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생물 풍천장어의 계절이 온다
묘한 생물 풍천장어의 계절이 온다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1.01.14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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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거대한 스티로폼 덩어리를 준비해놓고
거대한 스티로폼 덩어리를 준비해놓고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고창의 특산물 풍천장어의 계절이 돌아왔다. 먹는 즐거움을 찾는 소비자에게는 해당사항이 거의 없는, 생산자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만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요란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눈치도 챌 수 없이 조용하게 진행된다.

혼자서는 끌어내릴 수도 없는 거대한 스티로폼 덩어리가 갯마을 광장에 속속 도착했다.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 완전 신제품이란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별별 것들을 다 보았지만 이렇게도 큰 스티로폼 덩어리는 처음이다. 스티로폼이라는 재질의 특성상 무게는 실상 얼마 되지도 않지만, 덩치가 하도 커서 혼자서는 감히 다뤄볼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게다가 역시 석유화학 재질의 두꺼운 천으로 만든 주황색 외투까지 걸치고 있으니 기이한 외경심조차도 든다.

이 거대한 스티로폼 덩어리로 바지선을 짓는단다. 고창 사람들이 ‘빠지’라고 하는 그 바지선이다. 바지선은 통상 모래나 곡물 같은 화물을 운반하거나 해양 플랜트를 건설할 때 대형 기중기 같은 것을 얹어놓는 용도로 쓰기 때문에 여러 대의 엔진을 장착하지만, 스티로폼 덩어리로 짓는 고창의 바지선은 당연히 무동력이다. 모터보트로 끌고 가서 바다에 띄워놓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제 곧 2월이 되면 외로운 무인도처럼 바다 곳곳에 떠 있는 작은 바지선들을 멀리서 목도하게 될 것이다. 보고 있으면 그냥 외로움이 사무치듯이 밀려오는 그 고요한 풍경은 한 컷의 사진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하지만, 가까이 바싹 다가가서 보면 상황은 완전 딴판이다.

바늘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작은 새끼 장어가 자신의 엄마가 살았던 곳으로 올라오는 길목, 이 길목을 지키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새끼 장어 잡이로 평생을 살아온 이 전문가들은 바다 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모기장보다도 구멍이 좁은 그물을 내렸다가 올리기를 반복하느라 대찬 바람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게 될 것이다.

 

2망가진 바지를 끌어다가
망가진 바지를 끌어다가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새끼 장어는 여서 일곱 달 전에 이미 출발했다. 남태평양에서 출발한 어린 녀석들이 지금쯤은 아마 필리핀을 지나 일본의 오키나와를 거쳐서 제주도 근처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누가 연락을 해주지 않아도 전문가들은 안다. 바지선을 다 지어서 바다로 끌고 나갈 즈음이면 새끼 장어들이 곰소만 인근에 도착한다는 것을.

전문가들 사이에서 ‘시라시’로 통하는 새끼 장어는 아직 장어의 형태조차도 갖추지 못했을 정도로 작다. 약간 큰 바늘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그것을 잡아 올리는 그물코 또한 바늘 크기보다 좁아야 하고, 그래서 매번 그물에 걸린 온갖 쓰레기를 제거하느라 전문가들은 그야말로 눈 코 뜰 새가 없다.

일본의 장어 전문가들이 밝혀낸 연구 조사에 따르면 알에서 갓 깨어난 유생은 장어 특유의 길둥근 형태가 아니라 대나무 이파리처럼 생겼단다. 그래서 이름도 댓잎장어라고 한다나 어쩐다나. 깊고도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 태어난 유생이 자력으로는 구천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헤엄쳐서 갈 수가 없고, 수면 가까이로 자기 몸을 밀어 올릴 힘도 없기 때문에, 그래서 몸을 댓잎처럼 가볍게 하는 변태 기술을 개발했다는 설명이다.

그리하여 댓잎장어는 밀물 때 수면 가까이에서 조류에 쓸려 육지 쪽으로 나아가고, 썰물 때는 다시 쓸려 되돌아 가버리지 않도록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다음 밀물을 기다린다. 이런 방식으로 대략 구천 킬로미터를 여행하는데 그 기간이 무려 팔 개월에서 구 개월이란다. 물론 전문가들이 그렇게 설명하니까 그런가보다 할 뿐 비전문가들이 확인할 방법은 없다. 어쨌든 해마다 겨울이 풀리기 시작하는 2월 3월 즈음 바닷물과 밀물이 섞이는 풍천, 즉 기수역에 새끼 장어들이 몰려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구천 킬로미터를 달려온 새끼 장어를 기다리는 전문가들은 해마다 겨울이면 기도를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빠지’를 수리하거나 새로 짓는다. 스티로폼이라는 매우 편리한 소재가 나오기 전까지는 ‘빠지’ 하나 새로 짓는 데만도 얼추 반 년이 걸렸다.

 

중간각목을 교체하고
중간각목을 교체하고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숲이 무성한 계절 여름부터 가을까지 그들은 산속을 헤매고 다녀야 했다. 굵기도 적당하고 반듯하게 잘 자란 참나무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거다 싶은 참나무를 발견하면 톱으로 베어내고, 베어낸 그것을 산 아래로까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끌어내리고, 끌어내린 그것을 힘겹게 경운기에 실어서 갯벌 근처에 내려놓는 일을 한두 번도 아니고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을 때까지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한 계절이 지나 있다.

본 작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참나무 기둥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자른 그것을 새로로 한 줄, 가로로 한 줄, 성긴 그물처럼 단단하게 엮어낸 다음 그 위에 판자를 얹고, 판자 위에 또 판자를 얹어서 평평하게 터를 잡는다. 터가 잡히면 그 위에 오막살이 집 한 채를 짓고, 사방으로 빙 둘러 난간을 설치하고, 좌우 양쪽으로 닻줄을 걸고 정면에 예인줄을 걸면 공사 끝이어서 제법 간단해 보이긴 하지만, 무거운 참나무를 다루는 과정에서 발등을 찧기도 하고, 어깨뼈가 으스러지기도 하고, 공사 기간만도 최소한 두 달은 잡아야 한다.

바지선을 참나무로 짓는 까닭은 두 말이 필요 없이 참나무가 단단하기 때문이다. 원래 단단하기도 하지만 바닷물을 먹으면 썩지 않는 재목으로도 유명하다. 만약에 다른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손을 대지 않는다면 아마 백 년은 족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에는 다른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있다. 작은 것으로는 따개비와 고둥 같은 강한 흡반을 가진 녀석들이 있고, 큰 것으로는 이빨이 날카로운 각종 어류가 있다.

참나무가 맛있어서 뜯어먹는 것인지, 아니면 설치동물들이 이빨을 갈 듯이 그렇게 뭔가 유용한 바 있어서 갉아대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심심해서 그냥 오락을 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참나무 바지는 보이지 않는 바닷물 속에서 날마다 조금씩 생채기가 나고, 뜯겨져 나가고, 어느 날 문득 발견했을 때는 반쪽이 돼 있기 십상이다.

그렇게도 힘들게 참나무를 베어다가 만든 바지가 반쪽이 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낙망은 아마 이루 말로는 다 할 수가 없었으리라. 썩을 놈의 것들. 썩을 놈의 물고기들. 투덜거린 세월이 얼마였던가. 그런 어느 하루 신기한 물건을 발견한다. 스티로폼이란 이름의 그것, 가벼워서 사람이 다루기는 참나무에 비해 천 배는 쉽고, 물에 뜨기도 잘하니 이보다 좋은 것은 세상천치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다.

 

4오막살이 집도 짓고
오막살이 집도 짓고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이제 참나무 바지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놈의 따개비와 고둥 그리고 이빨이 날카로운 물고기들은 스티로폼도 좋다고 덤벼든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았다. 알았지만 다시 참나무 바지 시절의 힘든 노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스티로폼 덩치를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덩치가 작은 스티로폼은 두 해를 나기도 전에 뜯겨 나가지만, 덩치가 크면 클수록 버티는 시간도 길다는 것을 안 사람들은 해마다 덩치를 키워나갔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혼자서는 다루기도 어려울 정도로까지 덩치가 커졌다. 덩치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두꺼운 석유화학 제품으로 옷까지 해서 입혔다. 옷을 입었다 해서 따개비와 고둥이 취미생활을 포기할까마는, 어쨌든 몇 년은 견뎌낼 것이다.

한편 새끼 장어의 입장에서 보자면 횡액도 그런 횡액이 없다. 바늘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그 어린 것들이 구십 킬로미터도 아니고 구백 킬로미터도 아닌, 물경 구천 킬로미터를 달려왔는데 어느 지점에서 덜컥, 잡히고 만 것이니 무슨 말을 더 하랴.

그나저나 신기하다. 희한하기도 하다. 도대체 새끼 장어는 무슨 까닭으로 그토록 머나먼 여행을 감행하는 것일까. 연어처럼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와서 새끼를 번성시키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런대로 이해를 하겠는데, 자기 자신도 아니고 어미가 살던 곳으로 굳이 와야만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말이다.

회고해 보면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장어는 논두렁이나 고랑창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흔한 물고기였다. 힘이 어찌나 좋은지 논두렁 밑 도처에 구멍을 뚫어놓아서 어른들의 애를 먹이는 천하에 몹쓸 말썽꾸러기이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장어는 그렇게 육지에서 한 생을 다 살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바다로 나가서 저 멀리 남태평양 어디의 깊은 곳에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5이제 때를 기다린다
이제 때를 기다린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더욱이나 희한한 것은, 장어가 육지에 살고 있을 때는 모두가 수컷이란다. 수컷 장어가 바다로 나아가면 서서히 수컷만의 특징이 아닌 암컷의 특징도 갖추는 식으로 변태를 하고, 남태평양 그 깊고도 깊은 해저에 이르면 암수 기능을 동시에 갖춘 자웅동체가 되어 너는 나의 수컷이 되고 나는 너의 수컷이 되고, 나는 너의 암컷이 되고 너는 나의 암컷이 되어 동시에 다함께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야 어떻든 새끼 장어 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 2월과 3월은 꿈의 계절이면서 아슬아슬, 조마조마, 가슴을 졸여야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잡히는 새끼 장어의 숫자가 해마다 줄어들기 때문이다.

장어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일본 전문가들에 따르면 장어는 이제 멸종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게 옳단다. 통상적으로 어류 양삭은 치어까지 생산하는 것을 말하는데 장어는 치어 생산이 거의 불가능하고, 자연에서 자기들 취향대로 살아온 장어는 어린 시절에 대부분 다 잡혀버리기 때문에 멸종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얘기이다..

오랜 연구 끝에 치어를 생산하긴 했지만 댓잎장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어린 새끼 장어의 섭생이 무엇인가는 아직 밝혀내지 못 했다나. 한 마디로 말해서 장어는 갓 태어난 댓잎장어 시절의 먹이와 새끼 장어 시절의 먹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다르다는 것까지는 겨우 밝혀냈지만 그 다름이 무엇인가는 오리무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른 장어를 붙잡아서 너희들은 무엇으로 어린 새끼들을 먹여 살리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장어는 묘한 생물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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