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주나 – 세계여행] 프랑스 파리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스물세 번째 이야기.

 

내가 파리를 사랑하게 됐고 파리가 날 사랑하게 됐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답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파리 지하철에서 만난 파리 바게트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실망’이라는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실망의 사전적 의미는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몹시 마음이 상함’이다. 마음이 상했다? 왜? 뜻대로 되지 않아서. 무엇이? 바라던 일이.

10년 전 나는 처음 만난 파리에 무척 실망했었다. 그때 내가 바랐던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바랐기에 마음이 상했던 걸까? 가보지도 않았던 곳에 대해 마음대로 상상 했다가 상상과 같지 않다고 마음이 상했던 건 도대체 무슨 심보였을까?

나에게는 ‘파리’라는 명칭 자체에서 오는 낭만이 있었다. 이 낭만은 누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에펠탑 앞의 피크닉과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예술가의 도시, 멋쟁이들이 활보하는 패션 도시, 크루와상, 마카롱 등등 책과 영화에서 본 사실을 바탕으로 내 멋대로 파리에 대해 상상했다. 그러고는 낭만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낭만 가득 안고 도착해서 마주한 파리의 노후 된 시설, 악취, 노상방뇨, 강매 하려는 집시들, 불친절한 웨이터를 보고 무척 실망했었다. 에펠탑과 모나리자는 여전한 파리의 사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부분들을 보고 실망한 것이다. 나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부분들이 상상과 다르다고 실망하다니. 그러니까 누가 멋대로 상상하래? 파리는 나에게 사실만 말해주었고, 그 사실들을 보여주었는데 혼자 실망했다. 어째든 그 실망이라는 감정을 다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회복되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파리가 날 회복시켜 주었다.

 

세계여행 중 첫 기념품 에펠탑 열쇠고리. 솔직히 고백하자면 잃어버렸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내가 왜 이 수프를 먹어보지 않고 왔을까? 역시 계속 가고 싶은 곳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어떠한 여행지를 두고 누구나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책을 읽고 같은 독후감이 나올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내 상태, 내 심리, 그러니까 내가 지금 어떠한 상황에서 이곳에 와 있는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거다. 누구와 함께인지도 중요하고, 직전에 겪었던 상황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기다리고 있는 일 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음은 결국 상황이 아닐까? 마음은 내 것인데, 상황은 주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끔은 이 부분이 어렵다. 내 마음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럼 나는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일까? 어렵다.

아무튼 기대를 너무 한 탓에 마음대로 상상해 버리고 실망까지 한 대학생의 나는 상황이 그랬던 거라 생각 한다. 누구나 꿈꾸는 대학생 여름 방학 유럽 배낭여행이기에 그 꿈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고 달콤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다.

하지만 10년 만에 다시 파리에 방문한 나의 상황은 굉장히 달라져 있었다. 세계여행을 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이미 많은 나라를 방문해 보았기에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 내 여행의 모든 과정을 자랑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파리에 온 목적은 그냥 경유지일 뿐이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비행기 값이 저렴한 곳을 찾다가 찾은 2일이라는 시간을 투자하는 곳. 그런데 책을 여러 번 읽을 때마다 상황에 따라 다른 독후감이 써지는 것처럼 여행지를 여러 번 가면 그 때마다 다르다.

 

할 일이 없어서 에펠만 앞에서 멍하게 있는다고? 낭만적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어떠한 여행지를 두고 누구나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책을 읽고 같은 독후감이 나올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정말 웃긴 것은 이번에 내가 만난 파리는 갑자기 낭만을 느끼게 해줬다는 거다. 이상하다. 그렇게 낭만을 외칠 때 실망만 했던 곳에 아무런 생각 없이 왔더니 낭만을 느끼다니. 기대 없는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 “실망하지 않으려면 애초에 기대를 하지마”라는 말을 손가락에 꼽히게 싫어하는데 기대 없이 왔더니 좋은 거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기대 없이 와서 좋은 걸까? 왜 갑자기 감동을 주는 거지? 어쩌면… 아주 조심스럽게 말 해보자면 그건 그냥 ‘나이’와 ‘시간’인 것 같다. 나이도 나의 상황 중 하나이니까 말이다. 난 아직도 내가 어리다고 생각하지만 10년 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감동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그것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냥 생각을 다르게 하는 거다.

크리스마스에 도착한 파리는 정말 조용했다. 프랑스 음식이 먹고 싶었는데 식당이 전부 문을 닫아서 겨우 찾은 한식당에 가서 돌솥 비빔밥을 먹었다. 중국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비빔밥 맛과 달랐다. 그냥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파리에서 돌솥비빔밥 먹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낭만적이다.

휴일이라 정말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잠깐 들려 기념사진만 찍고 공원에서 멍하게 센느강을 바라보다가 에펠탑 앞에서만 4시간을 보냈다. 20살 때 왔던 배낭여행에서는 하루에 정해진 할 일이 너무 많았기에 멍하게 있는 시간을 가지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할 일이 없어서 에펠만 앞에서 멍하게 있는다고? 낭만적이다.

 

크리스마스에 파리에서 돌솥비빔밥 먹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감동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생각을 다르게 하는 거다. 모스카토 추천 받은 레스토랑에서 
감동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생각을 다르게 하는 거다. 모스카토 추천 받은 레스토랑에서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이번에 여행하면서는 정말 사진을 많이 안 찍고 있다. 여행 준비를 하며 예전 사진 정리를 했는데 어디인지 알 수도 없는 기억에 없는 건물들과 셀카를 보고 결심했던 일이다. 아날로그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시절처럼 사진찍기. 찍어봤자 정리하기만 힘들다. 그런데 에펠탑 앞에서만 100장 가까이 찍었다. 3개월 동안 지킨 결심이 에펠탑 앞에서 무너졌다. 낭만적이다.

한 커플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고맙다고 하고 한 장 찍었다. 그런데 그 뒤로 괜찮다고 하는데도 계속 몇 장 더 찍으라고 하는 거다. 알고 보니 사진 찍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여자친구가 남기고 싶었던 거다. 내가 그들의 낭만에 이용된 거다. 이것 또한 낭만적이다.

여행하면서 짐을 늘리지 않기 위해 기념품을 구매 한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기념품을 샀다. 그것도 한국에서는 절대 쓸 일이 없는 열쇠고리를 말이다. 에펠탑 열쇠고리. 나의 첫 기념품이 에펠탑이라니 낭만적이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서 와인을 추천받았다. 어떤 맛을 좋아하냐고 해서 상큼한 걸 좋아한다고 했다. 정말 딱 알맞은 와인이 있다고 했다. 기대가 되었다. 와인을 받고 너무 맛있어서 와인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유일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모스카토’가 나왔다. 분명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마셔보는 맛처럼 느껴지다니 낭만적이다.

 

사랑해 파리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파리를 통해 내가 성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불평을 가지고 불만을 늘어놓을 수 있는 상황들에서 낭만을 느끼다니 말이다. 파리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어서 내가 이야기 할 것이 없다. 나보다 많이 가본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도 배우고, 수많은 책과 영화에서 파리를 배경으로 이야기 한다. 하지만 난 역사와 문화, 심지어 맛집도 잘 모른다. 그리고 확실히 나에게 파리는 살고 싶은 곳은 아니다. 여행을 하면서 항상 그 곳에 살고 싶은 지를 생각해 보곤 하는데 파리는 아니다. 다만 계속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되었다. 4계절 모두 궁금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와보고 싶은 곳이다. 올 때마다 어떤 다름을 주는지 느끼고 싶다. 알고 싶다. 과연 다음 파리 여행에서는 내가 어느 부분이 성장할 지도 궁금하다. 아! 그리고 또 모르지. 갑자기 살고 싶어질 수도.

이번 파리 여행 후, 예전에 봤던 영화 ‘사랑해, 파리’를 다시 보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이다.

“아주 아름다운 작은 공원을 찾았답니다. 전 벤치에 앉아서 사온 샌드위치를 먹었어요. 맛이 좋았죠. 그런데 어떤 일이 생겼어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일이요. 거기 앉아있었죠. 낯선 나라에 혼자서, 내 일과 멀리 떨어져서, 또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떠나서, 어떤 느낌이 오는 거예요. 마치 뭔가를 떠올리는 것 처럼요. 여태 몰랐고, 예전부터 기다려 온 그 무엇이. 하지만 그게 뭔지 몰랐어요. 그건 내가 잊고 있었던 어떤 것이었는지도 몰라요. 혹은 평생을 그리워하던 그 무엇인지도 모르고요.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때 내가 느꼈던 환희와 슬픔뿐이에요. 하지만 많이 슬프진 않았어요.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으니까요. 네, 살아있어요. 그때가 바로 내가 파리를 사랑하게 됐고 파리가 날 사랑하게 됐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답니다.”

이 주인공이 다른 여행지에 가서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파리에 대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많은 감정을 갖게 된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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