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제로, 세계 흐름 맞추되 우리 형편과 정서에 맞는 정책 필요”
“원전 제로, 세계 흐름 맞추되 우리 형편과 정서에 맞는 정책 필요”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21.02.19 0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층인터뷰]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 센터장-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 센터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 센터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공론화, 얼마나 공정한가.

▲ 독일이나 스웨덴은 우리보다 민주주의나 주민 의견수렴, 공론화를 잘하는 선진국이다. 아직은 이런 나라들에 비해 우리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감사원이 원전 감사를 벌인 문제도 있었다.

사실, 공론화는 과정상 많은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국이고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 과정에서 비용이 좀 들고 사회적 갈등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는 게 오히려 더 바람직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수준을 놓고 볼 때, 독일과 스웨덴에 비교하면 부족할 수 있다.

 

- 공론(公論)으로 갈 경우, 사회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텐데.

▲ 물론 과거보다는 좋아졌지만, 이것을 빨리 추진하려 하거나, 추진하고 싶어하는 과정 자체가 꽤 번거롭다. 예를 들어, 검찰개혁도 과정이 중요하다. 목표만 정해 놓고 너무 무리하게 하다가 절차의 정당성 문제가 도출되기도 했다.

에너지 문제는 곧 국민의 삶이나 비용을 지불하는 문제, 미래 국가경쟁력 등 다양한 문제점을 놓고 국민과의 소통과 방향을 잘 잡아가야 한다. 속도도 중요하다. 빨리하면 좋지만, 빨리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피해를 보거나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있었던 ‘러다이트 운동’(Luddite, 신기술 반대 운동)이 있었는데, 급격한 산업화로 농민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섬유 기계를 파괴한 것이 좋은 예다.

그 당시에도 농민들의 생존 문제가 달렸기 때문에 결국 과격한 일이 벌어졌다. 역사적 교훈이 있다면, 그 당시 농민의 삶을 안정적으로 체계적으로 다뤄야 했듯이 변화로 삶이 무너지는 계층이 언제나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 ‘공론의 연착륙’이 가능할까.

▲ 물론 이것을 100% 모두 다 할 수 없더라도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면 사회적 갈등이나 이런 사람들의 저항이 줄어들 것이다. 이것을 정부가 정교하고 세밀하게 하지 않으면 인간사회에서 반발은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원자력뿐 아니라, 농업사회에서 공업화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이를 위해선 충분한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 사실 탈원전하자는 부분은 정치적 공약으로서 무조건 그대로 추진하기보다는 추진과정에서 현실을 잘 파악해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선진국의 정책이나 흐름 등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 원전과 관련한 산업과 일자리 창출도 중요한데.

▲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4차산업에서 일자리 감소가 문제가 되고 있다. 원자력도 마찬가지다. 급작스런 산업 기술 발전이 일어나 산업이 바뀔 경우 일자리 감소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만약에 이에 대한 대비가 안 된 상태라면 새로운 사회 위기가 생긴다.

원자력만 해도 교수든 학생이든 또 졸업생이든 원자력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원전 주변에 원전과 관련해서 밥 먹고 사는 기업이나 사람들은 불안해 할 수 있다. 핵 업계에서 앞으로 20년, 30년 더 직장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로드맵을 잘 짜야 한다.

핵이라는 게 꼭 원자력발전만 있는 게 아니다. 의료용 핵 영상기기라든지 비파괴 검사장비 등 다양한 관련 산업들이 있다. 국민의 삶을 안정적으로 보듬고 일자리를 창출해주면서 지원을 동시에 할 필요가 있다.

 

- 21세기는 세계 에너지 대전환 시대다. 선진국 흐름은 어떤가.

▲ 현재 유럽이나 미국 중국 모두 재생에너지로 가고 있고, 원전이든 재생에너지든 모두 전력생산과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 여기서 화석에너지에서 탈피하자는 것은 전력발전도 있지만, 여러 교통수단 등을 고려할 때,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현재 세계적 에너지 흐름은 원전을 더 확대하지 않고 있지만, 일부 중동국가는 지금도 원전을 계속 짓고 있다. 중국도 원전을 많이 지었다가 지금은 재생에너지로 급격히 나가고 있다. 우리 정부도 추가로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있고, 다만 이미 짓기로 계획된 것은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착공 중인 것까지 중단하자는 문제 때문에 논란이 많다. 최근에 시민들이 원자력 건설에 찬성한다는 분위기가 있지만, 이것은 어떤 사회적 조건이나 환경 등에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마치 정치인의 지지율처럼 얼마든지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 한국의 탈핵 운동을 짚어보자. 핵발전을 ‘위험 에너지’로만 보는 탈핵 진영이 미세먼지와 기후 위기, 화석연료 문제 등을 복합적으로 보는 시각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 인간은 자신이 관심 있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시민사회의 운동단체도 그런 경향이 있다. 핵발전을 과도하게 위험한 에너지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좋은 접근법은 아니다. 탈핵은 화석연료 감축, 나아가 사용 중단이라는 에너지 대변혁의 일환으로 관련 정책과 목표, 속도 등을 유연성을 가지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이든, 운동이든 나무만 바라보지 말고 숲을 살피는 혜안이 중요하다. 에너지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시각 또한 복합적이어야 하고 다원적인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 추진이 이루어져야 한다.

 

- 일부에서 정부의 탈핵 정책을 두고 ‘속도가 더딘 탈핵’과 ‘멀고 먼 탈핵’ 비판이 있다. 어떻게 보나.

▲ 빨리 달리고 싶은 사람의 눈에는 다른 사람의 걸음걸이가 느리게 보인다. 그 반대로 천천히 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걸음이 너무 빠르게 보인다. 따라서 항상 역지사지하는 생각이 중요하다. 아무리 빨리 가고 싶다고 해서 처음부터 마구 달리면 안 된다.

우리 몸이 빨리 달릴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을 때 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리에 쥐가 나고 숨이 차 중간에 주저앉고 만다. 탈핵 정책이든, 그 외 다른 정책이든 속도를 내고 싶으면 그 전에 충분한 준비와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 탈핵 걸림돌을 해결하기 위한 ‘탈핵 국민동의 법제화’와 ‘산업부 재편’ 가능할까.

▲ 탈핵의 속도는 우리가 얼마나 안전하고 석탄·화력발전소 등과는 달리 적어도 발전 과정에서는 탄소를 사실상 내지 않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빨리 끌어올리느냐에 달려 있다. 탈핵 정책 여부를 놓고 법으로 국민동의를 의무화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만약 그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면 그리고 선례가 된다면 다른 의제나 중요 정책을 가지고도 국민동의 법제화 요구와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에너지 정책의 대변화는 국가 발전과 국민의 삶과 생명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다수가 동의할 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통상과 산업 진흥, 에너지 정책을 산업통상자원부가 맡고 있는데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정책의 중요성 등을 고려한다면 산업부가 관장하는 영역을 나눠 통상과 산업을 하나로 묶고 에너지는 환경부가 맡고 있는 기후변화 관련 정책을 하나로 묶어 (가칭)기후에너지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일부 유럽 선진국은 이런 정부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래지향적으로 정부 조직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

 

- 역설적 질문이지만, 기후 위기가 클수록 핵발전소 사고 위험 가능성 얼마나 되는지.

▲ 기후 위기와 핵발전소 사고 위험 가능성은 서로 직접적 관계가 없다. 기후 위기가 급작스럽게 찾아오고 재생에너지 확대 등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과도기에는 원전을 유지하는 정책을 펴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기후 위기, 즉 급격한 기후변화는 지구온난화 속도가 매우 빨리 진행될 때 오는 것이므로 이를 막기 위한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 끝으로 임기 1년 남짓 남은 현 정부의 탈핵 정책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짚어달라.

▲ 완전 탈핵, 즉 원전 제로를 달성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목표와 지향은 갖되 원전 감축에 따른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 등 여건이 충분히 마련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무리하게 추진하거나 추진 과정에서 불법, 탈법 또는 부정하고 불투명한 행위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원전 감축과 충분한 전력생산이 맞물려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원전을 줄이고 있는 와중에 대정전(블랙아웃)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탈핵으로 가는 발걸음이 묶이게 된다. 세계적 흐름에 맞추되 우리 형편과 국민 정서에 걸맞은 정책을 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