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2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호남과 영남, 내륙 지방별로 제조법이 달랐을 텐데.

▲ 그렇다. 우리 전통주는 지역성과 차별성, 개별적 특성이 반영되었다. 특히 주원료인 쌀의 다양한 혼용방법(블랜딩)과 술빚는 횟수에 따라 다양한 주질(酒質)과 맛, 향기가 향상됐고, 기호 충족을 도모했다.

서울(한양) 지역 가양주의 경우, 멥쌀과 찹쌀을 이용한 중양주가 있었고, 주로 겨울철에 양주 시기를 선호했다. 그러면서 저온 발효주인 약산춘과 삼해주, 죽엽주, 송순주, 두견주가 대중화됐다.

지역별로 보면, 전라도의 호산춘 이강고, 죽력고, 홍주, 충청도의 청명주와 소곡주, 노산춘, 두견주, 경상도의 과하주, 평안도의 감홍로, 벽향주 등의 토속주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 ‘반주문화’를 전통문화 상품으로 추진했다.

▲ 반주(飯酒)는 식사 때 약간의 술을 곁들임으로써 소화 흡수를 돕는다. 주로 연로한 노인의 원기를 돋구는 약주(藥酒) 개념으로 인식돼 있다. 우리 선조들은 백약지장(百藥之長)의 의미를 직접 빚은 술인 약주를 대접해 왔고, 술을 약(藥)으로 인식해 식사 중에 반주로 2~3잔 정도 마시도록 함으로써 절주 유도와 개인의 건강함양, 건전한 음주문화를 정착시켰다.

그런 면에서 반주문화는 지혜롭고 합리적이다. 여기에 한국인 특유의 어른 공경과 부모 봉양, 접빈(接賓)에 따른 예와 도(道), 인정의 뜻을 담고 있어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문화상품으로서의 매력이 충분히 있다.

이것을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식문화로 인식을 바꿔 상품화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식사 때 한두 잔의 음주는 소화를 돕고 혈행을 개선하는 등 건강증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외국의 와인이나 맥주 또한 그들의 반주개념의 술로, 그 나라 국민의 60% 정도가 반주로 와인이나 맥주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집안에서의 반주 대신 음주는 식당이나 주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어서 과음과 함께 비용지출도 부담이 되고 있다.

 

- 세계 명주와 가양주, 차이점을 말해달라.

▲ 명주는 향기를 사고판다. 한국 전통주는 청주(淸酒)로 불릴 만큼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청향(淸香)을 간직한 술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술의 브랜드 가치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풍류가 깃든 우리의 음주문화는 자랑할 만하다.

특히 가양주는 사계절 변화에 맞춰 그때그때 피는 향기가 좋은 꽃을 이용, 자연 재료가 갖는 향기를 담았기 때문에 계절 감각과 풍류가 깃들어 있다. 꽃은 민족과 이념, 사상의 경계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고 부가가치가 높다.

다양한 가향주와 풍류가 깃든 음주문화를 가꾸어 온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로서 가향주(加香酒, 佳香酒)와 문화는 차별화된 상품과 우수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박록담 소장이 개발한 _풍정사계_
박록담 소장이 개발한 '풍정사계' ⓒ위클리서울/ 박록담 제공 

- 현재도 전통주에 대한 인식과 용어가 정확하지 않다.

▲ 요즘 가양주를 중심으로 고유방식의 술을 ‘전통주’ 또는 ‘민속주’로 부르고 있다. 전통주의 가장 큰 특징과 장점은 술의 주재료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식과 부식으로 삼는 쌀과 보리, 수수, 조 등으로 빚는다는 데 있다.

때문에 ‘곡주(穀酒)’라고도 하는데, 이들 재료를 끓이거나 삶거나 찐 뒤에 천연발효제인 누룩(麴子, 麯子)과 물을 주원료로 하고, 여기에 가향재로 꽃잎이나 과실껍질, 약용약재(한약재)를 부재료로 첨가하여 술을 빚기도 한다.

이렇듯 전통주는 일체의 화학적 첨가물이 없이 순수한 곡물에 누룩과 물을 섞어 빚고, 전통의 고유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모든 술을 가리킨다. 그리고 전통주에는 적당한 단맛과 쓴맛, 신맛, 떫은맛, 매운맛이 고루 조화되어 감칠맛을 주며, 특히 과실 향과 꽃향기가 있어, 한번 맛을 들이면 아무리 값비싼 와인 등이 싱거워서 맛이 없다고 한다.

 

- 유교 사회였던 조선 시대, 제사에 술은 필수였다.

▲ 조선 시대에 이르러 제사를 중하게 여기는 관습이 뿌리를 내리면서, 가양주는 조상신에 대한 제주(祭酒) 목적으로 술을 빚게 되었다. 1년 열두 달, 매 절기마다 명절에 차례와 제사하는 풍속이 중요한 관습으로 이어졌으므로, 이때 정성껏 술을 빚어 천신했다.

우리의 전통주는 고두밥과 누룩, 물을 섞어 만드는데, 흔히들 ‘약주(藥酒)’라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때 약주란 술을 높여 부르는 말로 사용되나, 보다 엄밀하게는 일제시대에 일인들이 우리나라 술을 비하시키기 위한 술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숭배를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하여, 명절과 집안 제사에 정성껏 빚은 맑은 술(淸酒)을 천신하는 것이 하나의 예법(禮法)이자 관습으로 지켜왔다.

 

- 청주와 약주, 다른 점은.

▲ 우리 전통주는 쌀과 누룩, 물을 주원료로 맑은 술인 청주를 빚고자 하는 것이 원칙인데, 마실 사람과 술 빚는 이의 기호와 필요에 따라 제조 과정에서 국화나 진달래꽃, 송순, 연잎을 넣으면 국화주, 두견주, 송순주, 연엽주 등 ‘가향주(佳香酒)’가 되고, 인삼이나 구기자, 유자, 대추 등 약재를 넣으면 인삼주, 구기자주, 유자주, 대추술 등 ‘약주(藥酒)’가 된다.

또 청주나 탁주인 곡주를 증류시켜 만든 민자소주에 각종 한약재를 넣어 그 약용성분을 이용하는 약용목적의 혼성약주(混成藥酒), 또는 재제주(再製酒)를 만들어 건강에 도움을 주고 병을 치료해 왔다. 따라서 약주란 약재가 들어간 술을 가리키므로, 청주와는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하겠다.

 

- 일제의 양조장 제도를 도입, 법으로 전통주 맥이 끊겼는데.

▲ 일제 강점기 당시에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조선 땅에서는 가양주를 빚지 못하게 되었다. 또 양조장 제도 도입으로 공장에서 생산 판매하는 술을 사다 쓸 수밖에 없었다. 주세법에 조선 주는 ‘탁주(濁酒)’, ‘약주(藥酒)’. ‘소주(燒酒)’로 묶어 주종을 단순화시키면서 ‘청주’를 ‘약주’로 표기하도록 제도화시킨 반면, ‘정종(正宗)’ 등의 ‘일본주’가 소위 ‘청주’로 판매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명절과 집안 제사에 정성껏 빚은 청주를 천신하는 것을 예법으로 알았던 조선 사람들은, 너나없이 일본주인 ‘정종’을 사다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가 하면, 음복할 때에도 데워서 마시는 차마 웃지 못할 풍습이 생겨났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청주는 그 이름을 일본주에 내주는 대신 ‘약주’로 불려졌고, 일본 술인 정종이 마치 우리나라 ‘청주’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었다. 지금도 ‘정종 사다 제사 지낸다’고 하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위클리서울/ 박록담 제공 

- 술 문화에는 민족의 지혜와 체질, 건강 등이 녹아 있다.

▲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주식으로 삼아온 쌀과 보리, 수수, 조 등으로 술을 빚는 만큼, 주정(酒精)에 물과 조미료를 섞어 희석한 희석식 소주나, 부식으로 빚는 외국의 양주(洋酒)류에 비교하면 인체에 해(害)가 덜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들 체질에 가장 가깝다는데 그 매력과 건강성이 함께 깃들어 있다.

어떻든 우리 전통주는 지방에 따라, 가문에 따라 또 빚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갖가지 방법과 기술을 동원하게 되므로 매우 다양한 맛과 향기를 자랑한다. 사실, 우리는 그간 수많은 전통주들이 부흥과 쇠퇴를 거듭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 보통 술을 빚는다고 말하는데, 만든 술은 어떤 뜻인지.

▲ ‘빚는 술’은 ‘맛난 술’이다. 이 술은 사람이 아닌 미생물로 만들어진다. 다만, 술 빚는 이의 지극한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적 숙성발효에서 오는 조화된 맛과 향기를 즐길 수 있다.

주로 쌀과 누룩, 물 등 좋은 재료를 선택하는데, 청결과 재료와의 조화를 위해 그릇과 도구들을 깨끗하게 소독해 만든다. 이와 달리 ‘만든 술’은 ‘맛 낸 술’이라 할 수 있다. 속성발효 등 알코올생성을 주목적으로 한 양조로서 조미를 통해 맛과 향기를 부여한 술이다. 곧 맛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조미 술’이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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