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앞바퀴 뒷바퀴 아저씨
우리 동네 앞바퀴 뒷바퀴 아저씨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1.02.05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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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내가 어릴 때 우리 동네에 ‘앞바퀴 뒷바퀴’라는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그 별명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랬다. 아저씨는 앞으로 한 걸음 뒤로 두 걸음을 걸었다.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보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는 걸음인데 잠시 한 눈을 팔다보면 신기하게도 저만치 앞서 가 있는 거다. 그 아저씨가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에다 동그라미를 뱅뱅 돌리며 이렇게 놀렸다.

앞바퀴 뒷바퀴~~ 에에~~ 앞바퀴 뒷바퀴이~~

그러면 아저씨는 우리를 보며 신나게 앞으로 한번 뒤로 두 번 걸어보였다.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처럼 말이다.

늘 같은 옷을 입고 장작처럼 바짝 마른 몸에선 술 냄새가 났는데 웃음은 해맑았다. 그리고 언젠가 한번은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며 아빠 미소를 지었고 동네 골목에서 뛰놀고 있는 애들을 불러다 번데기를 사준적도 있었다. 입에다 탁탁 털어먹고도 돌돌 만 신문지 꼬깔을 풀어보면 그 사이에 숨어있는 번데기가 꼭 하나 둘 더 들어있었던….

아저씨가 어디 사는 지. 가족은 있는 지. 그런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지만 늘 우리 동네 어딘가에 앉아있거나 걸어 다니고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어느 해 겨울….

아주 추운 겨울이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는 얘기를 듣게 됐다. ‘앞바퀴 뒷바퀴가 얼어 죽었대….’ 술 처먹고 길에서 잠들었다 그리 됐다며 혀를 찼다. 할머니 따라 동네 쩡이 집에 놀러갔다가 화투장을 내리치며 아줌마들이 그런 얘길 하는 걸 들었다. 그땐 그냥. ‘그랬구나… 앞바퀴 뒷바퀴 아저씨가 죽었구나…’ 그랬던 거 같다.

봄이 와도 아저씨는 동네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렸기 때문에 죽음이 어떤 건지 잘 몰랐다. 앞으로 한 걸음 뒤로 두 걸음 걷는 이상한 아저씨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말이다. 근데 기분이 이상했다. 뭐가 하나 빠진 거 같고. 봄이 오다 만 거 같고… 그랬다.

나는 앞으로 한 걸음. 뒤로 두 걸음을 걸어보았다. 절대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걸음이었는데 어떻게 아저씨는 그토록이나 빨리 사라져버린 걸까… 양지 바른 곳을 찾아 철새처럼 따뜻한 나라로 날아가 버린 걸까….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어젯밤.

눈이 펑펑 내리는 밤길을 걷는데 그 아저씨 생각이 났다. 안경엔 뿌옇게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았고 버스도 끊겨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아무리 걸어도 집까지 못갈 거 같은 생각이 드는 거다. 춥고 배고프고 눈물 콧물이 줄줄 흐르고… 길에서 얼어 죽기 딱 좋은 날씨였다. 바람이 불고 눈발이 몰아쳐 앞으로 한 걸음 걸어도 마음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나는 추운 거리, 아마 아저씨도 이런 거리에서 잠이 들었던 거겠지. 앞으로 나가고 싶어도 늘 뒷걸음질 치는 그런 인생을 살다가 말이다.

봄이 코앞까지 왔다지만 아직은 많이 춥다.

이런 날. 길에 주저앉아 잠들어버릴 수도 있는 사람에게 가끔 전화라도 해서 따뜻한 말도 건네고 쓴 소리 보다는 격려를 해주기 바란다. 힘들게 살고 싶어서… 바보같이 뒷걸음질 치고 싶어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다. 살다보니 그렇게 돼버린 거다. 누구도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는 고통이 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 그게 나의 것은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

인생의 흉터들 / 엘라 휠러 윌콕스

사람들은 세상이 둥글다고 말하지만
나는 가끔씩 세상이 모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저기 모서리에 부딪쳐
자잘한 상처를 너무 많이 입으니까.
하지만 내가 세상을 여행하면서 발견한
인생의 중요한 진실 하나는
정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당신이 몹시 경멸하는 남자는
당신을 분노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낯선 이들이 하는 행동으로 인해
당신 마음속에 불쾌감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것들은 잠시 괴롭히다 사라지는 병 같은 것.
모든 인생이 이 법칙을 증명한다.
우리를 아프게 하고 전율하게 만드는 상처는 모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준 것.

낯선 타인에게는 곧잘
최상의 옷, 가장 달콤한 품위를 내보이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의 사람에게는
무신경한 표정, 찌푸린 얼굴을 보인다.
거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잠깐 만난 손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면서도
정작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 없는 타격을 수없이 날린다.

사랑은 나무마다 다 자라지는 않는다.
진실한 가슴이라고 해마다 꽃이 피는 게 아니듯,
아, 무덤을 가로지른 상처만
바라보는 사람들이여,
하지만 슬픔을 견디고 나면 머지않아
모두에게 분명해지는 사실이 한 가지 있으니,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유일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

엘라 휠러 윌콕스는 1850년 11월 5일에 태어나 1919년 10월 30일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작가이며 시인이다. 그녀는 <열정과 고독의 시집>에서 ‘웃어라, 모두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1918년 자서전으로 <세상과 나>를 출간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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