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2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위클리서울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위클리서울

- 교육부터 고쳐야 훗날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안창호 선생이 강조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그런 세상이 한국사회에서도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물론 가능하다. 일반시민이 생각을 바꾸고 욕망을 바꾸고 행태를 바꾸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개인의 생각과 욕망, 행태는 한 사회의 구조와 법제, 의식의 변수이기 때문에 결국 정치와 교육이 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어디서나 중단기적으로는 정치의 힘이고 중장기적으로는 교육의 힘이다. 콩 심어놓고 팥 수확을 기대할 수 없듯이 권위주의, 능력주의, 엘리트주의 교육을 하면서 계급단층을 넘어설 힘찬 민주주의를 기대하긴 어렵다.

 

- 그동안 교육감이 바뀌든 대통령이 바뀌든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어 보이는 게 현실이다. 어떤 생각이 드나. 대다수 국민들이 패배주의에 빠져있을 수 있다.

▲ 그럴 것까지는 없다. 오랜 적폐의 잔재도 끈질기게 남아있지만 밝은 미래의 조짐도 구석구석에 이미 와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10년 남짓 진보교육감시대가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다고 보는 건 너무나 근본주의적 관점이라고 본다. 다만 문재인 정권이 지난4년 동안 진보교육감들과 합심해서 아무런 괄목할만한 개혁성과를 못 만들어낸 건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정권출범 직후부터 촛불혁명의 기세를 몰아 진보교육감들과 협력아래 교육 분야에서 대대적인 공론화의 장을 전국적으로 열었어야했다. 마침 3.1혁명 100주년과 새로운 백년을 앞두고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점이었다. 그렇게 해서 중장기적 교육개혁의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수준을 대폭 높여놨어야 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공론화의 장을 고작 대입 정시비율을 정하는 데 1회 동원했을 뿐이다. 게다가 내용적으로는 미시적 공정담론에 밀려 정시비중을 높임으로써 고교교육정상화에 역행하는 결과까지 빚었다. 코로나 대응에 집중한 지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교육부는 비상시기라는 점을 내세워 일방적인 중앙관료행정을 강화했다. 진보교육감들도 재선, 3선으로 갈수록 교사와 학부모, 학생 참여를 강화하는 대신 전통적인 관료행정시스템 의존도가 강화됐다.

 

- 서울시교육감 시절 초중고 교육을 관장했었다. 당시 어떤 마음가짐으로 진두지휘했었나.

▲ 제가 보기에 학교는 훈육과 통제, 비교와 경쟁, 서열화와 선발을 통해 권위주의, 능력주의, 엘리트주의의 산실로 기능하고 있었다. 저는 학교를 민주주의의 산실로 변화시키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학교교육의 역할은 모든 아이를 사회적 삶의 주인의식과 책임감, 형제애를 체득한 민주시민으로 길러내는 데 있다고 봤다. 저는 학교효과로 동네효과를 이기고 교사효과로 부모효과를 이기기를, 그리해서 교육효과로 계급효과를 이기기를 꿈꿨다. 저의 모든 교육정책은 여기에 맞춰져있었다. 재임기간이 짧아서 대부분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그리로 가는 듬성듬성한 징검다리를 삐뚤빼뚤하게나마 놓았다고 생각한다.

 

- 학벌타파, 대학평준화, 한국사회에서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하는지.

▲ 고졸로는 아직도 살기가 어렵다. 대졸이 아직도 학벌이란 뜻이다. 그 중에서도 SKY가 학벌사회의 최정점에 위치한다. 각종 대학평가를 보면 SKY 체제도 이미 무너지고 있다. 대학순위가 바뀌고 있는데 과거에 형성된 대중정서가 따라주질 못한다. 실은 대학평준화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대학시설이나 교수의 질에서 그렇다. 학생의 지적, 학문적 수준 차이는 제법 난다. 일부 상위권 대학이 성적우수학생을 싹쓸이해가기 때문이다. 대졸학벌과 SKY학벌을 해소하고 대학평준화를 빠르게 진행하려면 세 가지가 필수적이다. 첫째, 특성화고의 질을 마이스터고 수준으로 높여야한다. 둘째, 초중고의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 셋째, 수능은 지금의 9등급제를 5등급 이내로 바꿔야 한다. 첫째 요건은 생애임금격차를 줄임으로써 쓸데없는 대학진학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 둘째 요건은 학생들을 내신경쟁의 중압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학문과 진로 탐색을 하게 하는 데 필요하다. 셋째 요건은 학생들의 1점 차이 피 말리는 과잉경쟁을 없애고 학생성적기준 대학서열화를 완화하는 데 필요하다.

 

- 지방 대학들은 국공립 사립을 막론하고 미달인원 충족 문제로 고민 중이다. 서울 경기 지역도 시간문제일 것 같다.

▲ 교수나 강사의 질이 형편없거나 시설이 엉망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학이 폐쇄되거나 축소되는 건 사회의 지적, 도덕적, 산업적 기반이 폐쇄, 축소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저출생 시대로 말미암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대학교육 수요가 급감해온 탓에 지방대학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희망적 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식사회가 고도화함에 따라 대학교육과 고등교육, 전문교육에 대한 평생교육적, 경제사회적 잠재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제도적으로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아서 현실화되지 못하지만 지방대학의 소멸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의 잠재수요를 현실화할 수요확대 방안을 핵심에 놓고 사고해야 한다.

 

- 이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 먼저 대학은 평생 한번만 가서 졸업장만 따면 된다는 생각부터 극복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고도의 지력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관념이다. 대학졸업장 하나로 취업과 전업이 척척 이뤄지던 시대는 벌써 끝났다. 전통적 학위과정이 아니더라도 일정한 수준의 고등교육이나 전문교육 과정을 이수하지 않고는 고용유지나 전업이 불가능한 시대다. 이제부터 대학은 평생 한번만 가는 곳이 아니라 최소한 두세 번씩 가는 곳이자 학위증서가 아니라 전문프로그램 이수증을 취득하러 가는 곳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실은 줌회의 등으로 온라인교육기반이 더 강화됐기 때문에 오프라인 중심사고도 극복해야 한다. 향후 대학교육의 평생교육화와 산학협력화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혼합형으로 진행될 게 틀림없다. 요컨대, 대학입학 연령대가 장노년층까지 다양해져야 하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학문호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평생 개방되어야 한다. 15학점 안팎으로 비학위 전문프로그램을 많이 개설해서 지식사회 공사부문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서 지방대학을 지역의 지적, 도덕적, 산업적 기반으로 활성화하며 지역주민들이 대학의 지역사회 공헌을 체감하도록 지방대학이 변화해야 한다. 이렇게 지방대학의 수요와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필요한 시점에 대학교육이나 전문프로그램을 이수해 전문역량과 지력을 높이는 것을 지식사회의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공적 행위로 보고 국가와 기업이 적극 지원하는 법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 갑자기 많은 대학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전국에 대학이 많은 게 사실이다. 대학을 가지 않고 재능을 살려야 하는 학습이 필요할 것 같다. 대학을 가도, 안 가도 문제, 이런 게 대다수 학부모와 청소년들의 고민이다.

▲ 문제는 학생들이 대학을 가냐 마냐가 아니고 적성과 진로를 모른다는 데 있다. 아이들이 꿈과 적성을 찾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대학교육은 생애 아무 때나 최소한 한번은 받아보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필요를 느껴서 가야 효과적이다. 고등교육의 기회는 필요를 느끼는 시민에게는 평생 주어져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평생교육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 이런 문제를 논의하다보면 결국 유럽 선진사회처럼 재능 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온다. 어려운 질문이지만, 우리사회가 꼭 대학을 안 가도 진급이나 우대에 있어 ‘차별 없는 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자면.

▲ 이미 구글이나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업은 대학졸업장을 요구하지 않고 역량과 태도, 가치관을 본다. 대학졸업장은 더 이상 일반적인 지적 역량의 보증자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이 문제는 대졸과 고졸사이의 생애임금격차를 어떻게 줄일지가 관건이다. 최저임금수준이나 단체협약 적용율과도 연관이 깊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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