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노동-자본 ‘적대’ 조정하지 않아... 국가는 자본과 동맹하는 기구에 불과”
“자본주의는 노동-자본 ‘적대’ 조정하지 않아... 국가는 자본과 동맹하는 기구에 불과”
  • 최규재 기자
  • 승인 2021.03.0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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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영원한 사회주의자’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1회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위클리서울/ 오세철 교수 제공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이 수업을 듣는 대부분은 졸업해도 경영자가 되기 힘들 겁니다. 남의 밑에서 일하는 임노동자가 되겠죠. 그래도 어떤 회사가 어떻게 경영되는지는 알아야겠죠. 억울하게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죠. 임노동자의 입장에서 수업을 진행할 것입니다.”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79)가 재직시절 새학기 첫수업 신입생들에게 늘 던진 말이었다. 학생들은 경영학을 공부하며 마르크스를 읽었다. ‘경영자 이건희’도 마르크스를 읽었다고 한다. 임노동자들의 입장을 헤아리기 위해서였다는 블랙코미디 같은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대기업 회장들과 임원들이 마르크스를 읽으면 읽을수록 노동탄압은 더욱 흉포해져갔다.

백골단이 기승을 부리던 1987년 어느 날은 오 교수 인생의 큰 전환기였다. 6월 항쟁 당시 이한열이 연세대 앞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지면서다. ‘강단 맑스주의자’였던 오 교수는 자신의 수업을 듣던 제자가 숨지자 이때부터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후 이명박 정부 때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에 연루되었고, 용산참사-쌍용차 사태 등 각종 시국사건 변론에 앞섰다,

오 교수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 모든 게 자본주의가 낳은 폐해라는 것. 지구상에 사회주의가 제대로 정착된 적도 없다고 덧붙인다. 사회주의를 표방한 북한도, 중국도, 러시아도 ‘사이비 사회주의 독재 국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북한 체제 역시 붕괴될 대상이라고 늘 주장해온 그다.

“과거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를 비롯 북한, 중국, 쿠바 등을 사회주의 국가로 오해했다. 일국 사회주의 건설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들 국가가 보여주었다.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내에서 완성될 수 없다.”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들도 비판의 대상이다. 실제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을 점차 상실하고 있으며, 계급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노동자들 앞에서 100년 전과 비슷한 이데올로기로 겨우 버티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혁명을 향한 어떠한 투쟁도 없었고 자본주의의 일시적 번영의 착시와 사회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복지국가 모델, 케인즈주의의 일시적 위기 극복 그리고 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신자유주의의 공격과 또 다른 형태의 케인즈주의의 활용 등이 지금의 자본주의의 위기를 넘기려 하고 있다. 전쟁의 위험 역시 도사리고 있다. 트럼프를 비롯한 민족주의, 국가 제일주의, 좌우를 막론한 포퓰리즘, 인종주의 그리고 크고 작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긴장과 충돌은 지속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 현실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비노동’이 아니라 오히려 ‘반노동’에 가깝다는 것. 노동, 자본, 국가의 통합구조를 안착시키려는 시도가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미완성이기는 하나 장기적으로는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 교수는 “국가는 노동과 자본의 적대와 대립을 조정하거나 중재하는 기구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자본가 국가이고 자본계급과의 동맹하는 기구”라며 “여기에 노동계급마저 자본 계급 편에 선다면 그 기구는 자본계급의 단일기구이다. 계급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와 정부는 노동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는 반민주주의 국가임을 문 정부 스스로 천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얼마전엔 오 교수와 늘 함께 거리에서 싸워온 원로 사회운동가인 백기완 선생이 영면했다. 백 선생이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당시 오 교수는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노선은 달랐지만 백 선생과도 인연이 깊었던 오 교수는 여전히 착잡한 심정. 원로로서 바통을 이어받아야 하지 않느냐 묻자 “내가 왜 원로야, 원로라는 표현은 빼달라”며 멋쩍게 웃는다. 원로라는 표현을 ‘극 혐오’ 하는 오 교수. 영원한 ‘청년 맑스주의자’ 오세철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오 교수의 요청대로 외국어 발음은 되도록 그대로 싣기로 했다. 이를테면 코뮤니즘의 경우 우리말로 ‘공산주의’라는 용어로 잘못 번역 되고 있고, 이는 특히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김일성주의, 남미 등의 민중주의와 구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요즘 근황이 어떤가.

▲ 여전히 맑스주의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를 자처하는 북한, 중국, 러시아 등도 다 가짜다. 역사 이래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한 적 없었다. 그러니 사회주의자로서 예나지금이나 입장변화가 없다.

 

-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분위기와 달리 과거 정권과 별반 차이 없다는 비판 등이 제기되고 있다. 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국제적으로는 국제 부르주아지(자본 계급) 사이의 경쟁·갈등이 제국주의 전쟁의 길을 열어놓고, 국내적으로는 역시 자본 계급 분파들의 담합과 쟁투가 계속되고 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몇 가지 표어를 내걸었다. 첫째는 ‘함께 잘살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함께 잘살 수 없다. 자본주의가 이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말하는 사회는 억압, 착취가 사라지고 상품, 화폐. 시장, 계급 그리고 국가가 소멸하는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평화’다. 남북이든 북미이든 간에 제국주의 사이에 진정한 평화가 있을 수 없다. 계급전쟁이 항존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평화는 위장일 뿐이다. 셋째는 ‘공정한 사회’다. 차별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과 차별 자체를 넘어서자는 말은 다르다. 이 역시 자본주의를 폐절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맑스주의의 진정한 복원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외 자본 계급의 현란한 수사나 ‘사이비 사회주의’에서는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없다. 다시 시작하는 길밖에 없다. 맑스주의 이론과 실천으로부터 혁명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연합하는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하는 길이 인류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 정권이 바뀌어도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 과거와 현실을 진단하자면.

▲ 정치권력은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삼권 분립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영역의 분리, 기능의 독립성으로 체제의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고 보는 견해가 자본 중심의 민주주의의 골격이다. 코뮤니스트는 이러한 분리를 반대하고 평의회에 기반을 둔 대중(노동자, 병사 등)과 지역의 선출된 권력을 노동계급 민주권력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자본계급 선거와 의회를 둘러싼 자본계급 정치세력을 다루지 않는다. 여야를 불문하고 자유주의, 보수주의를 불문하고 그 권력의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386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 결합한 민주화운동세력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의 군사독재와 싸울 세력으로 우리사회 자본계급 민주주의의 정착에 공헌한 세력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결합한 세력은 앞으로 자본계급 의회에 진출할 예비세력으로 그들의 전임자들과 유사하다. 이들의 부류는 대학, 언론, 사법부, 노동 등에 몸담았다가 자유주의 민족주의 자본계급 이데올로기의 동질성을 기반으로 사적, 개인적 인간관계로 문재인 정부에 가담했다고 본다. 이들은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것 같지만 사회주의나 코뮤니즘에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소부르주아(낮은 의미에서의 자본 계급)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보수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자본 권력에 편입되기를 갈망하고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기회주의적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청와대, 정부, 의회, 법원, 언론기관 등에서 보이는 이른바 엘리트(교수, 판사, 정부관료, 청와대, 언론가, 시민운동 활동가, 노동조합 관료)들이 문재인 정부를 떠받드는 소부르주아 세력의 실체이다. 앞으로 이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자본계급 세력이 보수주의 자본계급 세력과 언제, 어디서나 연대하고 연합할 수 있는 세력임을 알게 될 것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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