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내가 찾아야만 했던 것
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내가 찾아야만 했던 것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1.02.26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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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인도 콜카타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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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1. 인도를 생각하기

인도만큼 많은 여행객들의 구설에 올라 설왕설래의 대상이 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인도를 다녀와 쓰인 수많은 여행기들, 타지에서 만난 여행객들이 인도에 대해 늘어놓는 찬사와 불평들. 직접 가본 사람은 가 본 사람대로 할 말이 많고,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듣고 본 이야기로 각각의 좋거나 두려운 막연한 환상을 나누어 가지는 나라. 명상의 나라에서 영적 체험을 겪었다는 간증 식의 여행기부터 더러운 길거리에서 그치지 않는 호객을 견뎌 결국 살아 돌아왔다는 유튜버들의 고생담까지, 인도 여행에 대한 말들은 거리의 호객꾼들만큼이나 지치지 않고 이어진다. 여자 혼자 인도를 다녀왔다는 여행기엔 종종 비난의 댓글들과 토론이 시작되고, 그렇게 인도는 여행에 대해서만큼은 늘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위험하고 불결한 나라, 시민의식 없는 나라, 혼자 가면 운이 좋아 무사히 돌아올 수는 있어도 늘 일정량의 위험과 불안을 떠안아야 하는 나라, 젊을 때 고생 한 번 하러가는 나라. 그럼에도 가봐야 할 가치가 있는 나라. 인도를 두 달 정도 혼자 여행한 이후에 저 많은 구설들이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적어도 인터넷에서 인도에 대해 무작정 비난하는 사람들 중 인도를 직접 가본 사람 역시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뜨거운 논쟁거리에 말 한 마디 보태는 모난 재미 이상으로 인도는 넓고 다양했다. 내가 경험한 인도는 ‘인도’라는 말로 겨우 묶이긴 하지만 그 안에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 그것들을 모두 ‘인도’라고 부르기 잠시 망설여지는, 그러나 다시 인도, 라고 이해하게 되는 하나의 큰 공간이었다. 인도 동부의 대도시 콜카타는 그 시작점이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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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착하자마자 여권 잃어버리기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여권을 몸에서 떼어낸 적이 없었는데.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콜카타 공항에 도착해 막 출입구 통로를 나와 정신없는 공항 로비였다. 시간이 늦어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택시를 이용하거나, 버스를 위해 밤을 새거나 해야 했다. 비행기 연착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 시간이나 늦게 콜카타에 도착하는 바람에, 익히 들어왔던 인도의 밤거리를 혼자 지나 게스트하우스까지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인도에 대해 좋은 말만큼이나 안 좋은 말도 너무 많이 들어서, 천천히 인도의 분위기를 파악해 적응하려고 했던 첫 계획이 틀어졌다. 두려운 마음이 들 때 낡은 회색빛의 공항로비에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선불택시를 타기 위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줄에 끼어 한참 기다리다가 택시비와 함께 제출하기 위해 늘 여권을 두었던 자리를 손으로 더듬다가 깨달았다. 여권이 없다.

수많은 생각을 했다.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손이 덜덜 떨렸다. 일전에 이미 그리스에서 한 번 여권을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어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는 대략 알고 있었지만 방금 타국의 공항에 도착한 사람이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도 않거니와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여행을 끝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을 더듬었다. 마지막에 여권을 어디에 두었지. 생각 끝에 생각난 곳은 입국하기 직전의 환전소였다. 나는 주로 외화를 현지 ATM에서 뽑아서 사용하는데, 바로 ATM을 찾지 못할 것 같아 출국장에서 높은 환율이라도 미리 소액을 환전하는 편이다. 연착과 인도에 대한 긴장감으로 피로했던 내가 환전을 위해 여권을 제출하고, 돈만 받고 출국장을 빠져나와버린 것이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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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출국장을 한 번 빠져나오면 다시 되돌아 들어갈 수 없다. 일본에서 일어난 비행기 탈취사고 이후로 그렇게 되었다고는 하는데, 그거야 나중에 안 사실이고 뻔히 내 여권이 있을 출국장 안 환전소로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공항 경찰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해 봐도 시큰둥한 반응으로, 어쩌겠냐고,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자신들도 들어갈 수 없고 방법도 없다고. 그들은 신의 뜻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처절하게 공항을 돌아다녔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여권도 없이 한국 대사관이 있는, 콜카타에서 기차로 20시간이 걸리는 수도 델리로 가야하는데, 기차를 타려면 여권이 있어야 했다. 방법이야 있겠지만 상상만 해도 피로했다. 한참을 이곳저곳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울먹이다가 누군가 네가 타고 온 항공사 출국 데스크로 가보라는 말을 해주었고, 결국 데스크로 갔다. 데스크에서 한참 또 동동거리고 있을 때 멀리서 항공사 남자직원이 왔다. 무슨 일이냐고. 나는 직원증이 있어서 출국장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고. 그가 몇몇 절차를 거쳐 환전소에 다녀왔을 때, 사실 환전소 쪽에서 여권을 두고 나가버린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의 여권을 외부 환전소에 사람을 통해 보내두었다는 것을 알았다. 여권을 찾았다. 남자 직원에게 정말정말 고맙다고, 당신이 내 은인이라고 주절거렸고 그는 콜카타에서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처음 볼 때부터 그의 눈빛이 편안했다. 나를 분명히 바라보는 크고 깊은 눈, 다른 이들과 다르게 나의 너머에 있는 허공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나를 쏘아보는 것도 아니고 나를 정확히 응시하는 깊은 눈. 그의 눈은 내가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같은 반 친구의 눈을 닮아있었다. 약간 이국적으로 생겨 아랍왕자라는 말을 줄곧 들었던 내 친구의 눈.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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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착한 눈을 가진 사람을 찾아다니기

눈에 영혼이 투영된다는 말을 반쯤은 믿는 편이다. 적어도 어떤 성격과 기운이 눈을 통해 조금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공항에서 그 남자직원의 눈을 보고 나는 어떤 비슷한 유형의 눈을 가진, 비슷한 영혼의 사람들이 타국에도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그 직원이 나의 구원자로 나타나 가장 큰 안심을 주었기 때문이겠지만, 그 눈을 보며 나는 인도라는 타지에 적응할 힘을 얻었다.

여권을 찾아 게스트하우스로 향하는 밤거리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결국 선불택시 줄을 다 기다려 내 차례에 공항 밖으로 나간 새벽 1시. 밖은 깜깜했지만 줄지어 서있는 노란 택시들과 산만하고 번잡한 거리에서 사람들은 무서운 눈으로 아무데나 꽁초를 버렸다. 택시 기사는 드문드문 헤진 옷을 걸친 눈에 초점이 잘 맞지 않는 중년이었고, 내가 말한 목적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를 차지하기 위한 기사들의 거친 실랑이 끝에 기사는 끝내 대충 목적지를 이해해 출발했다. 그리고 밤의 도로. 차들이 신호도 없이 마구잡이로 얽혔다. 두려운 마음 반, 여권을 찾아 안도하는 마음 반으로 밖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왜인지 옆 차선에 있던 택시 기사가 나를 보고 거칠게 언성을 높이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 옆으로 커다랗게 서있던 간디의 석상이 클랙슨 소리로 가득한 쓰레기 덮인 도로 근처에 기괴하게 서있던 것은 기억한다. 택시비를 더 달라는 기사를 뿌리 치고 지도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으려고 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13층에 있다고 했는데 건물의 입구들에 표시등 같은 건 전혀 없었고, 무언가 거칠 게 없다는 듯 행동하는 남자들이 거리의 노점 가로등 불빛 아래 가득했다. 여긴가? 해서 들어간 건물 입구에는 세 명의 남자들이 헝겊 같은 것을 덮고 바닥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돌아 나오려는 순간에 그 중 한명이 여기라고 손짓했다. 녹슨 철창의 엘리베이터. ‘엘리제를 위하여’의 멜로디가 오르골처럼 반복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철창 사이로 한 층 한 층 버려진 건물이라는 듯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물건들이 보였다.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누워서, 여행 중 처음으로 이 나라를 떠야하나 진지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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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콜카타는 밤의 콜카타보다 대하기 쉬웠다. 밤에는 혼잡한 두려움으로 느껴졌던 것들이 낮에는 다층적인 활기로 느껴졌다. 거리는 사람들로, 나무들로, 쓰레기들로, 노점들로, 그 노점에서 풍기는 향신료 냄새들로, 간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고, 길거리에서 목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익히 들어왔던 인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콜카타’라는 도시의 역사와 특성을 이해할 때 더 정확히 보이는 것들이 있었겠지만, 내게 콜카타는 인도의 첫인상 자체였다. 원색으로 대충 덧칠해져 알아볼 수 없는 문자로 가득한 버스들, 클랙슨을 기본적으로 그냥 누르며 다니는 차들, 경험해본 혼란스러움과는 분명하게 달랐다.

콜카타에서 처음 며칠을 지내면서 특별히 관광지를 찾거나,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그저 거리를 걸었다. 하루 종일 거리를 걸었다. 착한 눈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곳에서 편한 마음이 들 것 같아서. 나를 곁눈질하거나 대놓고 노려보는 사람들을 지나 며칠간 결국 거리에서 세 명의 착한 눈을 발견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 눈을 분명히 보았다. 횡단보도에서, 식당에서, 공원에서. 내가 아끼던 영혼을 닮은 것 같은 그 눈. 그들의 눈을 분명하게 보았기 때문에 나를 다시 안심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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