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길 위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은...
아비규환 길 위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은...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1.03.05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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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소설 ‘로드’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영화 더로드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사람이 사람을 사냥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은 괴물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그들은 사냥한 인간을 먹는다. 모든 거리는 살육과 폭행으로 얼룩져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더러운 재로 변했다. 살아있는 것이 멸종한 상태. 현실은 ‘아비규환’의 상황이다. 아비규환은 불교에서 말하는 8군데의 열지옥 가운데 하나다.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 소설 <로드>(The Road, 문학동네 펴냄)에서는 ‘개똥밭에 굴려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해당되지 않는다. 소설 속 아들과 아버지는 총을 가지고 다닌다. 총알을 상대방의 몫이 아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치욕을 당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할 수 있도록 스스로 죽기 위한 장치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아비규환의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을까.

 

괴물이 인간을 잡아먹는 거리, 괴물은 인간이었다

거리는 온통 더러운 재로 가득하다. 세상이 멸망한 흔적이다. 어떻게 세상이 멸망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핵폭발이 있었는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의 영향인지 무언가 닥쳤고 인간은 거의 멸종했다. 지구에 생명체는 거의 살아남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것이 행운일까, 불행일까. 아무튼 소설 속 부자(父子)는 살아남았다. 이들은 어떻게든 살아서 남쪽으로 가야 한다. 남쪽으로 가는 것만이 이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유일한 희망이다.

세상은 낮인지 밤인지 잘 알 수 없다. 날짜도 모른다. 세상이 멸망하고 얼마나 지났는지도 잘 알 수 없다. 남자는 날짜를 확인하지 않은지 몇 년이 지난 것을 상기했다. 태양은 재로 덮여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저 잠을 자고 다시 눈을 뜨면 아침이다. 남자는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아들이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소년도 잠든 사이 아버지의 생사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남으려 노력하고 있다. 남자는 모든 지 움직이는 것, 조금이라도 색깔이 있는 것을 찾아 움직였다. 하지만 태양이 보이지 않으니 식물도, 동물도 그 어디에도 초록의 흔적은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다. 야생에서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겨울을 더 난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자는 절박했다. 아들을 빨리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놔야 했다.

모든 자원이 고갈된 폐허 속에서 모든 것이 소중하다. 그중 으뜸은 방수포다. 다 헤어져서 원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방수포가 그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재산 목록일 정도로 실상은 너무 참혹하고 비참하기만 하다. 그들은 방수포를 마치 ‘신줏단지’처럼 아끼며 가지고 다닌다. 방수포는 그들에게 침대이자 이불이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위협이 되는 사냥꾼을 만나면 다 버리고 도망쳐야 한다. 사냥꾼이란 인간 사냥꾼을 뜻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인간들은 가장 큰 위협이다. 모든 생물이 사라졌지만 남자와 소년과 같이 살아남은 인간들이 존재했다. 현재 상황에서 사냥꾼들에게 인간은 가장 큰 재산이다. 사냥꾼은 인간을 잡으면 감금하고 사육한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되면 그들을 먹는다. 남자와 소년에게 꼬챙이 꿰인 채 구워진 아기의 시체를 발견하는 일이 그다지 낯선 경험이 아니다.

남자와 소년은 벌거벗은 채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남자 여자 모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숨으려 했다. 매트리스에는 두 다리가 다 잘린 남자가 누워있었다. 사냥꾼에게 잡힌 사람들이었다. 인간 사냥꾼인 그들은 사람을 사육하며 팔다리를 조금씩 잘라서 먹는다. 인간성이 말살된 참혹한 현장이다. 남자와 소년도 인간 사냥꾼에게 발각되는 위기가 찾아온다. 남자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총알을 장전한다. 총알은 단 두 발뿐. 사냥꾼에게 벗어나기 위해 쏜 한 발을 제외하면 이제 남은 총알은 한 발뿐이다. 남자는 소년을 위해 한 발을 소중히 간직한다. 총알이 한 발만이 남은 지금 만약 최후의 순간이 온다면 총알을 사용할 대상은 상대가 아니다. 총구의 방향은 자신과 아들에게 향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싶지는 않다. 남자가 소년에게 최후의 순간 총을 입에 넣어 방아쇠를 당기는 방법을 알려주는 모습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는 별개로 죽는 순간이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싶다는 열망으로 읽힌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알을 아들의 몫으로 남겨놓는 아버지의 마음은 절절하다. 하긴 이러한 상황이라면 그 누가 그렇지 않을까.

 

영화 더로드
영화 더로드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더로드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더로드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마지막 장에 적힌 한 줄의 희망… 우리가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찾아야 한다. 사냥꾼들처럼 인간을 사육해 먹을 수는 없다. 음식을 구할 길은 요원하다. 이들이 먹을 수 있는 건 이미 인간이 만들어서 저장해 놓은 음식, 병이나 통에 들어있는 제품뿐이다. 누군가 멸망 전 자신들이 먹기 위해 정원이나 농장에 숨긴 통조림. 그것을 찾는 것이 매일매일 중요한 할 일 중 하나다. 그런 것들을 발견한 날이면 세상 금은보화를 얻은 것처럼 신바람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매일 그런 행운이 일어나지 않는다.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 속에서도 살아있다면 먹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가 소년에게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목록은 먹을 것이 아니었다.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최종 목적은 안전한 남쪽으로 가는 것이다. 남자는 소년에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신들은 ‘불을 운반하는 신성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주지시킨다.

인간에게 불을 줘서 신의 천형을 받아야 했던 프로메테우스의 심정을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이는 멸망한 세계에서 남자가 소년에게 숙지시켰던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은 이들에게 생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목표와 희망이 없다면 살아있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남자는 자신이 머지않아 죽을 것을 예감한다.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 매일 아침 피가 섞인 기침을 내뱉으며 그는 괴로워한다. 다가오는 죽음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어린 아들이 혼자 남는 일이다. 남자는 차디찬 잿빛 거리에서 숨을 거둔다. 아들은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담요를 덮어줬다. 소년은 아버지 옆에 무릎을 꿇고 이제는 차디찬 손을 잡고 서럽게 울었다.

소년은 자신들에게 향해 오는 사람들의 무리를 발견한다. 회색과 노란색이 섞인 스키 점퍼를 입고 있는 남성이다. 어깨에는 산탄총을 메고 있었다. 산탄총을 맨 남자와 함께 있던 무리가 소년에게 손을 내민다. 이들은 어린 딸과 아들과 함께 있다. 여자는 소년을 보자 두 팔로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 정말 반갑구나. 여자의 이 한 마디는 그동안 두려웠던 모든 것을 잊고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한다. 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멈춘 지금 우리가 듣고 싶은 말도 바로 이런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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