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아련한 추억
설날의 아련한 추억
  • 박석무
  • 승인 2021.02.17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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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박석무 ⓒ위클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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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박석무]  신축년의 설날이 지났습니다. 코로나19라는 무서운 재앙 때문에, 해마다 아버님 제사도 모시고 설날도 보내려고 찾아가던 고향에도 못 가고 그냥 설이 지났으니, 추억과 회고의 정을 풀어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방을 맞기 몇 년 전에 태어난 우리들, 어린 시절 그때만 해도 조선 시대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제법 세시풍속의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하던 시절입니다. 떡국으로 차례를 올리고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을 먹던 추억, 새 옷에 새 버선을 신고 마을의 남녀노소들이 세배를  다니던 풍속, 연날리기 제기차기, 널뛰기의 즐겁던 일, 어느 것 하나 회고의 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설날이건만, 학자 다산이 설날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또 색다른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새해가 밝았구나! 군자는 새해를 맞으면 반드시 그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새롭게 해야 한다. 나는 소싯적에 새해를 맞을 때마다 꼭 일 년 동안 공부의 과정을 미리 계획해 보았다.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야겠다는 식으로 계획을 세워놓고 꼭 그렇게 실천하곤 했다. 더러는 일이 생겨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좋은 일을 행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발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해 공부하라는 훈계부터 아들에게 내리고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유배 초기 둘째 아들 학유에게 보낸 편지 한 대목은 더욱 아픈 얘기입니다. “내가 밤낮으로 빌고 원하는 것은 오직 문장(文牂:학유의 字)이 열심히 독서 하는 일뿐이다. 문장이 능히 선비의 마음씨를 갖게 된다면야 내가 다시 무슨 한이 있겠느냐?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책을 읽어 이 아비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말아다오. 어깨가 저려서 다 쓰지 못하고 이만 줄인다.”

설날부터 공부하고 책을 읽으라고 닦달했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지 않은 다산의 둘째 아들 정학유는 참으로 뛰어난 문인이 되어, 오늘 우리가 추억하고 회고해야 할 설날의 세시풍속을 매우 자상하게 「농가월령가」라는 글로 남겨 놓았습니다. “정초에 세배함은 돈후한 풍속이라 / 새 의복 떨쳐입고 친척 인리(鄰里) 서로 찾아 / 남녀노소 아동까지 삼삼오오 다닐 적에 / 와삭버석 울긋불긋 물색(物色)이 번화하다 / 사내아이 연날리기 계집아이 널뛰기요 / 윷놀이 내기하니 소년들 놀이로다.” 구성지게 울려 퍼질 설날의 노랫말입니다.

“보름날 약밤 제도 신라적 풍속이라 / 묵은 산채 삶아내니 육미(肉味)와 바꿀소냐 / 귀 밝히는 약술이며 부스럼 삭는 생밤이라 / 먼저 불러 더위팔기 달맞이 횃불 켜기 / 흘러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正月令)

설날과 보름날의 미풍양속까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그림 그리듯 읊어 놓았습니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是父是子)의 글 잘하는 가문입니다. 설날이니 떡국도 많이 먹고 마을 어른들에게 세배도 잘 다니라는 이야기는 빼고, 책 읽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아버지의 훈계에, 그대로 따른 아들은 세상에 귀한 「월령가」를 지어 우리의 추억과 회고에 가름해주는 아름다운 세시풍속의 참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와삭버석 울긋불긋 물색이 번화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고 마을을 휘젓고 다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이 이상 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보름날의 더위팔기 이야기도 실감나게 묘사한 글솜씨입니다. 이런 설날의 추억까지 못 느끼게 막아버린 코로나19의 재앙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요. 우리 모두 방역수칙 잘 지켜 빨리 끝내는데 함께 협력합시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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