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세속정치를 기웃거릴 때 생기는 황당무계
종교가 세속정치를 기웃거릴 때 생기는 황당무계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1.03.15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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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2월 초
2월 초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수선화 꽃대가 노랗게 물들면 겨울이 끝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안다. 아직 겨울이 한창인 1월 초순에 벌써 얼어붙은 땅을 밀고 올라온 수선화는 이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물러가던 겨울이 유턴을 해서 꽃샘추위라는 이름의 맹위를 떨친다 해도 수선화는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

때늦은 폭설이 천지를 휘감아 돌아도 꽃대를 거둬들이지 않고 계속 키를 키워서 기어이 꽃잎을 벌이고 나서는 수선화. 한없이 여리여리해 보이면서도 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꽃 수선화, 이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아무 짓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나는 어디론가 자꾸 떠나고 싶어진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디에선가, 무엇인가가 수선화 같은 꽃을 피워내고 있다는 느낌인 채로 길을 나섰다. 어디로 간다는 목적 같은 게 있을 까닭은 없다.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도 없는, 아무 데로나 시간 모르게 쏘다니다가 지쳐서 풍력발전용 바람개비가 아스라이 보이는 바닷가 소나무 둥치에 앉아 있을 때였다.

“아이고 형님. 마침 잘 만났네.”

뜬금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기는 했지만, 차창 밖으로 액자 속의 사진처럼 얼굴을 내밀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는 못했다. 내 머릿속에서 춤을 추는 어렴풋한 신기루 같은 게 있기는 했다. 하지만 딱히 누구라고 지목할 수는 없었다.

“아따 형님도 참, 나라우 나.”

“아니 긍게 나가 누구여?”

말장난 같은 말이 몇 번 더 오간 뒤에야 겨우 희미한 기억 속의 얼굴 하나를 지목해낼 수 있었다.

“아아 그, 모태신앙? 그 동생이구만, 맞지?”

감격에 겨운 한 마디가 내 입을 통과했다. 그러자 그는 즉시 태세전환 모드를 취하면서 힐문이라도 하듯이 묻는다.

“형님이 요새 우리 형 데리고 어딜 다니시는지 궁금해서, 안 그래도 한 번 찾아갈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자네 형? 만난 지도 겁나게 오래 됐는데?”

“그러지 마시고, 솔직하게 좀 말해주시오.” “정말이야. 울 엄마 치매 때문에 내가 꼼짝 못하고 집에만 있기 시작한 때부터 자네 형은 나를 찾지도 않았어. 그게 벌써 십 년도 훨 넘은 것 같은디?”

“믿어도 될까요?”

“헛 참 내.”

 

2월 말
2월 말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자기는 모태신앙이라고, 모태신앙이라는 것이 마치 세습으로 물려받은 굉장한 귀족 칭호라도 되는 듯이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사내 하나를 만난 것은 내가 도시 생활 그만두고 고창으로 내려온 지 삼 년인가, 사 년쯤 지나서였다. 누가 소개를 해서 만난 것은 아니고, 그 즈음 한창 유행하던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였으니 디지털문화가 맺어준 인연인 셈이었다.

그 어떤 소설이나 옛날이야기를 통해서도 접한 바 없는 인터넷 카페라는 거. 이것이 당시의 내게는 완전 신세계로 여겨졌다. 신세계를 발견했으니 어쩔 것인가. 이것이냐 저것이냐 깊이 따져보지도 않고 눈에 띄는 것이면 무조건 가입을 했고, 나 자신이 카페를 만들어서 운영도 하는 등 그야말로 정신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던 어느 하루 장문의 색다른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이백 자 원고지로 계산하자면 거의 백 장에 육박하는,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의 이메일을 내게 보내온 그는 나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전혀 모르는데 그 사람은 나를 훤히 꿰고 있다는 데서 오는 느낌이란 한 마디로 잘라 말해서 섬뜩했다.

이게 대체 뭔 사태인가 해서 곰곰 생각해보니 범인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때만 해도 순수라는 것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바보 같았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인터넷 카페를 드나드는 동안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씩, 흘린다는 생각도 없이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하는 식으로 흘리고 다녔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았다. 어디에 거주하고 있고, 나이는 몇 살이며, 지금까지 어디서 어떻게 살다가 지금 여기에 와 있는지, 취미는 무엇이고, 가족관계는 어떻고, 주요 관심사항은 무엇인지 등등 그야말로 숨김이 하나도 없이, 보탬도 없이 나 자신을 홀랑 벗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왜 사는가, 죽는 줄을 알면서도 살고자 하는,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게 내 관심사항이라고 어디선가 썼던 모양인데 그는 여기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만나자고 했다. 자기와 나는 반드시 만나야 할 운명이라는 거였다. 이 사람 참 맹랑하다, 생각을 그렇게 하면서도 슬그머니 일어나는 호기심은 또 어찌할 수 없었다.

만나자마자 그는 나를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다. 모신다는 표현이 조폭을 연상케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피해갈 길은 그때 이미 없었다. 악수를 해도 금방 놓지 않고 한참씩 어루만지는 등 상냥하게 집요한 언어를 구사하는 그는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찍어놓고 있었다. 왜? 그가 보기에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불쌍한 영혼이었으니까.

 

3월
3월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는 아무 때나 나를 찾아와서 이른바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설교를 하고자 했고, 아무 때나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이른바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현현하는가를 보여주고자 애를 썼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까닭에 자기는 어려서부터 가난을 모르고 살았고, 일찍이 유럽식 숙박업 아이템을 개발해서 지금은 선운사 인근을 포함한 관내 도처에 백이십 여개의 객실을 운영 중이라는 자랑을 슬쩍슬쩍 내비치기도 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그의 집은 대문에서부터 현관, 거실은 물론이고 방안 구석구석 심지어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십자가가 최소한 서른 개는 걸려 있었고, 유명한 성화 사진 액자가 도배지처럼 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십자가는 조선 시대 당시 죄인을 문초하는 형구였고, 고대 로마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도구였지 않으냐.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는 십자가를 집안에 이렇게나 많이 걸어두는 까닭은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기를 원하는 것이냐 무엇이냐 등등 시니컬한 소리가 내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그는 신통하게도 화를 내서 나를 꾸짖지는 않았다. 왜 그렇게도 집요하게 나를 전도하고자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당시의 그는 나를 전도해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수모도 치욕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게 벌써 십삼 년이나 전의 일이었다.

그가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은 것은 내 어머니가 중증치매 진단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내 상식으로 보자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떨어져 있어서도 안 되는 치매 상태의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아들이 일견 딱해 보여서 위문이라도 와줄 법도 하건만, 그와 나의 상식이 영판 달랐던 것인지 그는 거짓말처럼, 칼날처럼 발길을 싹 끊어버렸다.

십삼 년여 만에 다시 보는 그는 십삼 년여 전의 그가 아니었다. 눈빛부터가 달랐다. 번쩍번쩍 빛이 난다는 느낌인데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형형한 그런 눈빛은 아니고 뭐랄까, 눈동자가 마치 시신경을 벗어나서 구슬처럼 아무 데로나 휙휙 멋대로 돌아간다는 느낌이었다.

“야아 형님. 우리 형님이 오셨네?”

그는 나를 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와서 와락 끌어안았다. 그런 행동은 십삼 년 전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달랐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나를 완전히 기절초풍하게 하고 있었다.

“형님도 문재앙을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문재앙?”

인터넷상에서 가끔 발견하는 대통령 비하 발언을 현실세계에서 접하고 보니 어처구니가 따로 없구나 싶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아직 견딜 만했다. 감히 주사파 따위가 대통령 행세를 하면서 나라 살림을 거덜내고 있으니 우리 모두 다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등의 충고성 발언을 듣고 있자니 내 눈에서 그만 눈물이 쏙 터졌고, 입술이 푸들푸들 떨렸고, 가슴이 꽉 막혀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만개한 수선화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그는 나의 그런 반응에 잔뜩 고무된 모양이었다. 내가 자신의 발언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여겼는지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나를 가르치고 나섰다. ‘문재앙’이가 원자력발전소를 없애고자 하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 태양광발전 때문이다. 태양광발전은 세계에서 중국이 가장 앞서 있다. 중국에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칠 음모를 세워놓고 태양광발전을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음모를 알아차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주둔 비용 육백 퍼센트 인상을 요구했다. 그런데 분하게도 바이든의 부정선거로 인해 재선에 실패하고 말았다. 바이든식 부정선거는 미국에서만 적용된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었다. 지난 해 총선에서 민병욱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 대거 낙선한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다고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다. 우리 모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십자군 전쟁을 벌여야 한다, 등등 눈알이 핑핑 돌아갈 정도의 현란한 요설을 듣고 있자니 내가 그만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놈이 이거 아주 똘아이가 되고 말았구나?”

한 마디 내갈기고 벌떡 일어섰다. 그의 요설은 이미 그의 확고한 신념이 돼 있다는 느낌이었다. 인간의 언어로는 어떻게도 해볼 수 없는 그런 류의 신념은 아마 시대가 중세 암흑기라면 마녀로 몰아서 화형에 처했을 것이고, 이십세기라면 정신병동에 감금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밖으로 뛰쳐나온 내 뒤를 허둥지둥 뛰 따라 나온 그의 아내와 동생의 얘기에 따르자면 그는 삼 년 전에 다니는 교회를 바꾼 모양이었다. 새로 만난 담임목사의 영향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부터 그는 새로운 방송 시스템에 푹 빠져 들어갔다는 얘기였다. 새로운 방송이란 다름 아닌 저 유명한 유튜브 방송이었다. 그가 직접 유튜브 방송을 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송출하는 방송을 핸드폰으로 시청하는 것일 뿐이었다.

문제는 방송 시청을 직업적으로, 전투적으로, 거대한 사명감을 갖고 엄숙하게 한다는 점이었다. 망해가는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문재앙’ 같은 주사파를 척결할 목적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송을 시청하며 공부하는 것이니 시시하게 무슨 사업 같은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고, 돈 같은 것이 아까울 리도 없었다.

액수가 적은 날은 이삼십 만원이요, 많은 날은 오십 육십을 넘어 백만 원에 육박하는 돈을 슈퍼챗이란 이름으로 거의 매일 써대는 바람에 그의 숙박업은 파산 지경에 처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매출도 평년 대비 이십 퍼센트 이하로 뚝 떨어진 상황에서 돈을 그렇게 물 쓰듯이 써대고만 있으니 안 망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의연했다. 크게 믿는 데가 있으니 흔들릴 까닭도 없었다. 십자군 전쟁이 마침내 승리하는 그날, 그의 숙박업 사업은 평년 대비 천 퍼센트 아니 만 퍼센트 이상으로 성장해나갈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러므로 열심히, 부지런히, 십자군 전쟁이 요구하는 군자금을 보내야 한다는 그의 논리를 깰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어떻게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의 아내가 애처로운 눈으로, 호소하는 시선으로 나를 보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기가 막히게도 그의 아내와 동생은 나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내게 무슨 역량이 있어서가 아니라, 실오라기라도 잡아본다는 뭐 그런 심사일 터이었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새로 알았다. 작년 8월 15일 전광훈, 김문수씨 등이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을 때, 그때 전북에서도 관광버스 세 대가 올라갔다 해서 대체 어떤 사람들이 거기까지 올라갔던 것일까, 대단히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그 의문이 풀린 것이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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