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기억을 기록했다
찰칵, 기억을 기록했다
  • 김준아 기자
  • 승인 2021.01.2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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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나 – 세계여행] 보스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 보스턴 코먼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예전에 가수 싸이가 콘서트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공연은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거예요.” 기록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이고, 기억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을 말한다.(네이버 사전 참조)

여행을 하는 낮 시간에는 주로 기억을 하려고 하는 편이고, 숙소에 돌아와 잠이 들기 전에는 기록을 정리하는 편이다. 기억과 기록이 함께해야 오랜 추억으로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 훗날 내가 이 여행을 꺼내 봤을 때, 기억이 있어야 그 기록에 의미가 있을 것이고, 기록이 있어야 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이다. 사전적으로 기록은 ‘적음, 혹은 글’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아마 예전에 정의 내려진 듯하다. 요즘의 기록은 글뿐만 아니라 사진, 그림, 영상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래서 내 나름의 기록의 의미를 만들어 보았다. 나에게 기록이란? 추억에 강력한 힘을 만들어 주기 위해 남기는 모든 것.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뉴욕에는 센트럴 파크가 있다면, 보스턴에는 코먼이 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멀리서 보고 애완견이 아니라 곰인 줄 알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여행을 시작하던 무렵, 여행 유튜버를 꿈꿨던 적이 있다. 그래서 여행 초반에는 열심히 영상을 찍었고, 이동하는 비행기나 버스 안에서 영상 편집을 했다. 그렇게 2편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삭제했다. 목적을 잃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목적은 여행이었는데 어느 순간 영상을 올리기 위해, 그러니까 단지 기록만 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영상을 찍을 때는 구도를 위해 카메라 액정을 바라봐야 하는데 이게 과연 집에서 TV와 노트북에서 보던 여행 영상과 뭐가 다른가 싶었다. 난 그 화면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떠난 것인데… 이렇게 멋진 곳에서 작은 카메라만을 바라본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길을 걸으며 카메라를 켜놓고 카메라와 대화를 하는 것도 싫었다. 아무래도 촬영을 하면서 길을 걸으면 시선을 그곳에서 뗄 수 없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에 집중하고, 그곳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도무지 동시에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한 후로는 미래의 내가 나의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정도로만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사진도 영상도 찍은 그 자리에서 확인하지 않았고, 못 나오면 못 나온 대로, 잘 나오면 잘 나온 대로 그냥 뒀다. 숙소에 돌아와 확인해 보면 사진도, 영상도 굉장히 어설펐다. 멋진 곳에서 멋진 사진을 못 남긴 게 가끔은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내 기억만큼은 어설프지 않았다.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눈으로 담아 머리와 가슴에 저장했으니 말이다. 수많은 여행 유튜버들이 있고, 그들이 많든 멋진 영상들이 있다. 부럽다.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남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난 도저히 그들처럼 할 수 없음을 일찍이 깨닫고 여행을 기억하는 데에 집중했다. 참 잘했다.

 

12월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누군가 보기엔 잘못 찍힌 사진이겠지만 나에겐 소중한 기억인 사진. 망가진 우산을 보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자신이 쓰던 우산을 줬고, 나는 또 그 우산을 필요한 사람에게 줬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미국 보스턴에서 남긴 사진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이상하게도 내가 새로운 여행지에 가면 그 지역에서 꼭 일어나는 일이 있는데 바로 비가 내린다는 거다. 보스턴 역시 비가 내렸는데 2박3일이라는 짧은 일정을 소화 했기에 기록은 거의 하지 못했고, 대신 많은 기억을 남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비가 심각하게 내려서 우산이 뒤집어 지고 고장이 난 일이다. 강풍에 고장 난 우산이 우산의 역할을 해주지 못 해 비를 쫄딱 맞으며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미국 아저씨가 자신의 우산을 건네줬다. 본인은 거의 다 왔고, 이 우산에는 손잡이가 없으니 부담 갖지 말라며 쿨하게 떠났다. 사양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한 순간 우산을 사진으로 남겼다. 찰칵! 누군가 봤을 때는 잘못 찍힌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사진이 나에게는 소중한 기억이 기록되며 추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선물 받은 우산을 쓰고 무사히 숙소 앞에 도착해서 한참을 기다렸다. 우산이 필요한 사람을 말이다. 드디어 찾았다! “난 여기가 숙소야. 이제 우산이 필요 없어. 이 우산에는 손잡이가 없으니 부담 갖지 말고 써. 굿나잇!” 진짜 멋진 하루였다.

 

. MIT. 공과대학 답게 내부는 거의 모든 것이 자동화 시스템이었다. 화장실 문, 화장실 휴지 등 말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쉑쉑버거 보다 맛있다고 홍보하는 보스턴 버거. 또 먹고싶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세계여행 이전 여행부터 여행지에서 비를 만나지 않았던 적이 거의 없다. 여행지에 도착한 날, 혹은 도착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이번 세계여행에서도 파리와 네팔을 제외하고는 전부 비가 내렸다. 심지어 호주 브룸은 수개월 만에 내린 비였고, 비가 올 시기가 아니라며 사람들이 놀랐다. 네팔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눈이 내렸다. 파리에서 비가 내리지 않은 게 내심 아쉽다. 언제 또 비 오는 날의 그 도시를 거닐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며 가장 좋은 점은 모든 걸 ‘좋게 생각하기’이다. 분명 짜증이 나거나 부당한 일을 겪을 때도 있지만 한 번 뿐인 나의 소중한 시간을 주변 상황의 이유로 기분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내 기분은 내가 결정하는 거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비가 온 뒤 점점 날씨가 좋아지며 떠나는 날은 항상 날씨가 엄청 좋다. 그래서 더 좋다. ‘떠나기 아쉽지?’ 마치 꼭 다시 돌아오라고 말하는 거 같다. ‘응! 꼭 다시 놀러올게!’

 

존 하버드 동상. 발을 만졌으니 내 자녀는 하버드에 갈 거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나에게 기록이란? 추억에 강력한 힘을 만들어 주기 위해 남기는 모든 것.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미국 동부 메스추세츠주의 주도 인 보스턴은 산업과 교육의 중심이자 미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닌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굉장히 가까운 편인데 셔틀버스가 무료로 운행된다. 여행자들 혹은 보스턴의 시민들에게 잘 왔다고 환영해주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교통비로 인해 비싼 돈 들여서 공항에서 환전을 하지 않아도 됐다. (대부분 공항 환전 수수료가 가장 비싸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유럽에서 남은 유로를 환전하려고 카드 한 장과 유로만 가지고 길을 나섰다. 은행에 갔는데 여권을 가져오란다. 생각해보니 동남아에서 환전하면서는 여권을 보여 준 적이 없다. 아무튼 꼭 이런 날 여권을 안 챙긴다. 다시 호스텔에 가서 여권을 가지고 갔는데 수수료가 무려 10달러인 게 아닌가! 너무 놀라 다른 은행에 갔더니 무려 25달러라고 했다. 환전 하려고 한 돈은 고작 65유로(한화 약 8만6000원)였다. 그렇게 비싼 돈을 수수료로 낼 수 없어서 유로는 나중에 유럽에 가서 다시 쓰기로 하고, 쿨하게 어차피 인출해야 했던 돈을 더 뽑았다. 수수료를 계산하며 따질 시간이 없었다. 이미 난 10시간 넘게 굶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인출 수수료도 상당했다. 미국 여행 가려면 미리 환전해 가는 편이 좋을 거 같다. (아! 그 유로는 아직도 내 지갑 안에 있다. 코로나 때문에 유럽에 다시 가지 못 했다. 내일 은행에 가서 환전하고 용돈으로 써야겠다.)

 

보스턴 퀸시 마켓 근처에서 열린 길거리 공연. 계획이 없을 때 좋은 점은 이런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거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보스턴에는 메사추세츠추 공과 대학 MIT, 버클리 음대 등 유명한 대학들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대학은 역시 미국 최초의 대학이자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불리는 하버드 대학이다. 캐네디를 비롯한 유명 정치인들과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하버드 대학은 400여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대학 내에 존 하버드 동상이 있는데 그 동상의 발을 만지면 자녀가 하버드에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연히 만져봤다. 언제 태어날지 모르는 내 자녀 덕분에 하버드에 또 놀러 가게 생겼다.

12월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행하기에 적합한 계절이 아니어서 그런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여행객처럼 보이는 사람들 보다는 현지인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혼자 다니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연말이 다가와 북적북적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외로운’ 감정 대신 ‘설렘’을 택했다. 사람들이 줄 서있는 음식집 앞에 나도 모르게 같이 줄을 서서 밥을 먹었고, 공원에 가만히 앉아 뛰어 노는 강아지들을 구경했다. 신기하다. 여행은 그렇다. 내가 선택하는 기분대로 움직일 수가 있다. 설렘을 선택한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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