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영화 ‘퍼펙트 센스’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영화 ‘퍼펙트 센스’
영화 ‘퍼펙트 센스’ 스틸컷

한류가 대세다. K 콘텐츠의 저력이 세계를 감동시켰다. 지난 2월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차지하며 아카데미 역사를 새로 썼다. 방탄소년단(BTS)의 ‘Dynamite’는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지난 11월 이들이 발표한 ‘Life Goes On’은 한국어로 된 노래 중 빌보드 싱글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방탄소년단의 ‘Life Goes On’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다. 이들은 자전거 안장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손으로 닦고 입으로 불며 코로나19로 나가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을 이야기 한다. ‘Life Goes On’ 말 그대로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이 망가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계속 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바로 이 문장은 데이빗 맥킨지 감독의 영화 ‘퍼펙트 센스’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문장이기도 하다.
 

영화 ‘퍼펙트 센스’ 스틸컷
영화 ‘퍼펙트 센스’ 포스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2011년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남녀가 벌거벗고 입술을 맞추는 장면을 가장 크게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 영화는 멜로 영화가 아니다. 바이러스에 의해 일상이 파괴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다. 마치 이들의 모습은 지금 코로나19와 너무 흡사한 현실로 다가온다. 영화는 한 중년 남성이 병원을 찾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남자가 병원을 찾은 이유는 후각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의료진들은 남자의 반응을 신종 바이러스 감염으로 봤다. 의료진에 의해 남자는 격리되지만 바이러스는 속수무책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신종 바이러스는 기괴했다. 처음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은 극심한 슬픔을 느꼈다. 사람들은 갑자기 거리에서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듯 이들은 세상에 다시 없는 일을 겪은 양 슬퍼하고 좌절했다. 사람들 사이에 슬픔은 전염병처럼 번졌다.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슬픔에 빠졌다.

두 번째 감염 증세는 슬픔보다 더 끔찍한 것이었다. 울음을 그친 사람들은 후각 기능이 상실됐다. 슬픔은 병이 아니었지만 후각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병이었다. 코로나19에 걸리면 후각과 미각 기능이 사라진다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와 같은 일이 현실 세상에도 일어난 것이다.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주인공인 남성에게는 더욱 더 그러했다. 그의 직업은 레스토랑 요리사다. 요리사가 후각 기능을 잃게 되자 재료가 신선한지 아닌지 맛이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었다. 레스토랑에 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레스토랑은 손님이 줄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의 후각이 마비되자 사람들은 적응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에서는 냄새를 맡지 않고도 혀에서 강력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자극적인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달고 시큼하고 더 매운 요리들이 사람들에게 인기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일상을 유지했다.

하지만 냄새는 과거를 지웠다. 고약하고 지저분한 냄새가 사라짐과 동시에 추억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유년 시절 할머니가 해주던 요리와 할머니한테서 나던 고소한 냄새를 잊어버렸다. 과거에 재미있게 놀았던 놀이공원에서의 추억도 모두 냄새와 관련된 것이었다. 냄새를 맡지 못하자 기억도 그 추억으로부터 멀어졌다. 사람들이 잃은 것은 냄새만이 아니었다. 과거를 추억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살 수 있었다. 사람들은 또 살아갔다. 그렇게 일상이 유지됐다.

바이러스는 진화했다. 이번에는 공포였다. 공포라는 감정이 사람들에게서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사람들은 두려워 벌벌 떨었다. 누군가 쓰려져서 도와주려고 하면 접촉하는 순간 그 사람도 감염이 됐다. 그저 아무도 접촉하지 않고 만나지 않아야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창궐했다.

또 다른 바이러스의 증세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광기를 보였다. 배가 고프면 헛것이 보이는 것처럼 허기처럼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도 없다. 바로 허기라는 바이러스였다. 더러운 얼음 위에 있는 날생선을 입에 쑤셔 넣고 설탕을 봉지 째 털어 먹으면서도 사람들은 배고파했다. 사람들이 미친 듯이 먹는 장면을 보면 세상에 모든 악귀를 쏟아 부은 것같이 지독했다. 마치 전쟁 상황에서 있듯이 사람들은 먹을 것에 달려들었다.

그다음은 입맛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어떤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이 바이러스의 존재는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증세를 보였다. 인간의 오감이 차례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회사를 가고 시장을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맛을 느끼지 못하자 아삭하고 바삭하고 촉촉한 감각으로 맛의 느낌을 대체했다. 그렇게 일상이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정부는 계속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생기는 사람들의 광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초기에 정부는 감염자들을 격리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도시를 파괴하는 이들과 끝도 없이 계속된 바이러스 증세에 지쳐 허무에 빠진 사람들을 구할 여력이 없었다. 상점은 약탈당하고 화염에 휩싸였다. 세상의 많은 도시들이 아비규환의 지옥이 됐다. 마스크를 쓰고 사는 삶이 일상이 되어버린 후였다.

 

영화 ‘퍼펙트 센스’ 스틸컷
영화 ‘퍼펙트 센스’ 스틸컷
영화 ‘퍼펙트 센스’ 스틸컷
영화 ‘퍼펙트 센스’ 스틸컷

다음에는 시각을 잃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후각을 잃고 미각을 잃고 감각을 잃고 청력을 잃은 상태다. 그래도 일상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제 시력을 잃게 되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절망했다.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사람들은 폭발했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바이러스를 이길 수는 없지만 희망은 가질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한 이들이 시력을 잃을 시기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시력을 잃는다면 더 이상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해가 지기 시작한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글귀를 시력이 잃기 전에 머릿속에 간직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바로 코로나 19로 고통스러운 우리가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현실이 믿기지 않아 지금 상황이 혹시 영화가 아닐까 하는 무의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현재 현실이 전 세계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죽음으로 이별하고 경제가 고꾸라져 생존하기에도 어려운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어떤 순간이 와도 우리의 일상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이 영화 주인공이 폐허가 된 레스토랑 앞에서 “우리는 망했다” 좌절하는 사장에게 하는 말 “Life Goes On”이다.

주인공 요리사인 남성 마이클과 감염병 전문의 여자 주인공 수잔은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에 만나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점점 더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주인공들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힘겨운 일상을 살게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랑이 있었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사랑이 지켜줄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삶은 사람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별이다. 시력을 잃기 전 헤어진 이들은 다시 서로를 찾는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 남자와 여자는 결국 시력을 잃는다. 이제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뜨거운 숨결과 눈물, 따스한 촉감뿐이다.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다 해도 이들이 서로를 향한 애절한 마음만은 파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삶은 불행하지만 아름답다.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 와도 우리의 감각을 다 없애버리고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터전을 위협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우리의 삶도 영화처럼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고 살아가야 한다. 삶은 계속되니까(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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