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스리기
마음 다스리기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1.02.15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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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때때로 중간에 잠을 깰 때가 있다. 다시 잠을 청해 보아도 정신은 쨍그랑 소리가 날 정도로 오히려 맑아지고 있다. 할 일 없이 누워 있는 시간들이 아까워 진다. 그렇다고 벌떡 일어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구들장 아랫목 같은 뜨뜻함이 온몸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찬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고 있어본다. 끝내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일으키는 소소한 움직임에 옆 사람도 잠을 깰까봐 살며시 몸을 일으킨다. 차가운 거실의 공기가 얼굴을 향해 들이 닥친다. 보일러를 잘 켜지 않는 우리 집을 딸아이는 “시베리아 냉장고 속 같다”고 표현을 한다.

맨 발에 닿는 거실 바닥의 냉기는 서늘하지만 싫지는 않다.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들락거리는 기분이랄까. 가벼운 담요를 걸치고 소파에 웅크려 앉아 있어 본다. 창문 밖은 아직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건너 편 아파트 동에 불빛이 한두 개 켜져 있다. 저 집은 왜 불이 켜져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처럼 잠 못 든 채 어둠속을 방황하는 이가 있는 건 아닐까.

몇 시간 뒤에 다가올 오늘 하루를 생각해 본다. 오전에 난타 연습을 가야하고 오후에는 병원과 마트를 다녀와야 한다. 쌀은 미리 씻어 놓았는지 얼려둔 고기를 냉장실로 옮겨 놓았는지 등을 생각하다 보니 잠이 다시 오기는커녕 거실의 냉기가 온 몸을 파고드는 탓에 정신은 더욱 또렷해진다. 어제와 오늘의 하루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어쩜 그리도 똑같은지 내일도 분명 오늘과 같은 순간순간을 살 것임에 분명하다.

뜨개질 바구니를 옆으로 당겨 왔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선택과 결정의 갈림길에서 무력감을 느낄 때 뜨개질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마음을 다스리고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뜨개질만한 것이 없다. 우울함이 오장육부를 헤집고 돌아다닐 때나 지금처럼 깜깜한 시공간에 홀로 내처져 있어도 뜨개질을 하다 보면 모든 장기들과 감각기관들은 제 할 일을 찾아 가고 마음은 평안을 되찾는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바구니에는 간절기 때 제 몫을 할 미완성 스카프와 코바늘이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는 편물 하나 완성하려면 도안을 구상해야 하고 무늬나 크기가 맘에 들지 않으면 뜨다가 풀었다를 몇 번은 반복해야 했다. 요즘엔 인터넷뿐만 아니라 개인 방송 채널에서도 뜨개에 대한 정보가 차고도 넘쳐서 손쉽게 편물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난타 스틱 케이스를 만들고 남은 실타래가 스카프용으로 적당할 것 같아서 시작한 뜨개질이 이번 겨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다. 서늘하고 컴컴한 이 시공간 안에서 내가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뜨개질을 처음 배운 건 중학교 가정시간이었다. 적당한 굵기의 대바늘과 실을 가지고 겉뜨기와 안뜨기부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뜨개질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엄마가 대바늘로 스웨터를 만들어 주셨고 코바늘로 커튼을 만들어 걸어두는 모습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커다란 꽃 모양이 가슴 중앙에 피어 있던 빨간 색 스웨터는 잊히지 않는 엄마의 손길이다.

어느 날 가정 선생님은 편물 숙제를 내 주셨다. 겉뜨기 몇 단, 안뜨기 몇 단을 떠오는 숙제였는데 반 친구 한 명이 자기는 정말 뜨개질을 못한다면서 나는 곧잘 하는 것 같으니 자기 숙제도 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단순하고 무식한 나는 칭찬 한 마디에 헤벌쭉 되어 그 친구 숙제까지 제출했더랬다. 아마 아이스크림 하나는 얻어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갈겼으니 친구의 숙제는 A를 받았고 나는 B를 받았다. 친구의 숙제를 내가 대신 했노라고 이실직고도 할 수도 없었으니 그 억울함과 분함은 어리석고 여렸던 여학생의 마음을 멋대로 할퀴어 댔다.

엄마가 스웨터를 만들어 주었듯 나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편물 옷을 만들어 입혔다. 모자며 가디건도 뜨고 원피스도 떠서 입혔는데 커가면서 본인들의 스타일이나 취향에 맞지 않았는지 언제부턴가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생활 소품으로 편물 내용이 바뀌기 시작해 손가방이나 베갯잇을 만들게 되었고 지금은 스카프를 뜨고 있는 중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등산을 하는 지인도 있고 절에서 108배를 함으로써 번뇌를 이겨낸다는 지인도 있다. 각자의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방법이 있을 테지만 나는 뜨개질을 하고 있을 때 고민되던 일들도 해결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잡념들도 사라진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언제 끝이 보일까 싶지만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바늘을 놀리면 어느새 완성돼가는 편물이 탄생한다. 내가 원하는 색깔이나 모양대로 말이다. 인생살이도 원하는 대로 척척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충분하게도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가끔은 실이 엉킬 때도 있다. 도대체 보이지 않는 실 끝을 찾아 헤매다 보면 시원하게 실이 풀어질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엉킨 실은 과감히 잘라내야 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살다보니 뜻하지 않은 곳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오래된 정을 끊어내야 할 때도 있다. 나는 뜨개질 안에서 인생 법칙을 터득한 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바깥은 깜깜 밤중이다. 잠시 뜨개에 집중했더니 목도 아프고 어깨도 결린다. 뜨개질이 다 좋은 데 오래 하다보면 온 몸이 결리고 아파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눈도 침침해져 오니 언제까지 뜨개질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거실의 서늘한 공기에 몸서리가 쳐지는 것을 보니 이제는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복되는 바늘놀림이 조금은 지루해 졌다. 역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뜨개질만한 것도 없다.

화사한 봄 어느 날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난타 멤버들과 마음껏 북을 두드리며 웃게 될 그 날을 꿈꾸어 본다.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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