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술 빚는 법이 지방별 계절별로 달랐다는데.

▲ 가양주, 전통주는 지방마다 집집마다 고유한 술빚기로 이루어졌다. 앞서 ‘명가명주(名家名酒)’라는 말을 설명했듯 술 빚는 방법이 가가호호 달라진 이유는 제사 등 가용목적과 빈객 접대를 위한 가양주의 상비가 당시 사회의 관습이었으므로, 집집마다 원료의 처리 방법과 제조 방법에서 각각 다른 형태를 띠게 되었다.

술 재료의 차이는 물론이고 곡물을 익히는 정도와 같은 방법이라도 술을 안치는 방법에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계절마다 다르게 빚었고 계절주 성격이 강하다. 무엇보다 계절에 따른 산물을 이용해 술을 빚는, 이른바 가향주(佳香酒), 약용약주(藥用藥酒)를 즐긴다.

계절이나 절기에서 유래한 이름의 신도주, 청명주, 삼해주, 사마주, 유서주 등의 술 이름도 있지만, 평상시 빚어 마시던 술에 꽃이나 열매, 껍질 등 계절마다의 꽃과 열매 등 자연 재료를 많이 이용한 약주를 즐긴다.

 

- 약주가 건강주로 자리매김하게 된 연유가 있는지.

▲ 우리나라의 술은 우리 농산물을 이용한 순곡주(純穀酒)이면서, 건강과 치료목적의 약용약주 성격이 매우 강하다. 우리나라의 술은 고유의 술 빚는 방법을 간직하면서도 건강과 보신, 질병 치료목적의 다양한 약용약주로 빚어졌다.

가향재는 물론이고 구기자, 산수유, 인삼, 당귀, 갈근, 대추 등의 약재를 술에 넣어 마심으로써, 단순한 기호 음료로서의 술만이 아닌, 보신과 질병 예방 목적의 건강 약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약식동의(藥食同意)’ 사상이 강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중엽 동의보감 등장 이후, 약주의 등장이 두드러지는데, 동의보감(잡병편)에 상용 약재를 소개함으로써, 민간인들 사이에 약재에 대한 지식과 ‘약식동의(藥食同意)’에 따른 양생음식(養生飮食)의 발달로 이어진다. 특히 소주를 이용한 혼성주가 성행, 가용목적의 술빚기가 대중화되었다.

 

- 서양의 위스키와 전통주를 보면, 우리는 자연의 술을 빚는 데 반해 그들은 인위적 숙성 위주인 것 같다.

▲ 서양의 술과 비교하면, 우리 전통주는 맛과 향기가 다르다. 무엇보다 서양의 술은 향기를 으뜸으로 치는데, 그 향기란 것이 술의 주·부원료에 따라 결정된다. 주로 숙성 과정에서 오크(Oak)통과 같은 용기(用器)에서 얻어지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서양인들은 술에서 나오는 맛을 우리처럼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의 주재료인 곡물과 누룩에서 저절로 생겨난 자연 발효의 맛과 향기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많다. 서양의 와인과 다르게 맛을 주로 찾고 향기를 다음으로 여긴다.

그 맛과 향기도 본래 곡물이나 누룩에서는 맡을 수 없는 전혀 다른 맛이요, 향기라는 것이다. 우리 전통주는 쌀이나 보리, 밀 등 술의 주재료나 발효제로 사용되면서 누룩에는 없었던 천연의 과실 향기와 꽃향기(花香)가 발효과정에서 생성된 것으로서 그 품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술의 특징을 꼽는다면.

▲ 우리의 전통주는 쌀과 누룩, 물을 섞어 술빚기를 한 번으로 그치기도 하고 두 차례 또는 세 차례 술빚기를 계속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화를 넣으면 국화주, 진달래꽃을 넣으면 두견주, 연잎을 넣으면 연엽주, 인삼을 넣으면 인삼주가 된다.

또 탁주나 청주, 약주를 증류시켜 만든 소주에 각종 한약재를 넣어 약용목적의 혼성약주(混成藥酒), 또는 재제주(再製酒)를 만들어 건강에 도움을 주고 병을 치료하는 등 뛰어난 양조기술을 자랑해 왔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주는 주식을 이용한 자연 발효와 자연순환의 원리가 깃들어 있으므로, 건강에도 유익하고 인체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이 전통주의 큰 특징이요, 장점이다.

 

아쉽게도 가양주 재현이 아직도 어렵다는데.

▲ 가양주의 재현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지키고 가꾸려는 의식이 약한 것 같다. 사라지고 맥이 끊기 술의 재현은 많은 시간과 돈,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여 쉬운 방법으로 이미 세계화된 와인이나 맥주, 사케, 위스키를 배워서 빠른 시간에 승부를 보려는 시도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일제에 의해 맥이 끊겨버린 전통주와 해방 후 식량 사정으로 인해 가양주를 금지한 결과, 지금까지도 재현이 불가능한 전통주들이 수백 종에 이른다. 이런 사실에 우리들은 책임 의식을 가져야만 한다.

이들 술을 재현하고 상품화한다면, 사케나 와인, 맥주보다 다양한 전통주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고, 국내의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와 세계인들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양조기술의 기록과 축적, 또 이를 보존하고 지키려는 양조 기능보유자들의 철저한 장인정신, 같은 값이면 우리 입맛에 맞고 건강에도 좋은 우리 것을 지키려는 소비자들의 전통수호 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설이나 추석 명절 또한 우리 고유의 전통 의식과 풍속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우리 ‘전통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 한국 술의 미래 어떻게 전망하는지.

▲ ‘차별화’와 ‘누룩’에 달렸다. 주재료의 종류와 가공법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특히 쌀, 보리, 조 등 쌀가공방법인 죽과 떡, 고두밥을 다양화해야 한다. 중양주 중심의 양주 기법을 추구해야 경쟁력이 있다.

또 다양한 전통 누룩 개발과 연구, 차별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다양한 전통 누룩 복원과 전통주 개발을 통하여 그 가능성을 찾고, 전통주 본래의 주질과 향기 회복만이 세계로의 미래를 열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전통주 복원과 교육에 힘쓰고 있는 주류전문가로서 우리 술의 세계화와 확산에 대해 말해달라.

▲ 우리의 음주문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친화적인 자연 재료를 활용했다는 바탕에서 출발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숭고한 인격과 아름다움, 조화로움을 추구해온 역사와 문화가 깊게 깔려 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음주문화를 구가해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문화 정신을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전통주의 대중화는 물론,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통주연구소는 수천 년 역사와 전통, 고유성을 바탕에 깔고, 차별성을 목표로 한 전통주와 그에 따른 양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교육 훈련기관으로서, 전통주 연구의 산실이자 대중화 운동의 중심을 표방해 왔다.

우리나라 최초로 과거 찬란했던 이 땅의 가양주 문화를 확산시키는 ‘가양주 가꾸기 운동’을 통해 전통주의 세계화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부모와 어른을 위한 상시 반주와 손님 접대, 창업과 취미활동, 건강을 고려한 나만의 전통주로 새로운 가풍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의식 있는 국민과 정부 당국, 주류업계가 화합해 멋과 풍류가 깃든 수백 년 가양주 문화의 대중화를 이루고 우리 술의 세계화를 이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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