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형벌이 선진 사회의 관건…‘일수(日數)’ 또는 ‘재산비례’ 벌금제 검토할 때”
“공평한 형벌이 선진 사회의 관건…‘일수(日數)’ 또는 ‘재산비례’ 벌금제 검토할 때”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21.01.2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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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2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국가가 과도한 벌금형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나.

▲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이 죗값을 치르지 않으면 처벌의 의미가 없으니, 벌금을 내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는 것을 일종의 안전장치로 설계한 것 같다. 지금처럼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 가두는 건 참 딱한 일이다. 또 절대로 감옥에 가두면 안 될 사람도 감옥에 꽤 있다.

애들이 어린 한부모 가정의 엄마나 아빠거나 어르신을 혼자서 봉양해야 하는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면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당장의 생계를 위협받는다. 그게 아니라도 가족 구성원 중에 누군가가 다만 한두 달이라도 감옥을 갔다 오면, 집안은 풍비박산(風飛雹散) 난다.

그런 위험이 있는 사람들은 감옥에 보내면 안 된다. 그렇지만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무조건 감옥에 보낸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큰 데 비해, 사회가 얻는 이익은 별로 없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

 

- 정치권의 법 개정 움직임은.

▲ 소병철 의원이 법률안을 내기도 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은 벌금을 지금처럼 100만 원, 200만 원 매기는 식이 아니라, 재산이나 소득과 비례해서 벌금을 매기는 유럽식 ‘재산비례 벌금제’로 바꾸자는 거다.

지금 건강보험료나 국민연금도 재산이나 소득과 비례해서 내고 있다. 벌금제도 이렇게 하면 간단한 일이다. 정확한 재산과 소득은 파악할 수 없지만,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로 재산 파악이 가능해졌으니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다.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도 모두 재산, 소득 파악 시스템에 연동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하면 된다. 건강보험 납입 증명서를 떼서 내면 ‘당신은 3분위니까 3분위 벌금만 내라’고 정해주면 된다. 건강보험은 1~10분위 밖에 없다.

 

- ‘벌금형’이 가난한 사람에게 폐단이 더 많은 것 같다.

▲ 무엇보다 벌금을 못 내서 감옥에 가게 되면 일단 창피하고, 자존감도 떨어진다. 자괴감이 들고 참담해진다. 주변에서 몇백만 원을 융통하지 못해서 감옥에 왔냐고 볼까 봐 남들의 시선이 두렵기도 하다.

문제는 돈을 융통한다는 게 막상 쉬운 일이 아니다. 벌금 낼 돈이 없어 주변에 빌리러 다니면, 가장 먼저 돈 빌릴 수 있는 사람부터 관계가 끊겨 버린다. 그래서 쉽지 않다.

본인이 잘나갈 때는 돈 천만 원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한번 ‘삐꺽’해서 넘어지고 나면, 돈 백만 원 빌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가족들도 돈이 있어도 안 꿔주기도 한다. 그게 한국 사회고 세상 이치다. 그런데 국가마저 돈 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힘든 고통을 강요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 장발장을 양산하는 ‘노역장 유치제도’, 시민 인식은 어떤가.

▲ 당연히 국가에 대한 불만이 많다. 최근에 형사정책연구원에서 19세 이상 일반인 1,063명을 대상으로 국민 여론을 조사했는데, 그 내용은 ‘일수벌금제’와 ‘재산비례 벌금제’ 두 가지다. 아쉬운 점은 시민들이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것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

용어 자체도 잘 모르고,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론 조사 중에 이러이러한 제도가 있다고 설명을 하면, 대다수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액벌금 미납자에 대한 노역장 환산 유치 문제에서 589명(55.4%)이 ‘불합리‧불공정’하다고 밝혔다.

또 418명(39.3%)은 ‘조세형평과 국민 법 감정에 맞지 않아 더 늘려야 한다’로 나타났다. 183명(17.2%)이 ‘징역형과 같아 벌금형 목적에 어긋난다’, 393명(37%)이 ‘고액벌금 미납자에 노역장 유치 반대’, 54명(5.1%)이 ‘문제없다’로 나왔다.

 

- 시간만 때우다 출소하는 형벌 제도의 문제점은.

▲ 과거에 하던 봉투 붙이기도 없어졌고, 막상 들어가면 아무 일도 안 한다. 그냥 가만히 멍하니 앉아 시간 만 때우는 것뿐이다. 아무 일 안 하는 게 오히려 더 고역이다.

우리의 감옥은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멍’ 때리는 것뿐이다. 온종일 식당에 갈 일도 없고 먹고 자고 씻는 일밖에 없다. 공휴일과 주말에는 운동시간조차 없다. 서울동부구치소의 경우, 운동장이 웬만한 농구 코트 반도 안 된다.

다른 구금시설은 그래도 큰 운동장이 있지만, 운동시간은 30분에 불과하고 나머지 23시간 30분은 오로지 감방 안에만 있어야 한다. 숨이 막힌다. 지난번 신정 때도 사흘 연휴가 있었는데, 감옥에서는 사흘 내내 감방에만 갇혀 있게 된다.

 

- 벌금 때문에 소중한 인간관계까지 끊기는데.

▲ 만약 직장에 잘 다니던 사람이 어느 날 ‘나, 벌금 못 내서 감옥에 간다’고 하면, 직장에서 잘릴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라면 생계 박탈까지 갈 수 있다. 조두순처럼 감옥에 가야 할 사람은 보내야 한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너무 큰 고통을 주면 안 된다.

 

- 후진적인 벌금제, 언제 만들어졌나.

▲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한국 사회가 선진화하고 합리적인 사회가 되려면 적어도 형벌은 공평해야 한다. 왕조시대에서 상벌이 공평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강조했다.

국가에서 주는 상을 바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조선 시대처럼 땅을 주는 것도 아니니, 명예로운 일로만 여기면 그만이다. 그러니 형벌을 공평하게 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 현대 국가에서는 세금과 형벌이 공평해야 한다.

세금은 소득과 재산 액수에 따라 다르게 매기기 때문에 비교적 공평하게 내는데, 형벌은 그렇지 않다. 벌금도 세금처럼 가야 맞다. 지금처럼 제도를 방치하면, 법이 권위가 없어지고 법치가 이뤄지지 않는다.

 

- 최근에 고액 벌금형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 그동안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많이 했기 때문에 고액벌금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극히 일부에만 국한된 문제다. 일반적으로는 1천만 원 이하다. 통계를 보면 약 60만 명 정도가 벌금형을 받는다. 형사 처벌받는 사람이 1년에 70만 명이라고 하면, 60만 명 정도는 벌금형이다.

당연히 벌금형이 제일 많다. 생각만큼 징역형은 많지 않다. 징역형을 선고받아도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 감옥에 갇히는 사람은 훨씬 더 적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더 무거운 처벌인 징역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집행유예를 받으면 실제로 감옥에 가지는 않으니까, 벌금형보다 가볍게 느끼는 거다. 이런 상황을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은 모두 잘 알고 있다. 문제가 있는지 알면서도 고치려고 나서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답답하다.

 

- 검찰이 거듭나야 현대판 장발장도 사라지지 않을까.

▲ 사실 우리에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나 윤석열 검찰총장의 거취가 중요한 건 아니다. 역대 검찰총장 중에서 시민들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중요한 건 법무부와 검찰이 국민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는가, 이들 기관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달려 있다.

법무·검찰이 국민을 위한 조직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것은 이들 기관에 대한 민주적·시민적 통제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검찰은 ‘검찰 독립’ ‘검찰 중립’을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하는데, 검찰은 검찰권의 원천인 국민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검찰이 특정 정치세력에 속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이걸 확대해석해서 검찰이 국민이나 의회의 통제조차 받지 않겠다고 굴면 안 된다. 중요한 건 한국 검찰에 대한 국민적 통제방안은 단 하나도 없다는 거다.

 

- 지나치게 ‘권력화-특권화’된 검찰 지적이 많은데.

▲ 검찰청도 행정관청의 하나이고, 법무부의 외청이다. 그런데 법무부를 능가하는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장악한, 국가형벌권, 형사사법이 모두 검찰이 한 손에 틀어쥔 형국이다. 그래서 검찰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안하무인 격이다.

행정부 관청이면서도 법원 비슷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하며, 스스로 ‘준사법기관’이란 말을 함부로 한다. 실제로 법원과 비슷한 조직을 갖고 있기도 하다. 대법원과 빗댄 대검찰청, 고등법원에 고등검찰청, 지방법원에 지방검찰청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1심, 2심, 3심 등 재판을 세 번 하는 법원과 달리 검찰은 딱 한 번 만 수사하고 한 번만 기소한다. 그러니 고등검찰청과 대검찰청은 전혀 필요 없는 조직이다. 실제로도 고등검찰청은 한직처럼 여겨진다. 문제는 왜 국민의 세금으로 오로지 검사들만을 위한 조직을 만들고, 엄청난 대접을 해줘야 하냐는 거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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