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만들어낸 모노톤의 미학 - ‘블랙 앤 그레이’ 타투이스트 제선
'상처'가 만들어낸 모노톤의 미학 - ‘블랙 앤 그레이’ 타투이스트 제선
  • 우정호 기자
  • 승인 2021.04.01 11:35
  • 댓글 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Focus] ‘Jehs Tatoo' 타투이스트 제선(jehsun) 인터뷰-1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세상에 ‘아름다운 상처’라는 게 있을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본 열두 제자들이라도 그 ‘성흔’들을 보고 아름답다고는 차마 못했을 거다. 가리옷 유다라면 더더욱 그랬을 테고.
문신, 타투(Tattoo). 바늘로 찔러 피부에 상처를 낸 뒤 잉크를 흘려 넣어 피부에 그림이나 무늬, 글씨를 새기는 이 행위를 두고 인류는 ‘아름다운 상처’라는 상투적 표현을 수억 번은 썼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타투가 등장한 기원 전 2000년 전 부터.
하지만 유사 이래, 타투가 상투적인 것으로 치부되던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행위는 여전히 소수들이 향유하는 문화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마젤란이 처음 브라질 땅을 밟던 대항해시대 때만큼은 아니다.
2020년대에 접어든 현재, TV나 인터넷 등 각종 매체에 나오는 사람들의 몸에서 타투를 찾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게 됐고, 몸에 무언가를 새겨 넣는 행위를 ‘패션’으로 받아들이는 인구들 역시 늘었다. 그와 더불어, 타투를 새겨 넣는 타투이스트들의 세계도 목성만큼은 아니지만 화성만큼은 커졌다. 아름다운, 세밀한, 구상적인, 모노톤의 상처를 창조하는 타투이스트 제선(jehsun)을 3월 어느 날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타투이스트 제선 ⓒ위클리서울/ 제선 제공 @jehsun
타투이스트 제선 ⓒ위클리서울/ 제선 제공 @jehsun

구상적이고 추상적인 타투 장르 ‘블랙 앤 그레이’ 

‘타투’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 온도차는 저마다 다르다. ‘타투가 몸에 있느냐 없느냐’, ‘타투가 어디에 있는가’, ‘타투가 얼마나 많은가’, ‘어떤 타투를 했는가’ 등등... 타인의 인생을 자기인생 보다 세배 더 걱정하는 인류애 넘치는 일부 시각에선, ‘으이구 쯧쯧...’과 같은 감탄사를 내뱉기도 한다.  
 
‘어떤 타투를 했는가’의 시각으로 타투를 바라본다면, 좀 더 시야가 풍부해진다. 피부에 글씨나 문구를 새기는 ‘레터링(lettering)’, 대항해시대 뱃사람들이 ‘나는 신이나 바다의 가호를 받는다’며 새겼던 3색 컬러 위주의 ‘올드 스쿨(old school)’, 올드 스쿨보다는 좀 더 섬세하고 다채로운 색상과 디자인을 표현하는 '뉴 스쿨(New school)'과 같은 타투 스타일을 알아볼 수 있겠다.

또, 일본의 대표적 스타일로 동양화스러운 디자인의 ‘이레즈미’, 히스패닉 계열에 인기 있는 치카노(Chicano), 얇은 선으로 이뤄지는 라인 워크(line work) 같은 스타일의 타투를 구분해볼 수도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장르의 타투들이 존재하지만, 검은색 염료만 사용해 회색 음영을 나타내는 흑백 작업인 ‘블랙 & 그레이(black and grey)’는 피부에 연필로 소묘해 놓은듯한 독특함과 세밀함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올해의 컬러 ‘일루미네이팅’에 가까운 활기찬 옐로우 후디를 입고 나타난 ‘흑백’ 아티스트 제선은 자신을 “블랙&그레이에서도 'Realistic Base'(사실적 표현 기반) 작업을 주로 하는 타투이스트”라고 소개했다. 힙합 아티스트 같은 분위기 마저 풍기는 그는, “이 장르는 사실적 표현을 기반으로 하지만 초점이 ‘사실적인 것’ 만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디테일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들어가더라도 전체적으로는 그걸 넘어선 다른 느낌을 낼 수도 있는 복합적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추상과 구상이 공존하는 예술. 국내를 넘어 독일, 네덜란드, 캐나다, 호주를 누비며 작업해온 그를 두고 ‘블랙 앤 그레이’를 몸에 새긴 손님들이 지구 곳곳에서 제선만의 색깔을 칭송한다. 
지난 2019년, 독일에서 열린 ‘Cloppenburg and Kleve Tattoo Convention’에서 ‘Best of Black and grey' 상을 수상한 제선에게 이 점을 언급하자, 제선은 “내 입으로 칭찬받은 얘길 할 수가 있나”하며 웃었다.   
 
최근 작업에 관해 얘기를 슬쩍 돌리자 그는 눈을 반짝였다. “최근에는 'Micro realism'이라고, 작은 사이즈의 도안 안에 매우 정교하게 그려야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타투를 받은 손님들이 ‘굉장히 디테일 하다’, ‘진짜 같다’, ‘당신만의 색깔과 느낌이 있다’며 말해주기도 한다. 손님들이 먼저 내 도안을 찾아보고 가져와서 ‘이런 느낌으로 해 달라’고 할 때는 내 스타일이 제대로 전해진 것 같아 좋다.” 

‘부풀려지는 것’, ‘사실과 다른 것’, ‘진짜’가 아닌 것들을 경계하는 그에게 ‘만족’이라는 단어는 가까이 있지 않다는 걸 안다. 집요한 질문으로 그의 입에서 외부의 반응과 칭찬을 말하도록 한 데에는, 그가 더 스스로의 가치를 알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였을까.

 

ⓒ위클리서울 /제선 제공 @jehsun
ⓒ위클리서울 /제선 제공 @jehsun

“타투는 그림이다. 종이와 피부, 어디에 그리느냐의 차이가 있을을 뿐.”

강남구 개포동 출신으로 중학생 때 해외로 일찍 유학을 떠난 그가 타투를 접하게 된 건 그리 특이한 케이스도 아니었다. 제선은 “사춘기를 호주에서 지내면서 문신이나 피어싱을 접하는 빈도가 한국에서보다 많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접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를 몸에 새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 당장 타투를 받을 수는 없었다”던 그가 타투를 처음 몸에 새긴 건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라고 했다. 대단한 역설이다. ‘보수’와 ‘군대’라는 두 단어 중 더욱 보수적인 쪽은 후자가 아닐까. 

“타투를 처음 받으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2010년 쯤 시작하게 됐고 대부분의 타투이스트들이 그랬듯 도제식 시스템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덜 가르쳐주고 욕먹는 그런 힘든 시스템이었지만, 그런 생각보다는 굉장한 집중력을 요한다는 점, 할수록 어렵고 진지한 일이라는 것, 사람 몸에 새기는 거니 실수라도 하면 큰일 난다는 점이 오히려 더욱 매력을 느끼게 했다.”  
 
제선이 여러 타투 장르 중에서도 특히 세밀한 묘사가 필요한 'Realistic Base'(사실적 표현 기반 작업)를 택한 배경에는 ‘미’에 대한 궁극적 탐구와 호기심이 주효했다.

그는 “내가 타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의미 부여보다도 ‘시각적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타투는 확실히 패션과 비슷한 데가 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멋있거나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것처럼, 문신도 종류에 따라 그렇다. 블랙 앤 그레이라는 장르를 하게 된 계기는 고퀄리티의 브랜드 옷을 만들고 싶은 것, 혹은 사실적인 묘사가 담긴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과 비슷한 이유일 거다.” 

그의 탐미주의는 타투를 넘어선 것이 분명했다. “이 장르의 작업을 더 잘하고 싶어지면서 그림 그리는 테크닉도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화실을 다니면서 그림을 배운 적도 있고. 처음 문신을 배웠을 때는 그림이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언젠가 그림을 제대로 배워서 내 타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나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쳐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음계를 그리는 게 익숙한 사람들은 확실히 음악을 만들거나 이해하는데 용이하다. 그렇다면 잘 그리는 사람들은 실제로 타투 작업에 용이할까?  

제선은 대답했다. “타투 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캔버스에 연필이나 펜으로 그리는 것도, 피부에 머신으로 침으로 그리는 것도 둘 다 그리는 행위인데, 타투는 그리는 스킬을 익힐 필요 없고 회화에만 그게 적용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확실히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의 타투 작업을 보면 티가 나기도 하고.”

 

ⓒ위클리서울/ 제선 제공 @jehsun
ⓒ위클리서울/ 제선 제공 @jehsun
ⓒ위클리서울/ 제선 제공 @jehsun
ⓒ위클리서울/ 제선 제공 @jehsun

‘내 몸에 타투를 새긴다’는 가정

주위에서 타투를 한 사람들을 넘치게 봐왔다. 타투가 팔뚝에 있는 사람, 귀 뒤 쪽에 있는 사람, 목에 한 사람, 팔과 다리에 한 사람, 등 전체에 한 사람, 손목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한 사람, 얼굴에 한 사람... 하지만 ‘내가 타투를 받는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렇게 가정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도대체 저게 참을 수 있는 고통인가?’였다.

제선은 “물론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람은 솔직히 거짓말이다. 예를 들어 옆구리 같은 데는 솔직히 아프고. 사람에 따라 다르고, 부위에 따라 고통이 다르지만 그렇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처음 타투를 받을 때 어떤 부위를 선호할까? 제선은 “보통은 옷을 입었을 때 오픈되지 않는 곳에서 시작해 타투가 점점 늘곤 한다. 노출되는 부위를 개의치 않는다면 보통 팔 부분이 가장 이쁘게 보인다고 생각해 추천을 하는데, 팔은 굴곡이 적은 부위기 때문에 덜 왜곡되기 때문이다”하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림을 그릴 때 캔버스에 그리느냐, 스케치 북에 그리느냐, 또는 다른 질감에 그리느냐가 전부 다르듯 피부도 재질이 다르지 않나?’하고 묻자, 제선은 “피부에 따라, 부위에 따라 작업방식의 차이가 분명 있기는 하다”고 대답했다.

“피부 질에 따라 스킬을 다르게 적용한다. 얼마나 바늘을 더 깊게 넣고 얼마나 더 압박을 가하거나 덜하거나 얼마만큼 온도를 쓰거나 등이 다르다. 속도나 톤도 전부 조절해야 하고. 까다로운 부위는 ‘많이 늘어나는 곳’이다. 하복부라던가.”

“작업할 때 ‘스트레칭’이라고 해서 한손으로 피부를 쭉 늘려 펴고 반대 쪽 손으로 그린다. 팔 같은 부위는 텐션이 있기 때문에 크게 당길 필요 없지만 뱃살은 늘어나니까 최대한 피부를 당겨줘야 한다. 텐션을 잘 주느냐에 따라 얼마만큼 색이 잘 입혀지고 라인이 잘 가느냐가 정해진다. 작업하는 입장에선 배나 옆구리 같은 데가 까다롭다. 계속 숨을 쉬기 때문에 피부도 움직이고.” <2회로 이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코알라 2021-04-14 13:34:25
솔직한 인터뷰 멋지네요. 응원합니다

문리 2021-04-14 13:30:27
항상 내몸에 지닐 수 있는 예술품.
응원 합니다.

FERBEAN 2021-04-14 12:20:05
멋진 타투 감사드려요!!!
잘 안지워지고 오래가네요!!

민희 2021-04-13 22:34:44
와우~ 완전 멋져요^^

용킴 2021-04-13 22:14:17
문신과 타투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다르듯, 타투는 확실히 새로운 문화인듯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