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3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위클리서울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위클리서울

- 현재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정책을 조심스럽게 평가하자면.

▲ 조희연표 정책방향이나 정책실험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고 응원하는 편이다. 실험적으로 해보는 건 많은 편인데 보편화, 전면화에 이르는 건 드물지 않나 싶다. 이것저것 좋다는 걸 조금씩 해보는 방식으로는 어디서나 느껴지는 진짜 변화가 일어나질 않는다. 과감한 선택과 집중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체감하는 핵심정책을 밀고 나가서 교육의 주요지표에서 측정 가능한 진보를 이뤄내기를 기대한다. 내용적으로는 학교급별 교육과정에 대한 정책, 특히 국영수사과 등 개별 교과목 정책이 안 보이는 게 아쉽다.

 

- 서울시교육감이 되고 난 뒤 선거 과정 관련 문제로 불쾌한 문제에 휩쓸렸었다. 한쪽에서는 당시 곽 교육감을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옹호까지는 아니어도 이해가는 대목이 있다고 했었다.

▲ 재판과정에서 판사한테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때 저는 ‘내게 조금도 파렴치한 동기나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내 상황에서 나와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저는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형사처벌이 정당화되려면 반드시 파렴치한 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판결도 제가 어떤 파렴치한 행동을 했는지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파렴치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저는 저를 형사처벌로 이끈 1,2,3심의 ‘사후매수죄’ 해석법리에 조금도 동의하거나 수긍하지 않는다. 그 판결은 제게 국가폭력일 뿐이다.

 

- 징검다리가 표방하는 것처럼 교육은 비단 유년, 청소년들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도 많을 것 같다.

▲ 어른이 되면 성격도 굳어지고 습관도 안 바뀐다. 행동도 가치와 대의보다 편리와 안락에 따라 선택하기 쉽다. 사고의 경직성이 가장 큰 문제다. 주관적이고 제한적인 과거경험에 바탕을 두고 꼰대의식이 발달하기 쉽다.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기보다 지금의 성품과 형편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든지 공부하고 깨어있어야 어른노릇을 한다. 닫혀있고 경직된 사고와 태도로는 누구의 어른도 되지 못한다. 평생학습시대에서 어른노릇을 하려면 평생 배움의 길을 가야 한다. 배움은 사람을 사소한 존재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는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다. 가장 인간적인 일의 하나이기도 하다. 배움에 끝이 없듯이 배움의 즐거움에도 끝이 없다. 어른의 지표는 자주성, 책임감과 함께 힘껏 배우는 사람이다.

 

- 앞서 언급했듯, 국가가 바뀌려면 교육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여전히 정부정책상 교육에 대한 투자가 미비해 보인다.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교육은 복잡계이고 전문영역이다. 입법, 정책, 예산, 행정 모두 고도의 전문성에 기초해야 한다. 교육예산은 국방예산의 2배에 달하고 복지예산 다음으로 많다. 영향력이 크고 오래 간다. 과거에는 3세대 100년을 간다고 봤지만 짧게 잡아도 30년은 간다. 고도의 책임감이 필요한 분야다. 그런데 정치권에는 교육전문가가 1,2인 빼고는 안 보인다. 21대 국회의원 중 교육상임위에서 활동하는 교사출신은 1인밖에 없다. 시도교육감을 통제하는 시도의회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건 시도의원이건 본인이 교육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교육문제에 접근할 때 신중해야 한다. 즉흥적인 땜질처방을 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교육전문가인 유초중고 교사출신을 우대해야 한다. 주요정당은 국회, 광역의회, 지방의회에 교사출신에 비례대표의석을 우선 할당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교사집단에 대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투표권 외에는 어떤 정치기본권도 주고 있지 않다. 교사정치기본권 박탈법제를 바꿀 때까지 정치권은 교사집단에 대한 기본권박탈 보상조치로라도 비례대표의석을 줘서 교육전문가의 의회진출을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만 교육입법, 교육예산, 교육행정감독에 교육전문성이 반영될 수 있다. 국회와 지방의회의 교육상임위가 지금처럼 교육전문가 출신이 아닌 의원으로 채워지는 현상은 교육의 전문성이라는 헌법요청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 교육문제가 잘 해결되고, 선진국에 진입해 사회가 잘 운영되고 있는 국가들을 예로 들자면.

▲ 독일, 스웨덴, 핀란드가 그런 나라들인 것 같다. 이런 나라들은 교원의 직무활동과 직무시간, 직무장소 바깥에선 정치기본권을 100% 보장한다. 중앙의회와 지방의회에 교사출신 의원이 10%는 기본이다. 그러나 어떤 나라건 몇 년 방심하면 문제가 다시 생긴다. 선진국이 저절로 되지도 않지만 저절로 유지되는 건 더욱 아니다. 집단지성과 집단의지를 발휘해서 자국의 문제를 주체적, 창의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부단한 과정이 필수적이다.

 

- 징검다리의 최종 목표는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 징검다리는 작은 조직이다. 그렇다고 꿈까지 작을 이유는 없다. 징검다리의 최종비전은 금권주의와 능력주의, 엘리트주의에 방전된 허약하고 활력 없는 민주주의를 높은 민주시민성으로 충전해서 신명나고 춤추는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 비전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뿐 완성태가 없다.

 

- 시민사회에서 목표를 이루기엔 늘 한계가 있어왔다. 정치권에서 콜은 없는지. 곽 이사장이 끝까지 추구하고 밀고나가고자 하는 목표를 묻고 싶다.

▲ 시민사회에서도 얼마든지 공동선과 공익을 추구할 수 있다. 물론 입법권과 행정력, 공적자금으로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추구하는 변화가 아주 더디고 몹시 제한적인 건 사실이다. 그런 한계가 가끔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공직에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반면 공직이 없어도 할 수 없는 일이 거의 없다’며 저를 북돋아주시던 백기완 선생의 말씀을 떠올리며 힘을 낸다. 물론 시민단체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도 작지 않다. 몇 시민단체를 통해서 아직도 배우며 기여할 수 있어서 늘 감사한 마음이다. 저는 경제적 기회가 골고루 주어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누적, 심화되지 않고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를 꿈꿔왔다. 자본주의경제에서는 토지와 주식의 소유가 다수에게 분산될수록,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작을수록 좋은 사회가 된다. 이럴수록 개개인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증진된다. 저는 우리나라가 경제민주주의와 사회경제권 보장에서 측정 가능한 진보를 지속적으로 이뤄내서 내 손녀딸이 성인이 됐을 때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 당연히 학교교육은 모두를 위한 최상의 민주주의와 실질적 평등, 인권존중의 체험학습 터로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학교만 가면 개성과 다양성, 창조성을 존중받고 우정과 환대, 응원을 경험하며 지적 호기심과 도덕적 용기, 사회적 책임감을 키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누구나에게 최상의 공교육을 제공하려면 과감하게 개인맞춤형 교육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연히 개인당 교육비용이 제법 늘어나겠지만 그걸 쓰지 않은 탓에 평생 누적될 개개인의 낙후비용과 상처비용, 일탈비용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바람직한 교육비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 및 그 실현에 필요한 교육투자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누구나가 꿈꾸는 21세기 민주주의 교육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저는 그 길에 하나의 밀알이 되는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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