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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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군대 기상 나팔소리와 사이렌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나와 아들의 휴대폰 알람 소리다. 5분 뒤에 또 울릴 예정이다. 창문 밖 표정은 아직도 어둡다. 건너 편 아파트의 창문에 간간이 불빛이 눈에 띈다. 겨울철 아침 여섯시 반은 일어나기 정말 힘든 시간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서둘러 일어나서 간단한 식사준비를 해놓으면 아들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밥 한 술 뜨는 둥 마는 둥 한 뒤 대충 씻고 같이 집을 나선다.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나의 하루 일과는 시작한다. 아직 어스름이 깔린 이른 아침의 공기가 차갑다. 버스 정류장 근처를 지나는데 아들과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 두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핏 보이는 넥타이 색깔이 같은 학년인 것 같았다. 창문을 내리고 학생들에게 고래고래 소리쳤다.

“학생들! ○○고 학생들이지? 데려다 줄게. 타! 여기 같은 학년 학생도 있어.”

“아… 엄마 왜 그래? 그냥 좀 가.”

아들이 핀잔을 준다. 같은 또래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것이 불편하단다. 이 추운 날씨에 같이 좀 가면 어때서 그러냐며 잔소리를 퍼 부었지만 괜한 짓 했나 싶기도 하다. 정류장 학생들은 잠시 머뭇머뭇 하더니 아침 칼바람을 견디는 것 보다 어색함을 견디는 게 쉽겠다는 판단을 한 듯 차에 올라탔다. 가는 길 내내 삭막함과 어색함이 맴돌았다. 차량 히터를 켰지만 실내 공기는 시베리아 벌판처럼 냉랭했다. 같은 학교 학생들을 지나칠 수가 없어서 매번 그렇게 태우고 간다. 아들은 싫다지만 그렇게 태우고 가면 괜히 이유도 없이 뿌듯하다.

집에 돌아오기 전 헬스장에 잠시 들른다. 하루 중 유일하게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다. 주말동안 계속 먹고 뒹굴었으니 월요일 아침은 반드시 헬스장을 가야 한다.

러닝머신을 뛰고 있는데 반가운 얼굴이 있다. 이웃집 애기 엄마다. 우리 애들과 비슷한 학년의 두 딸을 두고 있는데 얼마 전 늦둥이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 붓기가 조금은 남아 있는 듯 했지만 몇 달 만에 만나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출산한 애기 이야기부터 십 수 년 만에 다시 시작된 육아의 고충을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다가 큰 아이들의 입시에 관련된 정보를 주고받고 학교 내신 성적을 걱정하다 보니 어느새 운동은 뒷전이 됐다. 우리 이야기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는지 옆에서 운동하던 어르신들이 자꾸 째려보는 듯 했다. 운동한 시간 보다 수다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운동은 또 내일부터다.

집에 와서 씻고 수업 갈 준비를 한다. 아이라인을 그리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다. 얼굴이 한결 화사해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화장이 짙어진다. 잔주름과 처진 눈꼬리를 어떻게 해서든 감춰야하기 때문이다.

월요일 수업은 왕 초보반이다. 난타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쉬운 타법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연령대가 조금 높은 편이어서 과격하지 않은 움직임으로 북을 칠 수 있도록 안무를 짜야 한다. 몸동작이나 스틱 잡는 방법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봐주기도 해야 한다. 왕 초보반의 특징은 회원들이 잘 하다가도 내가 가까이 가면 자꾸 틀린다. 심장이 요동을 치기고 식은땀이 다 난단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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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에? 아니, 제가 여러분들 잡아먹기라도 한답니까?”

그렇게 한바탕 웃다 보면 어느 새 수업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난타 수업을 마치고 나면 진도 북을 배우러 간다. 월요일마다 나는 진도 북을 배우러 다닌다. 북을 어깨에 메고 춤을 추면서 북을 치는 북놀이다. 완판은 약 7분 정도 소요가 되는데 북을 멘 채로 뛰고 돌고 하다보면 등줄기며 이마에서 땀이 난다.

오늘 간식 당번이 귤 한 상자를 사왔다. 완판을 끝낸 뒤라 열을 식히려 귤을 향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다 같이 둘러 앉아 귤을 까먹으며 소소한 담소를 나눈다. 어디가 아파서 병원을 다니는 사람, 자제들이 바빠서 갑자기 손주를 보게 됐다는 사람, 김장 김치가 너무 맛있게 됐다고 자랑하는 사람, 진도 북 선생님은 공연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비슷비슷하다.

동네 친구와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애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엄마다. 서로 집안 이야기도 터놓고 남편 흉도 보고 자식 자랑도 하는 흉허물 없는 사이다. 주꾸미 볶음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인다. 오후가 훌쩍 지났으니 낮술은 아닐 게다. 술이 술술 잘도 들어간다. 월요일부터 술이라니 양심이 좀 아프기는 하다. 조금만 먹고 들어가야 한다. 저녁거리를 장만하러 마트를 들러야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공연 반 수업이 있다. 이번 주말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서 연습을 빡세게 해야 한다. 요즘 연말이라 송년회 모임이 많을 때다. 언제 어디서 섭외가 와도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평소에 연습을 많이 해둬야 한다. 공연이 끝나면 뒷풀이 겸 송년모임을 할 것이다. 스스로들의 향상된 실력에 자축을 하고 내년의 계획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 낼 것이다. 내 마음은 벌써 들뜨고 기대가 된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참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고 싶었다. 1년 전 이맘때와 오늘을 비교해 본다. 목적지는 아직 멀었는데 엔진은 고장이 나고 기름은 바닥이 나서 미처 손 써볼 겨를도 없이 다른 세상에 불시착한 기분이다. 나아질 것이란 믿음 하나로 버틴 1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희망이 옅어질까봐 겁이 난다.

오늘도 어스름 새벽을 뚫고 밝은 아침 해가 떠올랐다. 버스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이제는 감히 태워 갈 수 없게 되었다. 같이 웃고 북을 치며 땀 흘리던 난타 멤버들은 못 본지 몇 달 되었다. 여전히 세상은 멈춰있지만 반드시 회복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오늘도 부여잡고 있다. 몸은 비록 멀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멀어지지 않도록 안부 전화를 해보려 한다. 괜찮아 질 거라고, 언젠가는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우리 모두 힘내요. 다시 만날 그날까지 꼭 건강 하자고요.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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