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믿으면 안 돼
어른들은 믿으면 안 돼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1.02.2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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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영화 ‘어린 의뢰인’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어제 영화 하나를 봤다.

장규성 감독의 영화 ‘어린 의뢰인’(2019).

상영 당시엔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진 영화다. 시장의 논리로 보자면 정인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에 이 영화가 개봉을 했더라면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어떤 때와 맞아떨어져 크게 이슈가 되고 흥행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영화 또한 그런 덕을 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도가니’나 ‘82년생 김지영’처럼.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많이 아팠다. 영화라는 특성 때문에 약간의 신파와 권선징악의 마무리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 안에 담으려고 했던 감독의 진정성이 충분히 느껴졌다. 영화 초반. 제노비스 사건을 예로 들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한 설정 또한 좋았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관심은 무죄입니까 유죄입니까.

우리나라에도 사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아동학대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없진 않다. 아동전문 보호기관이 있고 법적으로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이미 만들어 놓았다. 아동학대 신고를 받으면 경찰이 함께 현장에 출동해 사실 확인이 되면 친권 중지를 할 수 있고 법원에 청구하면 친권 박탈도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이다.

그렇게 아이와 부모를 떼어놓았을 때 잠시 아동보호기관에 머물다 그 이후엔 어디로 보내질까. 그동안 상처받았던 아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양육해줄 수 있는 곳. 그 대안이 마련되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이들이 갈 곳은 결국 보육원이나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환경(경제력 없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에 보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아이를 구출하고 폭력을 행사한 인간을 벌주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아이를 어느 곳에서 어떻게 언제까지 품어주고 지지해줄 수 있는지 거기에 방점이 찍혀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얼마 전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성폭행 피해자는 시설에서 덜덜 떨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한 중학생이 자신을 성폭행한 양할아버지의 형량이 감형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청원을 올린 거다.

16살인 이 여학생은 지금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데 자신을 성폭행한 양할아버지는 현재 감옥에 가있고 부모도 아동학대로 인한 접근금지 명령이 떨어져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부모가 자꾸 자신에게 연락을 해와 할아버지가 걱정되니 용서하라고 괴롭힌다는 거다. 시설에서 힘들게 버티며 살고 있는 것도 모자라 왜 이런 괴롭힘까지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쓰여 있었다. 아이의 양할아버지는 지난 2019년 손녀를 성폭행 했고 이로 인해 징역 6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 사건 이후, 아이는 시설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1년 동안 다섯 곳을 옮겨 다녔다고, 수차례 자해를 시도하다 조건만남과 성매매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는 자신의 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그 양할아버지도 용서하고 싶지 않지만 있을 곳이 마땅치 못 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기사였다. 스무 살이 되면 양할아버지가 출소하게 되는데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살고 있다는 거다. 때문에 자기가 안전한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해 놓았다.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영화 ‘어린 의뢰인’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대한민국은 정인이 사건으로 인해 들끓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동학대나 성폭행을 당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수많은 법안이 통과되고 정인이 법이 새로 만들어진다 한들 나라에서 돈을 대주지 않는데 과연 누가 그 일을 맡아서 해주겠냐 말이다. 상처 받은 아이들이 지속적인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고 안전한 곳에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청와대에 청원을 올린 여학생이 조건만남과 성매매에 빠지게 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아무도 그 아이를 맡아서 안전하게 케어해주고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조력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잠시 잠깐 맡아서 보호해 줄 수는 있겠지만 나라에서 예산지원을 충분히 해주지 않는 이상, 누가 자기 돈까지 써가며 그 역할을 책임지고 해나가겠냐 말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동학대에 대한 문제는 사실 전 세계적으로 오랜 이슈가 되어왔다.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예방과 인식개선을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곳. 예를 들면 우유팩 같은 곳에 아동학대가 얼마나 나쁜지 만화를 그려 내보내고 있다고 들었다. 그로인해 이웃의 무관심과 내 아이 내가 몇 대 패는 게 뭐가 그리 대수냐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나갔고 아동학대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을 끝까지 케어해줄 수 있는 시설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 운영해 나간다고 하니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앞에서 말한 정인이법이나 그 어떤 좋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한들, 현재의 쥐꼬리만 한 예산 앞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월급 100만원 갖다 주고 살림 똑바로 하라고 큰 소리 치는 가장이랑 뭐가 다르겠냐 말이다.

영화에서 다빈이가 이런 말을 한다.

어른들은 믿으면 안 돼…

잠시 반짝이다 사라질 관심으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빈이가 말한 ‘믿지 못할 어른들’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 모두 고민, 또 고민해 봐야 될 일이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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