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세상] 고홍석

[위클리서울=고홍석 기자]

ⓒ위클리서울/ 고홍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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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서면 바람소리가 들립니다. 'ㅅ'이라는 닿소리와 'ㅜ'라는 홀소리가 만나면 입술이 둥글게 말리면서 가슴에 고인 바람이 새어 나옵
니다. 그러다가 'ㅍ'에 이르러 둥글게 말린 두 입술이 서로 만나고, 그러면 어느새 바람이 멈춤니다. 그렇습니다. '숲'이라는 단어, 그리고 숲
속에 들어서면 가슴에 막혀 있던 세속의 바람이 몸으로부터 나오고 새 바람이 들어옵니다. 함양 상림 숲을 거니면서 <시인와 촌장>의 <숲>
을 나즈막하게 불러봅니다.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눈물 고인~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외롭고 외롭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숲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슬픔 고인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어둡고 어둡던 숲
음- 내 젊은 날의 숲


여름 숲은 그늘이 있어서 그 아래 쉬는 맛이 있어 좋습니다. 가을에는 사그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있어 좋습니다. 게다가 한여름 온통 초
록색이었던 이파리들이 조락의 계절로 가면서 색깔의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도 또한 좋습니다. 느닷없이 요즘 바람소리가 그리웠습니다. 숲
에서 사는 그 바람이 그리워졌습니다. "숲"하고 길게 소리를 내면 가슴에 응어리진 걱정들이 달아날 것 같았습니다. 나무 이파리를 떨구고 이
제 앙상한 가지를 하늘로 치켜세운 나무들, 버려야만 추운 겨울을 나고, 봄이 되어 새순을 띄우고, 여름이면 찬란한 이파리를 피어내는 너무
도 간단한 '버림의 미학'을 아는 나무들이 모여 사는 숲속을 걷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인과 촌장>의 노래말에는 '숲을 나서야 숲이 보이고 숲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두 시간 가까이 숲을 거닐다 차를 몰아 지리산 자락
에 위치한 실상사 경내에 들어서니 보광전에 걸린 풍경이 바람에 청아한 소리로 지친 나를 반깁니다. 함양 상림 숲에서 나와 실상사 경내에 들
어와서야 겨우 숲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며 억지부려 봅니다.

 

 

<고홍석 님은 전 전북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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