시에 과도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흔히 번아웃을 업무 효율에 관한 문제로 한정해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번아웃은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을 넘어 개인의 신체 및 정신건강 전반에 두루 악영향을 끼친다. 저자는 번아웃의 근본 원인은 개인이 취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을 착취하는 기업과 사회 전체에 있음을 지적하며 그에 따른 각성과 변화를 촉구한다.

직장 스트레스로 힘들어도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 없고, 학업 스트레스로 괴로워도 학업을 무작정 중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책은 번아웃의 원인을 알아도 당장 현실적인 해결책이 요원해 막막하거나 그 원인조차 명확히 알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여러가지 활동을 제안한다.

번아웃에서 회복하려면 우선 나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스스로를 잘 모른 채 살아가고, 머릿속에 생각해둔 ‘그래야만 한다’는 여러 명제에 얽매여 있다. 저자는 내 몸과 마음을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서 벗어나 정확히 관찰하고, 오감을 활용해 내가 느끼는 감각을 세세히 기록해보기를 제안한다. 꾸짖거나 비꼬지 않는 태도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그 답을 찾아보는 방법과, 위급한 상황에 사용할 나만의 응급 처방전을 작성하는 방법도 소개한다. 타인이 나에게 상처 입히지 않도록 단호한 자세를 취하며 원하는 것을 말하는 훈련도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이처럼 몸과 마음의 회복을 돕는 여러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비로소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이런 연결감이 번아웃에서 회복되는 힘이 되어줌은 물론 번아웃을 유발하는 사회를 비판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번아웃에서 회복되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 또다시 번아웃에 빠지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괜찮아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여러 활동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사실, 그리고 혼자서 회복이 어려울 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달라고 당부한다. 독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한 메시지와 따라하기 쉬운 여러 활동이 피로와 무기력감에 시달리는 모든 이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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