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후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종말 후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0.11.26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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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데니 보일 감독 영화 ‘28일 후’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영화 ‘28일 후 스틸컷 
영화 ‘28일 후 스틸컷 

인간들이 사라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더 이상 이 세계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최신곡도, 신간도, 영화도 없다. 늘 우리가 공기처럼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세상의 종말이 와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이러한 사회의 모든 것들도 다시 생성되지 않는다.

영국 데니 보일 감독의 2002년 개봉 영화 ‘28일 후(28 Days Later)’은 ‘생존’이 유일한 목적인 수많은 전염병 영화에서 독특한 관점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생존을 위해 살아만 갈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누리고 있던 과거의 문명을 계속 누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 것인가.

영화는 시종일관 인간이 절박한 생의 순간에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되묻는다.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이 닥치면 누구나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살아만 남으면 되는 것일까.

영화 ‘28일 후’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존자들의 기록이다. 주인공에게는 감염자들을 막을 수 있는 안전 가옥, 빗물을 받은 식수, 적지만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식량, 전기는 들어오지 않지만 촛불을 밝힐 수 있다. 양동이는 변기를 대신해 배설물 처치의 고통에서 덜어준다.

다소 부족하기는 하지만 바이러스에 의해 세상이 멸망된 후 그래도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장치는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것들을 버리고 사람들이 같이 모여있는 안전지대로 떠나려고 한다. 정체불명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 믿고, 단지 한 대의 차량에 모든 목숨을 걸고 말이다.

 

영화 ‘28일 후 포스터

절박한 삶의 순간에 던져진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

주인공 청년 짐은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입원 중에 이러한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게 됐다. 의식불명이던 그를 남겨두고 사람들은 바이러스 감염자들에게서 도망쳤다. 그가 환자복을 입고 걸어 나온 영국 런던의 모습은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황량하기만 하다. 사람은 사라지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변종 인간이 나타났다. 변종 인간은 살아남은 인간을 공격하고 물어뜯었다.

바이러스의 시작은 시골 어느 곳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바이러스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거의 없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도 죽지 않은 자들은 생존자들을 공격했다. 이미 정부도, 군대도, 경찰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각자의 목숨은 각자 책임져야 하는 아비규환의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 바이러스의 정체는 ‘분노’였다. 영화는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한 영장류 연구시설에 갇혀있는 침팬지를 지목했다. 이 침팬지들은 하루 종일 쇠사슬에 묶여 철창 속에서 전 세계 인간들이 벌이는 가장 폭력적인 행위의 장면을 본다. 전쟁, 폭행, 살인, 고문 등 가장 폭력적이고 잔혹한 장면을 계속 뇌로 전달받는다.

침팬지들은 영상을 보면서 분노가 축적된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침팬지들을 구출하기 위해 온 동물 권리 운동가들이 침팬지에게 물리고 인간은 현재의 변종 인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분노 바이러스는 원래 인간의 분노를 통제할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분노는 통제되지 못하고 인간이라는 종의 멸망으로 이어진 것이다. 바이러스는 결국 이기적인 인간의 탐욕이 동물의 생명과 권리를 착취하면서 만들어낸 탐욕의 결말이었다.

짐이 병원에서 나와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목격한 것은 시체와 쓰레기, 변종 인간뿐이었다. 짐은 변종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신을 구출해 준 선의의 두 남녀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미 짐의 부모는 자살한 상태였다. 그들은 침대에 평온한 얼굴을 하고 누워있었다. 침대 위에서 발견된 쪽지에는 아들이 계속 병원에서 깨어나질 않길 바란다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부모는 의식불명으로 자고 있는 아들이 지옥으로 변해버린 세상에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

그러나 부모님의 선택에 슬퍼할 시간이 없다.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감염자들이 짐 일행을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구해주었던 일행이 감염되고 죽게 된다. 이후 그들이 가는 길의 여정 또한 죽음은 친숙한 존재였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삶의 연속이었다.

안전한 곳을 향해 가던 이들이 안전 가옥에서 살고 있는 프랭크 부녀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프랭크 부녀는 식량과 식수, 안전한 잠자리, 촛불 등 부족하지만 사람이 생명을 유지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곳에서 평생 사는 것보다 위험하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들은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기보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기를 원했다.

일행 중 가장 냉철한 여성 셀레나는 이들과 생각이 달랐다. 감염자들을 죽이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셀레나는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을 버리고 감염자들이 득실대는 거리로 나서는 이들을 만류했다. 하지만 짐과 프랭크 부녀의 뜻은 완곡하기만 했다.

 

영화 ‘28일 후 스틸컷 
영화 ‘28일 후 스틸컷 
영화 ‘28일 후 스틸컷 
영화 ‘28일 후 스틸컷 

라디오에서 나오는 정체불명의 소리에 이끌려 집을 나와 안전지대로 향하던 이들은 사람도 없고 변종 인간도 없이 평화로운 초원 위에서 뛰어노는 말 떼를 보며 잠시나마 숨을 돌린다. 하지만 불행은 끝이 없다. 프랭크가 나무 위에서 죽은 시체를 올려다보며 까마귀를 쫓다 시체에서 떨어진 분비물이 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감염된 시체에서 떨어진 분비물이나 피가 눈이나 코, 입 등으로 들어가면 즉시 감염이 된다.

프랭크는 변종 인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알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향해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딸을 향해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외친다. 자신이 그렇게도 혐오하던 변종 인간이 되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자각하는 그 찰나만큼은 인간이다. 아버지가 변종 인간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딸의 심정은 어떠한가. 하지만 이것은 비극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들이 찾아가던 안전지대는 군인들이 지배하는 지역이었다. 프랭크의 사망을 기점으로 우여곡절 끝에 만난 군인들은 이들을 보호하여 자신들의 기지로 데리고 간다. 이들이 원래 가고자 하던 목적지였다. 그곳에는 적지만 따스하게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잠자리, 변종 인간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무기가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프랭크의 딸인 해나는 처음부터 이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짐이 느끼는 감정도 비슷했다. 그 이유는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변종 인간을 생포해 쇠사슬로 묶어놓고 관찰하고 있는 그들의 잔혹함을 알게 되면서 실체화된다. 이들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라디오에 메시지를 보내는 일을 반복해왔다. 라디오를 듣고 찾아오는 사람 중 여자들은 자신들의 성노예로 만들고 남자들은 죽여 왔던 것이다.

안전한 집과 식량을 버리고 사람들의 온기를 찾아왔던 짐 일행은 변종 인간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잔인함과 추악함을 만나게 된다. 인간은 얼마나 더 이기적이고 잔인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를 제작한 대니 보일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추악함과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진짜 세상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었다.

짐 일행은 군인들을 따돌리고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서로를 의지하며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 장면 속 셀레나와 해나가 천을 엮어 커다랗게 구조 문자를 만들어 지나가는 헬기를 향해 웃음 짓는 모습은 바로 아무리 어려움을 겪더라도 다시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 원한다는 몸짓을 뜻한다.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로 깊은 절망감과 좌절이 익숙해진 지금, 영화는 지금이야말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함께 살아가자는 애절한 목소리를 내며 절절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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