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은 구겨진 것들로 가득하다
생활은 구겨진 것들로 가득하다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1.03.12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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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인도 콜카타2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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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물의 직선, 생활의 곡선

콜카타에서 나는 그저 계속 걸어 다녔다. 어디가 정류장인지, 과연 정류장이 있기나 한 것인지 알 수 없던 형형색색의 만원 버스를 탈 용기 역시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선 거리에서 인도의 풍경에 적응하고자 했다. 콜카타의 풍경은 사람들이 인도에 대해서 종종 말하곤 했던 것들과 닮아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인도의 첫인상은 여행의 시작점이 되곤 하는 수도 델리의 구시가지의 풍경이었을 텐데도 쇠락한 공업 도시 콜카타의 붐비는 풍경 역시 내게는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관광도시가 아니기에 나를 붙잡는 끈덕진 호객꾼들이 없었다는 것들은 빼고.

콜카타의 거리에서 내가 처음 직관적으로 느꼈던 것은 어딘지 모르게 이 도시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는 감각이다. 지나온 도시들과 한국의 풍경이 황량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도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 된 이 도시는 완전히 꽉 차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무수한 사람들, 그 발밑에 잡다한 쓰레기들과 노점에서 먹고 버린 음식 용기들, 향신료의 다양한 냄새들과 경적 소리로 뒤덮인 도로, 숙소로 돌아와 코를 풀면 검은 게 묻어나왔던 도시의 공해까지. 이 도시의 중심부는 처음 접한 이들에게 일종의 감각적 포화 상태를 느끼게 만든다. 소리든, 냄새든, 이미지든, 사람이든, 동인도의 콜카타는 내가 살아오거나 머물었던 곳에서 느꼈던 감각을 너끈히 초과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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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것들이 싫거나 껄끄럽지 않았다. 밤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과 달리 낮에 본 콜카타의 풍경 속에서는 내 앞에 선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또 굴러가는, 그러면서도 쇠락한 공업도시가 풍기는 울증 혹은 일정량의 체념이 느껴졌다. 그저 묵묵히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 혹은 폭을 가늠할 수 없이 흐르는 강물 같은 도시의 움직임. 콜카타에 도착하기 전, 반복된 여행에 조금 지쳐있던 나는 왜 여행을 하고 있지? 라는 바보 같은 자문을 밤마다 하곤 했는데 이곳에선 부질없음마저 부질없어진다고 해야 할까. 모든 것이 움직일 따름이다. 흐르는 강물에 들어갈까 주저하다 결국 물속에 잠겨 물속의 평온을 배우는 것처럼 나는 그 거리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콜카타는 영국이 만들어 지배한 ‘인도제국’의 수도였고, 제국의 문화와 공업의 중심부였다. 지금은 인도의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형세지만, 파키스탄에서 미얀마까지 이르렀던 제국에서 콜카타가 위치한 벵골은 그래도 중간부에 위치해 있었다. 이름은 어디서 참 많이 들었던 시인 타고르의 고향이 이곳이기도 하다. 콜카타에서 독립 운동 의지가 조금씩 감지되자 영국은 제국의 수도를 콜카타에서 델리로 옮겼다고도 했다. 그 후 인도제국이 붕괴되고 영국이 인도에서 떠났다. 콜카타가 있는 벵골 지역은 종교에 따라 인도와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으로 분리되고, 제국의 중심지였던 콜카타는 동쪽에 치우친 변방의 대도시가 된다. 영명이었던 캘커타에서 콜카타로 이름을 고친 이 도시의 풍경은 어떤 역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듯 고층 콘크리트 건물들이 황량하게 이어진 채, 그 밑에서는 사람들이 전혀 정리되지 않은 얼룩진 강변에 모여 빨래를 하고, 기차역에는 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좌판을 벌여 죽은 생선 따위를 늘어놓고 팔았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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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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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흔적들이 도시에 꽤 남아 있었다. 시가지에 자리한 이제는 낡아 도시의 일부가 된 영국식 건물들과 도시 중심부에 그대로 위치하고 있는 빅토리아 메모리얼. 이 건물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얀 대리석 건축물인데, 지도로 봤을 때 그 주변은 거의 다 큰 공원일정도로 거대한 규모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무작정 그쪽으로 걸어갔을 때 알았다. 구글 지도는 그곳이 공원인지는 이야기해줄 수는 있지만,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해주진 않는다는 것을. 거대한 공원이라고 생각해 찾아갔던 곳은 일종의 거대한 공터 혹은 쓰레기장이었다. 빽빽한 콜카타의 거리에서 벗어나 넓은 공터가 펼쳐졌지만 그곳은 여전히 무언가로 차 있었다. 멀리 높게 솟은 빌딩들이 보이는 공터에서는 수풀 밑으로 공업용 쓰레기들이 발에 걸렸고 그 사이사이 사람들과 조랑말들이 걸었다.

흔히 떠올렸던 ‘공원’은 빅토리아 메모리얼의 내부 구역에 있었다. 하얀 대리석으로만 지어진 그 건물은 무척이나 웅장하고 거대했는데, 건축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멀리서 까지 영국 냄새가 나는 듯 했다. 구역 내부의 잔디밭들과 연못, 수로들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잘 관리되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반듯하고 멀끔했다. 잔디밭에서는 피크닉을 나온 가족들이 돗자리를 깔고 기분 좋게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가능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총독부 건물 잔디밭에서 즐겁게 피크닉을 나누고 있는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그들의 풍경은 식민의 잔재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단편적인 인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도시에서 벗어나 잠깐의 휴식을 즐기는 모습들. 그들은 빅토리아 메모리얼을 보고 그저, 응 저것도 다 인도야, 할 것 같았다. 한 번 들어온 것들을 다 인도의 것으로 소화해버리는 인도라는 작은 세계같이.

반듯한 직선의 건물과 조경 위에 유일하게 둥근 것들은 사람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했던가, 원래 직선으로 만들어졌던 것들도 콜카타에서는 구겨져 있었다. 구겨진 과자 곽, 구겨진 깡통 캔, 구겨진 알루미늄 그릇, 부스러진 콘크리트 건물, 그 아래 위를 다니는 사람들의 구겨진 표정, 그러나 구겨진 것들은 직선 없이 더 자연스러웠다. 영국을 위한 기념건물만이 유독 정돈되어있던 게 묘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곳에도 구겨지고 구부러진 사람들의 자연스러움이 풍경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새들이 얽힌 전선의 위 아래로 자주 날았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2. 흰 색 시위대를 따라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하는데 차질이 생기면서, 콜카타에 며칠 더 머물게 되었다. 비교적 만족하고 있었던 숙소는 이미 다음 예약이 차서 숙소를 옮겨야할 상황이었다. 근방에 숙소도 많지는 않았고 그마저도 예약이 다 차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무작정 배낭을 메고 숙소 예약 어플리케이션에 떠있는 숙소들을 찾아다녔다. 밥도 못 먹고 돌아다니다가 잡은 숙소는 조금 더 슬럼화된 안 쪽 지역에 있었다. 거리가 조금 더 거칠게 느껴졌다. 염소와 닭들이 이리저리 묶여있거나 장에 갇혀있었다. 종종 피 냄새가 났다. 무슨 행사가 있는지 초록 불빛들이 연달아 이어 달려있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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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초록 불빛은 이슬람교의 상징색이라고 숙소 주인이 말해주었다. 인도에는 힌두교도들만 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흰 도화지에 물감을 뿌리면 색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다른 종교들, 이슬람, 시크, 자이나교도, 기독교도들이 더 눈에 띄기도 한다. 힌두교 외에 가장 수가 많은 것은 이슬람교도, 무슬림들이다. 인도는 인도제국 분열 이후 종교에 따라 인도-힌두교, 파키스탄-이슬람교로 분리되었으나 여전히 양국에는 힌두교도와 무슬림들이 상당수 남아있다. 예전만큼 종교 갈등이 격렬하지는 않다고 하나 지역에 따라서는 종교에 의한 차별과 폭력은 여전하다. 무슬림들의 연말연시 축제 같은 것이 이어지던 그날, 나는 무슬림들의 대규모 시위를 봤다. 하얀색 의복과 머리를 골무처럼 덮는 모자를 쓰고 그들은 도로와 인도를 행진하며 무언가를 주장하고 있었다. 폭력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저 경찰들이 어떻게든 도로를 통제하는 모습들. 한국의 시위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숙소의 뉴스에서 본 풍경은 조금 달랐다. 어떤 사람이 처형되는 모습이 약간의 모자이크 끝에 그대로 송출되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니에요, 작은 텔레비전을 같이 보던 주인은 내게 말했다.

인도의 사람들이 종교에 따라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그저 비문명이나 후진적인 일로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원래 ‘인간’의 모습에 가까운 것 같아 더 두려웠다. 인간은 원래 터무니없는 이유로 인간을 죽일 수 있다. 구겨진 도시에서 자연스러움을 느꼈지만 구겨진 사람들의 얼굴은 두려웠고,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져 다시 무서웠다.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몇몇 국가들은 멀리서 팔짱을 끼고 혀를 끌끌 찬다. 미개한 사람들, 저들은 인간도 아니야 하면서.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미 지나간 것으로 지워버리거나 우리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손 씻고 외면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인간이 같이 감당해야 할 인간의 모습이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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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테레사의 모포

숙소에서 만나 잠깐 동행했던 J의 권유로 하루 동안 마더테레사 하우스의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테레사 수녀는 콜카타에서 오랫동안 자원봉사를 하다가 콜카타에서 잠들었다. 그의 뜻을 받들어 콜카타에는 마더테레사 하우스라는 자원봉사기관이 이어져 오고 있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달, 몇 년을 자원봉사하며 지내고 있었다. 봉사에 참여하는 것은 간단하다. 새벽에 테레사 하우스로 가서, 신청을 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배정받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봉사활동을 한다. 나는 사실 봉사 활동에 큰 뜻을 지니고 살아오지는 않아서 솔직히 한 번 경험하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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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빈민복지시설 프렘단에서 빨래를 하고, 빨래를 널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이동하는 일을 돕고, 밥을 먹이거나 침대에 눕힌 후 모포를 지급하는 일이었다. 초짜 티가 나게 운동화를 신고 왔다가 대량의 손빨래를 하는 동안 양말까지 다 젖었다. 축축한 발로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도왔다. 수 십 개가 넘는 간이침대가 놓인 공간을 돌아다니며 모포를 지급했다. 블랭킷? 블랭킷? 중얼거리며.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던 모포들. 모포를 펼쳐 덮는 수많은 손들. 손 아래서 모포는 다시 구겨졌다. 그리고 다시 빨래 될 것이고, 빨랫줄 아래에 빳빳한 직선으로 마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 주어지고. 펴졌다 구겨지는 것을 반복하면서. 빽빽한 이 도시의 빳빳한 모포들은 되풀이된다. 도시에 가득한 인간의 얼굴이 되풀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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