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의 어리석은 역사는 샴쌍둥이처럼 반복된다
인간들의 어리석은 역사는 샴쌍둥이처럼 반복된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0.12.23 0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소설 '페스트'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된다. 같은 일이 또 반복되며 사람들을 위기를 맞는다. 지금도 그렇다. 알베르트 카뮈(Albert Camus)가 지난 1947년 쓴 소설 <페스트>에는 쥐 한 마리가 가져온 전염병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의 소설은 벌써 70여 년이 지났지만 현대인들에게 다시금 소설을 읽게 하는 힘을 가졌다. 왜냐면 사람들이 페스트로 죽어가던 그때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19(COVID-19) 사태로 혼란에 빠진 2020년의 지금이 무서우리만큼 닮았기 때문이다.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동은 소설 속 사람들과 마치 샴쌍둥이처럼 닮았다.
 

소설 '페스트'
소설 '페스트'

소소한 행복을 앗아간 도시의 비극

소설 속 배경은 프랑스의 시골 해안 도시 ‘오랑(Oran)’이다. 이곳은 너무나 평화롭다 못해 따분하기까지 하다. 카뮈는 이곳을 ‘완전히 밋밋한 한 도시’라고 적는다. 사람들은 성실하게 직장을 다닌다. 오랑시의 사람들은 적당히 정겹고 욕심 많고, 솔직하고, 활동적이다.

이들의 유일한 낙은 퇴근 후 카페에 모여 시시닥거리며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고 함께 카드놀이를 하고, 친목회를 벌여 왁자지껄 떠들며 허풍을 떠는 시시한 그런 일들이다. 주말을 즐기기 위해 평일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지금과 다르지 않다. 오랑의 저녁 무렵은 현재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주인공 ‘리외’는 저녁 시간 바람에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불고기 냄새, 큰 소리로 떠드는 젊은이들에게 점령당한 거리에서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자유의 즐겁고 향기로운 웅성거림을 느꼈다. 전부터 알고 있었던 익숙한 느낌, 늘 무척 좋아하던 이 무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별다를 것도 없는 시시한 일이 너무나 소중한 일이 되어버렸다. 전염병 ‘페스트’가 발발하며 사람들이 누리던 소소한 삶은 사라졌다. 서로 모이면 안 되는 전염병의 특성 때문이다.

전염병의 발단은 ‘쥐’ 때문이다. 쥐와 같은 야생설치류에 있던 균 ‘옐시니아 페스티스’가 사람들에게 옮아간 탓이다. 역병의 조짐은 쥐가 죽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게 많아지면서였다. 처음 쥐 한 마리가 병원 계단에 죽어있는 것을 보고서 이상하게 여긴 이는 없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털에 젖은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달려 나와 돌진하듯 피를 토하면 죽은 광경을 보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기이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쥐들은 피를 토하며 길거리에서 집 안에서 건물 계단에서 죽어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따라 죽었다. 페스트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감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점이나 비말 등으로 감염되는 등 최근 코로나19와 흡사한 부분이 많다. 전염성이 강하고 사람에게 발병하는 경우 정도가 다양해 가벼운 경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 또한 유사하다. 소설 속 페스트와 코로나19는 병의 유사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 페스트에는 급속도로 번지는 전염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는 과정과 비극의 순간에 몰린 사람들의 어리석고 탐욕적인 민낯을 제대로 드러낸다.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끝까지 인내하고 싸우는 것, 코로나 시대 우리가 할 일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는 패닉에 빠졌다. 코로나19가 창궐해 의료가 붕괴될 직전의 수많은 국가들이 도시를 수개월 봉쇄하고 사람들을 만나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했지만 바이러스의 강력한 확산세를 저지하기 힘들었다. 하루에도 몇 천 명이 사망하는 유럽에서는 국가가 자신들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오히려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며 바이러스는 더욱 창궐해갔다. 국가의 통제를 듣지 않은 국가들의 경제 성적표는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병으로 사람들이 죽고 의료 붕괴로 죽고 경제가 마비되면서 더 큰 고난이 다가왔다.

오랑시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가짜뉴스를 신봉하게 된다. 가짜 뉴스가 퍼지게 된 이유는 병의 증세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페스트에 걸린 사람들은 푸르스름한 입술과 납빛의 눈꺼풀을 떨었다. 숨은 불규칙적이고 짧았다. 멍울의 통증 때문에 온 몸이 찢기는 듯 괴로워했고 땅 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계속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은 환청을 들었다. 급기야는 사망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병에 걸릴까 두려움에 떨었다. 두려움이 강해질수록 유언비어는 난무했다. 수많은 가짜 뉴스들이 확산됐다. 시민들을 안심시켜야 할 정부의 대처도 갈팡질팡이었다. 정부는 낙관적인 전망만 발표했다.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시민들은 잘못된 신앙으로 몰려갔다. 이들의 신앙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모이지 않아야 한다는 감염병의 제1수칙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사재기에 몰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기 범죄가 극성을 피운다. 절대적으로 풍족하지 않는 재화를 비싼 값에 넘기겠다는 이익집단들이 도시를 활개 친다. 상점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병보다 더 무서운 경제여파가 사람들을 옥죄어 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슬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다. 갑자기 많은 수의 사람이 병원에 몰리면 의료시스템은 감당할 수 없다. 중증환자는 물론이고 경증 환자라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생사를 장담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와 제일 먼저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죽음은 늙고 병든 이에게 가장 먼저 찾아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사망자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마치 전염병이 종식된 것과 같은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한 순간 역병은 파도처럼 번졌다. 재확산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자 수는 배로 치솟았다. 정부는 다시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도시 봉쇄를 지시했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 전염병은 다시 퍼진다. 실제로 긴장이 풀리는 순간 소설 속 상황처럼 전염병 감염자는 또 다시 치솟을 것이다. 실제로 스페인 독감 때에도 감염자 수가 일차적으로 정점을 찍은 후 꺾어지는 듯 하다가 수개월 후 더 큰 2차 파도가 도래했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주인공 리외와 일행들의 활약과 더불어 시민들의 노력으로 오랑에서의 페스트는 소멸했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 오랑시의 사람들은 얼떨떨하면서도 이 낭보에 환호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별안간에 전염병이 종식된 것에 의아해했다. 소소한 삶의 행복이 다시 도래했다. 사람들은 다시 일상을 찾아갔다.

하지만 균의 완전한 사멸이란 없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퇴치한다고 해도 또 다른 바이러스가 출현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카뮈가 글 말미에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도 있고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나 손수건, 낡은 서류 속에서 꾸준히 살아 있다가 언젠가 인간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기 위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처럼 수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해 전망하고 있다. 우리가 어리석게 긴장을 푸는 순간 바이러스는 또 다시 시작될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