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전진우 민주사회네트워크 회장-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전진우 민주사회네트워크 회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핵심은 한반도 ‘비핵화’다.

▲ 일각에서는 남북문제 진전과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 오히려 트럼프가 승리하는 편이 낫지 않았느냐는 말을 하고 있는데,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일관된 신념을 갖고 있었느냐고 반문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식의 즉흥적이고 인기영합주의식의 대북정책을 펴지 않으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지는 못할 것이다. 북이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유엔을 앞세운 지속적인 경제 제재와 압박으로 일관하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향후 추이를 봐야겠지만, 그렇다고 방관할 수는 없다.

 

- 정치권의 남북 관계 해법은.

▲ 이제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매사 미국 눈치만 보고 끌려만 다녀서는 ‘한반도 평화 운전자’는커녕 미국과 북한 양측 모두로부터 ‘팽’ 당하는 딱한 처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답은 나와 있지 않은가. 남북 종전선언과 북한의 핵 폐기, 북미 수교, 남북한 평화를 통한 공존 등….

통일은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과정마다 곳곳에 지뢰가 묻혀있다. 그러나 대원칙이 세워졌다면, 흔들리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 나아가야 한다. 이와 관련해 남북한 간 적대에 못지않은 남남(南南)갈등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인지도 문제다.

이는 실로 특정 정권 차원이 아니라,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해서 우리 사회가 의견을 모으고 조정하고 방향을 잡아 한걸음 씩 실천해나가야 할 중대한 과제다. 남북정책에 관한 한 정치권도 눈앞의 정략을 떠나 장기적으로 이행해나갈 합의의 ‘가이드라인’이 요구된다. 언제까지 ‘종북 좌파’ 타령이나 하고 있겠는가.

 

- 바이든 정부 출범 후, 북한의 대외 정책 노선을 어떻게 분석하나.

▲ 크게 우려되는 것은 북한의 평양 정권이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저들의 협상 전략상 몸값을 올리기 위해 모험적 행동을 하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우리 정부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 북미 간 협상을 주선한다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북한에 똑 부러지게 ‘경고’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경고를 반드시 공개하라는 말이 아니다. 공개적 경고를 했는데도 북한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만 떨어뜨릴 뿐이다. 다양한 대북 채널을 통해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신호를 보내야 한다.

 

- 2016년 겨울 공정 사회를 외쳤던 촛불 시민혁명 4년이 흘렀다. 민주화가 진전했는지.

▲ 우선 민주주의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흔히 자유민주주의라고도 말하는데, 이때의 ‘자유’는 본래 개인 소유권의 자유라는 의미였다.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 왕정이 붕괴하면서 이른바 공화국이 들어서고, 민주주의 개념이 대두되었을 때 당대의 기득권자들인 ‘자유주의자’들은 정체(政體)가 대중에 의해 장악되었을 때의 혼란을 우려했다.

결국은 타협안으로 대의(代議) 민주주의가 탄생했고, 오늘날에는 자본주의적 질서와 결합한 대의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받아들인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속성상 자본(소유주의)에 의한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북유럽의 나라들에서는 이른바 자유 대신 사회를 머리에 붙여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체로 발전시켜 왔다. 자본의 개인 소유에서 공공의 소유에 방점을 찍은 사회주의적 실험을 해온 것이고, 그것이 상당한 성과를 이룩해낸 것도 사실이다.

 

- 소득 불평등이 가속화되면서 기본소득제가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는데.

▲ 최근 ‘세계 경제학계의 스타’로 떠오른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근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인 북유럽 국가들의 사민주의도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고 지적한다. 피케티의 대안은 ‘참여 사회주의’이고 그 실천적 방안으로 기본소득제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그의 방대한 저작에 대해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 화두로 떠오른 ‘기본소득제’를 내세우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그리고 이제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하이퍼 자본주의’로 진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특히 일자리 문제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지식 정보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 거기에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람 간 이동이 제한되는 악재가 겹치면서 일자리 감소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기조차 어려운 사태에 직면할 위험이 고조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 기존의 양극화, 노동, 저출산 문제 등이 커지고 있지만, 과거와 다른 개혁적인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 불평등이 확대되고 빈부 간, 계급 간 갈등이 심화할수록 ‘안전지대’에 있다고 생각하는 부자들과 기득권자들 역시 결코 안전할 수 없다. 많은 갈등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지난 세기 이래 복지 확대를 통한 불평등 축소와 해소에 꾸준히 노력해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점에서 우리 사회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예컨대 출산율 저하와 노령화 시대에 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재정 증대를 통한 복지 확대다. 이건 보수 정권이 들어서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증세라는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면 어느 정권도 주춤거린다.

세금 늘어나는 걸 좋아할 유권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당장의 표가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필수적인 과제다. 국민을 설득하고 다수 유권자의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정치불신 원인을 지적한다면.

▲ 앞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해 짤막하게 밝혔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한계는 성과를 내기까지 지난한 합의 과정을 거처야 하는 만큼 대단히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단기적 효과를 내기에는 ‘독재’가 나을 수 있다. 이른바 박정희 시대의 ‘조국 근대화’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에도 어떤 면에서 독재의 효율성이 작용한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다.

대의민주주의로 대변되는 국회는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여기서 국민과 시민, 유권자가 직접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이 강조되지만, 이 또한 엘리트 중심, 운동가 중심이라는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 민주주의 퇴보를 우려하는데 어떻게 분석하나.

▲ 일각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절제 없는 민주주의, 자유만 외치고 책임은 외면하는 ‘질서 없는 민주주의’의 폐해가 더 크다고 본다.

사실 우리 사회가 민주화한 것은 1987년 이후 불과 30여 년밖에 안 됐다. 너무 짧았고 후퇴하고 말고 할 겨를조차 없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이야말로 대표적인 민주주의 후퇴였지만, 결국 ‘민주적 시민’에 의해 극복되었다.

일개 목사가 현직 대통령에 대해 입에 담기 힘든 못할 욕설을 내뱉고, 일부 ‘유투버’들이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하고 싶은 ‘말’을 맘껏 쏟아내고 있는 지금, 표면적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반(反) 정권 차원의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 언론 문제를 보자. 우리 사회 언론의 위상과 정파성 문제 어떻게 봐야 하는지.

▲ 언론, 특히 신문은 정파성을 가질 수 있다. 신문마다 추구하는 가치관과 관점이 다를 수 있고, 또 어느 면에서 달라야 한다. 객관성의 함정에 빠진 언론의 기회주의적인 중립과 무(無) 정견, 무책임이 오히려 공동체의 올바른 여론 형성에 해악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언론은 그런 수준에서의 정파성이 아니라, 언론사 자사 이기주의 또는 영업 이익, 자신들만의 독자를 위한 프레임 짜기. 그에 맞춰 ‘사실’을 취합하거나 과장, 왜곡하는 행태를 보이는 위험한 수준이다.

언론은 다양한 여론을 통해 국민통합과 사회통합을 이루는 주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우리 언론은 오히려 사회 분열과 반목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지 않느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 ‘민주주의와 언론’ 문제에 대해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

▲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원초적인 욕구가 있다. 이런 속성에 편승해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가짜 뉴스 남발은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심각한 독소다.

무엇보다 언론종사자의 각성이 필요하다. 있는 사실을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보도하는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회복해야 한다. 아울러 깨어 있는 시민들의 냉정하고 합리적인 눈과 경계인으로서 역할도 요구된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뉴스는 좀 이상하다, 근거가 있나, 다른 의견도 있을 텐데, 이건 아무래도 가짜 뉴스 같다. 퍼 나르지 말자’라는, 작지만 중요한 인식이 하나하나 실천으로 결집 될 때, 그 결과는 태산처럼 높아질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 회복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다. 국민이, 시민이, 유권자가 무지하거나 무의식하거나 무감각할 때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다고 하지 않는가.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