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바라나시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1. 가트 위에서 그들을 만나게 된 경위

바라나시에서 내가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한 일은 갠지스 강변을 이어 놓은 계단 같은 제단, 가트를 걷는 것이었다. 수 백 미터 이어지는 가트를 통해 강변의 풍경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내가 가트를 좋아했던 것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다.

관광객이 있는 곳에 호객꾼이 있다. 마사지 한 번 해보라는 사람, 잡다한 장신구와 마그네틱을 파는 사람, 부채와 피리 등등을 들고 다니며 파는 사람. 어수룩한 여행자들은 제 값보다 훨씬 비싸게 사기 십상이다. 실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내가 호객꾼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나를 붙잡는 끈덕진 완력은 늘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무슨 영향인지 이상한 너스레가 생겨서, 호객하며 다가오는 이들에게 먼저 손 마사지를 해주며 역으로 돈을 달라고 이야기하거나 내가 가진 물건들을 비싸게 사라고 장난치며 놀았다. 하루나절 그렇게 돌아다니며 장사꾼들을 친구로 사귀어 같이 물건 파는 시늉을 하고 내게 물건 팔 생각을 버린 그들과 어떻게든 의사소통하며 노는 게 즐거웠다. 걸어 다니기만 해도 사람을 만나 장난칠 수 있는 게, 그럴 수 있는 스스로가 마냥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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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방식으로 부채를 팔고 있던 이와 친해졌다. 그를 웃기는 게 재밌어서 계속 장난을 쳤다. 아쉽게도 그는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다. 지나가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좌판의 여자에게 나를 넘겼고, 그렇게 푸나를 만났다. 푸나는 내 또래의 젊은 여자애였는데 근처 대학에 다니고 있다가 잠깐 쉬고 있다고 했다. 어제 근처 대학에 산책삼아 다녀왔을 때 학생들은 전부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푸나는 맨발이었다. 신발이 맨발이 된 건지, 신발이 되고 싶은 맨발인건지 알 수 없었지만 푸나와 함께 있는 게 즐거웠다. 그녀도 처음엔 내게 물건을 팔려고 했다. 주로 목걸이와 반지, 이마에 붙이는 장식 같은 것들, 문신과 달리 몇 주 이내에 사라지는 헤나를 싸게 하고 가라고도 하고. 그렇지만 긴 여행에 짐이 될 만한 것들을 사고 싶지 않았을 뿐 아니라, 푸나가 부르는 값이 다소 비싸다는 것도 알았다. 흥정에서 갑은 늘 여유 있게 기다리는 쪽이다. 물건의 값들은 점차 싸졌지만 내가 물건을 살 기미가 전혀 없자 푸나는 그냥 포기했다. 대신 그냥 앉아서 차나 마시고 가라고 했다.

푸나는 정말로 인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밀크티 비슷한 차, 짜이를 주전자를 들고 다니는 사람에게 사서 내게 나눠주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푸나의 좌판에 가만히 앉아 꽤 긴 시간을 보냈다. 푸나의 좌판은 나름 화장장과 밤마다 힌두 의식인 푸자가 벌어지는 메인 가트와 가까이 있었는데 한 눈에 봐도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애초에 기념품 하나 그저 맘 편히 사갈 사람들만 사가고, 그런 속편한 사람도 별로 나타나지 않아 반나절 동안 목걸이 하나나 두 개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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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늘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그 눈이 무섭지 않고 오히려 벼랑 끝에 선 사람이 억지로 찡그린 눈 같아 보였다. 나를 바라볼 때도 억센 눈을 유지했지만 전혀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지나온 여행지의 사진을 보는 걸 좋아했다. 사진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질문했고, 한국과 나의 생활에 대해 종종 되물었다. 그러다 지나가는 사람이 오면 목청껏 불러 세워 봐도 되돌아보는 사람은 없고 푸나는 잔뜩 억울하고 분한 눈으로 씩씩거렸는데, 그럴 때면 그녀의 눈에서 무척 여린 살갗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제 숙소로 가야한다고, 다음에 오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안 맞아 2일 후에 푸나에게 갔을 때, 왜 어제 오지 않았냐고 화를 냈다. 내일 온다고 했으면서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고. 너 계속 기다렸다고 씩씩거렸다. 그런 약속을 한 적 없는데도 기다렸을 생각에 괜히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거푸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바라나시에서 푸나의 좌판에 거의 매일 들렸다. 그녀가 화장실에 가거나 집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다녀올 때면 내가 잠깐 좌판을 지켰다. 웬 동양인이 좌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선선히 부르고 있으니, 지나다니는 외국인 여행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물론 가격을 제대로 몰라 팔 순 없었다. 적어도 사람은 꽤 많이 모았다. 현지의 호객꾼들도 몇 번 말을 걸다 갔다. 그 틈새에 라비가 있었다. 부채와 피리를 팔기 위해 잔뜩 묶어 들고 다니는 10살짜리 남자 아이. 붙임성 좋은 그 애는 내가 신기했는지 다가와 서툰 영어로 이것저것을 물어보려다 대화가 잘 되지 않아 그냥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푸나와 라비가 서로 일면식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오다가다 얼굴 좀 본 사이 같았고 돌아온 푸나는 라비에 대해선 별 생각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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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쯤 되자 푸나가 자신이 자주 가곤 했던 피자집 이야기를 했다. 정말 자주 가고, 좋아하던 곳이었는데, 일 때문에 통 가지를 못한다고, 아 거기 피자 잘한다고, 너무 맛있다고. 사다 달라는 부탁은 안하고 눈을 부릅뜬 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웃겼다. 마침 나도 저녁 먹을 시간이라고, 맛있다니까 한 번 가보겠다고, 네 것도 좀 사다주겠다고 말하자 푸나는 나를 본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웃었다. 물건은 못 팔았지만 피자는 얻어먹어서 그랬을까. 그냥 그녀가 웃어서 나도 좋았다. 음식점 가는 길에 갑자기 라비가 길 안내를 해주겠다고 자기 장사는 안하고 이끌어 갔다. 돈을 달라고 하려나? 달라고 하면 얼마간 주어야지 생각했다. 예상과 다르게, 라비는 나를 음식점 앞에 데려다 놓고 아주 잠깐 멈칫거린 후 이만 간다고 뒤돌아섰다.

라비는 밥을 잘 먹었다. 그날 마침 피자가 안 된다고 해서, 우리 둘은 비리야니라는 볶음밥과 닮은 밥을 시키고, 푸나를 위해서는 치즈버거를 포장했다. 무엇보다 무거운 부채를 들고 열심히 움직이는 작은 몸이 밥을 맛있게 먹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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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의 메인 가트에서는 힌두교 의식인 푸자가 한창이었다. 사제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제단 위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제단 위에서 연기가 나오는 램프 같은 것을 휘적거린다. 수 백 명이 제단의 뒤에서, 수 백 명이 보트를 타고 강가에서 제의를 본다. 힌두교 성지 중의 성지인 바라나시. 일 년 내내 시신을 불태우기 위한 목재를 쌓아 놓는 바라나시. 내가 본 의식은 분명 이국적이고 기묘한 향취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오래 전 마을 축제에서 느꼈던, 유원지에서 느꼈을 법한 마음을 느꼈다. 무언지는 몰라도 염원하는 기분. 근하신년 입춘대길, 이런 기분. 이 강가에 재가 되어 흐르면 영혼을 정화 받을 수 있다는 이들의 믿음이 남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아주 인간적인 믿음 중의 하나다.

라비와 푸자 의식을 함께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라비가 들고 있던 피리를 두 개 사려고 했다. 팔리나 싶었던 피리가 팔리는 걸 보고, 사니까 팔고는 있겠지 싶던 차에 라비가 갑자기 기념품 상인에게 어떤 메달을 받아왔다. 그리곤 피리 두 개를 사려는 사람에게 기념품 상인에게 돈을 주라고 했다. 라비는 그 메달을 나에게 주었다. 라비, 선물, 이곳, 이라 말하면서. 푸나는 피자가 아니라고 조금 툴툴거렸긴 해도 치즈버거를 잘 먹었다. 다음엔 피자를 사오라고 했으나 다음날은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이었다. 우리는 싱겁게 헤어졌다. 어 잘 가라, 어 잘 있어라, 하면서. 라비도 안녕, 웃으며 인사했다.

바라나시는 내게 장례를 반복하는 화장장도, 성스러운 동시에 더러운 갠지스도, 다양한 여행객들이 모여 눌러 앉아 즐거운 일을 해보는 곳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바라나시는 내게 그저 죽음이 삶의 일부가 된, 삶이 죽음의 일부가 된 지 오래된 인간의 얼굴에 가까웠을 낡고 축축하고 편안한 거리와, 강변 옆을 이은 긴 광장 같았던 가트와 그곳에서 만나 한담을 나누었던 푸나와 라비의 얼굴로 기억되고 있다. 그 얼굴을 기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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