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에 코를 박고 엎드려보라
황토에 코를 박고 엎드려보라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1.04.02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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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단내가 풍기는 황토
단내가 풍기는 황토 만개한 수선화 ⓒ위클리서울/ 김수복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고창의 황토는 파스텔 톤이다. 멀리서 보면 그냥 달려가서 뒹굴어보고 싶어진다. 가까이 달려가서 보면 코를 박고 달팍 엎드리고 싶어진다. 두 손 가득 황토를 담아서 얼굴에 대고 문질러 보고도 싶어지고, 으적으적 깨물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실제로도 봄날의 황토는 향기가 좋다. 단맛도 느껴진다.

고창의 황토에 반해서 서울 살림을 정리하기로 결심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황토 같은 것 하나도 좋지 않다고 반대했다. 남자는 결국 별거를 선택했고, 자기 몫의 예금통장으로 황토밭을 빌려 복분자를 심었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는 게 특징이 복분자는 일 년 동안 자신의 몸을 키우고, 이 년째부터 열매를 맺는 식물이다. 남자가 심은 복분자는 일 년 동안 실제로 열심히 무성하게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작년 겨울 강추위가 몰아쳐 왔다. 근래에 보기 드문 강추위로 저수지가 얼어붙고, 논과 밭과 산도 얼어붙고,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는 것이 특징인 복분자 또한 얼어붙고 말았다.

남자는 절망했다. 가지고 온 돈도 다 써버렸는데 어쩌란 말이냐. 그렇다고 죽어버린 복분자 나무를 끌어안고 눈물이나 흘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복분자 나무는 이제 꼴도 보기 싫었다.

 

토끼밥을 뜯는 사람들
토끼밥을 뜯는 사람들 만개한 수선화 ⓒ위클리서울/ 김수복

여러 사람이 남자에게 조언을 했다. 수박 농사를 지어라. 고추 농사를 지어라, 땅콩을 심어라. 양파를 심어라. 등등 온갖 작물이 거론되었다. 남자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상태로 일단 트랙터를 빌려다가 복분자 밭을 갈아엎었다. 갈아엎어놓고 보니 색깔이 너무 아름다워서 남자는 일손을 멈추고 엎드렸다. 코를 킁킁거리며 황토에 엎드린 채로 심호흡을 하던 남자는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남자가 나에게 전화를 해 왔다. 자기가 황토에 코를 박고 엉엉 울었는데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고, 해석을 좀 해 달라는 거였다. 실패한 복분자 농사가 슬퍼서 운 것인지, 황토가 뿜어내는 향기가 너무 좋아서 울었는지, 생각을 하고 또 해 봐도 모르겠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그만 웃어대고 말았다. 그리고 말했다.

“초보 농사꾼이 처음부터 성공해버리면 건방져서 못 쓰는 거야. 그러니 일단은 그냥 웃어. 웃으면 좋잖아.”

다음 날 그가 갈아엎은 황토밭을 가 보았다. 심호흡이 절로 나왔다. 황토가 품고 있는 각종 성분들이 내 안으로 속속 들어온다는 느낌이었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좌우를 둘러보던 중에 문득 알았다. 그 남자의 복분자 농사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한눈에 보였다.

밭두렁 여기저기에 검은 부직포가 쌓여 있었다. 부직포는 가벼운 캐시미론 이불 구실은 할 수 있어도 두툼하게 따뜻한 솜이불은 될 수가 없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는 복분자는 겨울 한철 따뜻하게 두툼한 솜이불을 필요로 하는 식물이다. 날렵한 석유화학 제품으로 만든 부직포가 아니라 열을 많이 내는 짚을 덮어줘야 하는 것이다.

 

두릅 밭에서
두릅 밭에서 만개한 수선화 ⓒ위클리서울/ 김수복

남자는 아마 부직포도 짚 못지않게 소기의 역할을 담당해주리라 믿었을 것이다. 부직포 한 장으로 여름날의 무성한 잡초도 잡고, 겨울날의 한파도 막는다는 두 가지 효과를 노렸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 겨울날이 따뜻하게 부드러웠다면 남자의 예상대로 됐겠지만, 작년 겨울의 한파는 전에 없이 매서웠다. 어쩔 것인가. 공부 한 번 잘했다고 여겨야지. 농사는 작물의 입장에서 선택과 판단을 해야지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필패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를 그도 이제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어쨌든 봄이다. 흙냄새가 좋은 봄이다. 봄날에 흙이 단내를 풍기는 까닭은 뭔가를 하고 싶다는, 해야 한다는 할 준비를 다 끝냈다는 신호로 파악된다. 냉이는 벌써 전에 꽃을 피워냈고, 이런 꽃 저런 꽃 그야말로 온갖 꽃들이 마구 피어난다. 마늘밭에 마늘은 쑥쑥 키를 키우고, 양파는 양파대로 마치 공기라도 주입해 놓은 것처럼 팽팽해졌다. 그러고 보니 금년 봄에는 비도 적당하게 자주 내려준다. 해마다 이맘때면 여기저기서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모터 소리가 귀를 따갑게 했었는데 금년에는 조용하다. 조용하니 보이는 것도 많고, 들리는 새소리. 사람 소리도 많다.

“아내의 아들인 것이 머이까?”

“아내의 딸은 또 머이고?”

두릅 밭에서 두릅나무의 상태를 살피던 사람들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투의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향이 베트남인 까닭에 한국어는 아직 어눌하고, 어눌하기에 듣는 사람의 귀는 즐겁다. 베트남 국적의 여자가 한국인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도, 베트남 국적의 남자가 한국인 여자와 결혼을 하는 경우는 잘 없지만, 그 어려운 결혼을 성사해낸 사람들이었다.

남자가 불법체류 신분으로 농장 일을 하고 있을 때, 농장주의 딸이 남편의 반복적인 술주정을 견디다 못해 이혼을 하고 아버지 곁으로 왔다가 순박하고 진실성도 있어 보이는 불법체류 신분의 청년에게 마음을 주었달까, 빼앗겼달까, 하여튼 결혼에까지 이르렀는데 이때부터 이 마을에 소리 없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울림
어울림 만개한 수선화 ⓒ위클리서울/ 김수복

남자가 자신의 고향 베트남에서 여동생을 데려다가 한국인 남자와 결혼을 시키고, 그 여동생이 친구를 데려와서 또 한국인 남자와 결혼을 시키고, 그 친구가 또 자기의 남동생과 여동생을 데려오고, 등등 그렇게 저렇게 각종 이유로 와 있는 베트남인들이 한 마을에 스무 명도 넘었다. 그렇다 보니 이 마을은 날마다 사람 소리, 특히 아이들 소리가 상쾌하게 노래처럼 울리고, 제아무리 바쁜 농번기가 닥쳐와도 일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없어졌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 살든 사람의 주요 관심사는 같거나 비슷하기 마련인가 보다. 사람 마음을 가장 쉽게 그리고 강렬하게 사로잡는 주제로는 아마 남녀관계를 으뜸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이 정치다. 그런데 정치와 남녀관계가 한 소쿠리에 담겨졌다면 어떻게 될까. 거기에다 매우 수상스런 돈의 흐름과 불륜 혐의까지 가세한다면? 굳이 묻거나 따질 필요도 그 소재를 일단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하면 그 어떤 힘든 일도 아마 힘들지 않게 처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은 스마트 시대이기도 하다. 스마트 이전에는 서울이나 부산의 새로운 소식이 최소한 하루 정도는 늦게 배달되었지만, 지금은 완전 실시간 중계가 되고 보니 변화무쌍을 넘어 거의 요지경 수준이고, 거리의 강아지까지도 엘시티니 특혜니 우연 같은 단어를 흥얼거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한테는 어찌 그런 우연이 한 번도 없었을까, 빌어먹을.”

“희망을 갖고 다니다 보면 우연히 사십억 원을 한꺼번에 벌 수도 있단다, 희망을 가져라 이놈아.”

두릅나무 밭 옆에서 토끼풀 뜯기에 나선 사람들을 만났다. 여기서도 최신 소식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아니 그것은 갑론을박이라기보다 웃음꽃이 야하게 활짝 피어나고 있다고 해야 옳은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것은 분명 야한 웃음이었다. 비난도 비판도 이제는 지쳐서 더 이상은 못 하겠다는 투의, 그저 실컷 웃기나 하자는 투의 그런 야한 웃음으로 고단한 삶의 활기를 보충하는 이 사람들은 토끼 키우기 훈련을 하며 태양광발전 공사가 시작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동백
동백만개한 수선화 ⓒ위클리서울/ 김수복
일명 코딱지꽃
일명 코딱지꽃 만개한 수선화 ⓒ위클리서울/ 김수복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몸은 어느새 늙어버려서, 남은 생을 어찌 살아갈꼬, 걱정에 고민에 연구를 거듭하다가 발견한 게 태양광발전 사업이었더란다. 태양광발전 사업에 투자하면 배당금이 최고 연간 삼십 퍼센트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십오 퍼센트는 된다는 말에 솔깃해서 서울의 산동네 오막살이 집 한 채를 처분했다. 그 돈의 일부를 헐어서 시골 산골짜기에 비어 있는 집을 사고, 나머지는 몽땅 태양광발전 사업에 들이밀었는데 금방 시작될 줄 알았던 이놈의 사업이 일 년, 이 년, 삼 년, 계속 연기 통지만 보내오고 있어서 이제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알고 보면 그게 또 그렇게 돼 있었던 일이었다. 초기의 태양광발전 사업자들이 환경이나 경관 등을 고려하지 않고 여기저기 아무 데나 마구잡이 사업을 벌인 까닭에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장마철에 토사가 쏟아져서 인가를 덮치는 등 재산피해를 내는 건 기본이었고, 인명피해마저 속출하자 관계 당국은 어마 뜨거라, 이게 뭐냐, 바싹 긴장하기 시작했다. 공무원들이 긴장하면 인허가 문제는 얼어붙기 마련이어서, 이 사람들이 돈을 집어넣은 태양광발전 회사가 언제 허가를 받아서 공사를 시작할지는 그야말로 나도 몰라, 너도 몰라, 아무도 몰라인 형국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이 사람들은 단순히 그냥 노후 대비용 투자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꿈도 야물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그런 꿈까지 꾸고 있었다. 그게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태양광발전 사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바로 거기에, 그러니까 태양광 판넬 아래 빈자리에 토끼를 대량 사육한다는 청사진을 그려놓고 있었다. 그래서 날마다 토끼풀 뜯기에 나서는 등 토끼 키우기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이 사람들을 보고 나면 내 마음이 참 복잡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웃어대고 싶기도 하고, 울부짖고 싶기도 하고, 화를 내고 싶기도 하고, 한달음에 달려가서 너 이놈들 거짓말쟁이 사기꾼 이놈들 나와라, 나와서 내 칼을 받아라, 하고 호령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이 복잡해질 때는 철학을 해야 한다.

말없는 눈빛으로 나를 철학의 길로 인도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은 일 년 전 어느 날이었다. 밀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지점, 이른바 기수역 부근에서였다. 오래 전부터 그곳을 지날 때마다 저기에 그물을 쳐놓은 사람은 누구일까, 늘 궁금했는데 그날 마침내 주인공을 만나볼 수 있었다.

 

소박한 어부
소박한 어부 만개한 수선화 ⓒ위클리서울/ 김수복

두꺼운 판자로 뚝딱뚝딱 지어낸 목선을 타고 다니며 그물에 걸린 물고기 몇 머리를 건져 올리는 것으로 하루의 평안을 느낀다고 하는 이 소박한 어부는 뭐랄까, 탐욕이 데굴데굴 아무 데로나 굴러다니며 나는 진실해요, 이런 진실 어디에도 없어요, 하고 외치는 것만 같은 현대 사회에서 이 사람은 완전 천연기념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현금 삼천억 원을 일시에 지불할 테니 거짓말 두 개만 해다오, 하고 누군가 제안을 하면 두 말이 필요 없이 그냥 콧방귀나 뀌고 돌아설 것만 같은 사람, 이 사람의 작업하는 장면을 한 시간 아니 삼십 분만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어항 속의 물처럼 고요해진다. 그리고 떠올라 온다. 향긋하게 단내를 풍기는 황토가.

이 사람의 작업하는 장면은 확실히 그런 게 있었다. 자연스럽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황토와 겹쳐서 내 눈에 비친다. 황토로 만든 사람, 아니 황토 그 자체가 물이 빠지는 중인 기수역에 목선을 타고 위태롭게 흔들리며 물고기 몇 마리를 건져 올리는 것만 같다.

물고기 몇 마리면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것, 다음 날이면 또 나가서 물고기 몇 마리를 건져 올리면 되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이, 무슨 믿음이 더 필요하냐고 그가 나에게 묻는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의 기술이 축적돼서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술술 나오는 세상에서 이런 사람이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는 살아 있고, 내일도 모레도 분명 살아 있을 것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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