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위클리서울=박석무] 1779년 무오(戊午)년은 다산의 나이 38세의 해였습니다. 그해 4월에 다산은 황해도 곡산 도호부사에서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제수되어 내직으로 옮겼습니다. 그 무렵에 저작했다는 다산의 유명한 논문,「전론(田論)」은 곡산에서의 저술인가, 서울에 들어와서의 저술인가는 알 길이 없지만, 약 220년 전의 글임을 알게 됩니다. 7편으로 된「전론」은 다산의 혁명적인 토지정책에 대한 내용으로, 개혁사상가 다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글이어서 주목받은 지가 오래된 논문입니다. 30대의「전론」은 50대 이후의 저작인『경세유표』의 토지정책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혁신적인 토지정책이어서, 그에 대한 찬반의 토론은 계속되고 있고, 더러는 실현 불가능한 정책으로 매우 공상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 농업국가이던 조선에서 토지소유 문제는 핵심적인 경제정책의 하나인데, 토지를 공동소유하여 공동경작하고, 또 공동분배하여 부(富)의 평준화를 이루자는 주장은 인류역사상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정책의 하나였음은 틀림없습니다. 천재적인 창안으로, 인류가 찾아낸 탁월한 지혜여서 두고두고 거론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정책이었습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모든 국가에서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양극화 현상이 첨예해지고 있는 오늘, 새삼스럽게「전론」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부자로 영남의 최씨와 호남의 왕씨 같이 곡식 1만 석을 거두는 사람도 있는데, 그 전지(田地)를 계산해보면 400결 아래로 되지는 않을 것이니, 이는 3,990명의 생명을 해쳐서 한 집안만 살찌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정의 윗사람들이 마땅히 부자의 재산을 덜어내어[損富] 가난한 사람에게 보태주어서[益貧] 그 재산을 고르게 하는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하여 손부익빈의 정책시행이 없고서는 빈민구제의 길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정치란 바르게 하는 일이요 고르게 살게 해주는 일이다(政也者 正也 均吾民也)” (「原政」)라는 다산의 정치철학으로 볼 때, 극도의 부자들 재산을 덜어서, 극한의 가난한 사람을 살려내는 일은 인류를 구제할 본질적인 제도의 하나임을 다산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지금 인류는 최악의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대재앙을 맞아 비대면의 사업이야 승승장구의 증산이 가능하나, 대면의 업종인 소상공인들은 이제 살길이 막막한 실정입니다. “당대의 시대정신으로 세상을 구할 길이 없다면 옛 선현들의 정신을 돌아보고 성현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내야 한다”라는 다산연구의 목적으로 내건 나의 생각처럼, 이제 고전적인 인류구제책에 마음을 기울일 때입니다. 권분(勸分)정책도 구체화해보고, 이익공유제 같은 새로운 제도, 손부익빈의 고전적 해결책 등을 강구하여 신음하는 약소상공인들을 살려내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양심이나 도덕성에 기대하기보다는 이제 제도적 장치를 통한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되어 모두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법과 제도에 의한 인류공생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모든 일은 때가 중요합니다. 때를 놓치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나 정책도 실효성이 없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사람들, 우리 함께 힘을 합해서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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