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의 대중이여, 오르가즘 하라!
만국의 대중이여, 오르가즘 하라!
  • 최규재 기자
  • 승인 2021.04.06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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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우리에게]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위클리서울/ 그래픽=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대중은 왜 스스로 억압을 욕망하는가. 주저작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이 외에도 성혁명, 오르가즘의 기능, 그리스도의 살해 등)에서 빌헬름 라이히가 던진 이 도발적 질문은 한때 유럽 지성사를 뒤흔들었다. 지금도 여진은 계속이다.

사실 라이히의 사상은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퇴폐철학으로 오인 받아 감금되다시피 했다. 특히 가장 원초적인 성이 열려있어야 하고 청소년들의 성도 개방해야 한다는 대목이 그랬다. 성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노동자들은 건강해질 것이며, 노동은 신성시 되고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반해 인류 해방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에 모두들 당혹했다. 1950년대, 라이히는 죽기 전 세상을 향해 “내 책은 내가 죽고 60년 후에나 공개해라.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읽혀지기 싫다”고 일갈했다.

얼마 안가 들뢰즈와 가타리, 푸코 등은 라이히에 심취했고, 사후 10년도 안 돼 그는 유물론(맑스)적 정신의학(프로이트)의 창시자로 추앙받게 된다. 유럽 68혁명의 기조음이었다. 고전이 된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동저작 ‘앙띠 오이디푸스(1972)’는 라이히에 대한 헌사처럼 보였다.

라이히 스스로도 “맑스라는 아버지와 프로이트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내 사상이 태어났다”고 밝힌바 있다. 맑스와 프로이트를 한보따리에 담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이론을 통섭해낸 천재성은 여전히 인구에 회자된다.
 

​무의식 통해 파시즘 정체 파헤치다

​“당신은 왜 당신 스스로 당신의 억압을 욕망하는가.”

이런 질문을 받은 대중은 어떻게 답할까. 아마도, “뭐? 내가 억압을 욕망한다고? 난 억압이 싫어. 주체로서 투쟁할거야.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현문우답이다.

대중은 상위 계급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응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간과한다. 설령 변혁을 꿈꾸는 맑스주의자라 할지라도 억압에 순응하며 스스로 순응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성인 대중에게 현실에서 일터나 정치 집회현장의 수장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그리고 자신의 지도자를 밀쳐내기보다는 순응하며 아버지와 동일시화 한다. 응당 주체로서 투쟁할 수 없다. 세계대전 시기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추종했던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현상도 맥을 같이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라이히는 우선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끌어들인다. 남자 아이는 권위에 찬 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거세할 것 같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보통 5세까지 무의식적으로 형성). 자신이 어머니를 욕망한다는 이유 때문이다(여자 아이로 바꿔 읽어도 된다. 아버지를 욕망하기에 어머니가 자신의 성기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공포-‘일렉트라 콤플렉스’).

대중은 어머니를 욕망해선 안 된다는 ‘오이디푸스 삼각형(아버지-어머니-자신)’ 안에 갇혀 길들여져 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니 엄마 건들거나 까불면 고추를 잘라버리겠다”는 식으로 겁박하고 이는 아이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가부장제 기저에는 성억압이 도사린다. 자신을 거세할 것 같은 지도자(아버지)의 권위에 감히 대항할 수 없다. 성억압은 오르가즘에 대한 두려움으로까지 이어진다. 오르가즘은 불경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흔히 이런 상황에서 성장하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극복 과정을 겪는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지도자)와 화해(혹은 타협)하고 저항 능력을 상실한 채 사회적으로 아버지(지도자)를 인정하는 상황. 과연 극복되었을까. 극복이 아닌 미완의 인간상, 그것이 라이히가 말하는 파시즘의 기원이다.

 

2021년 재보궐선거유세 모습
2021년 재보궐선거유세 모습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2021년 재보궐선거유세 모습 ⓒ위클리서울/ 왕성국 기자

 

​성에너지 위축되면 노동력 저하로

이 때문에 라이히는 청소년기부터라도 자유로운 성생활을 권장한다. ‘어설프게 살다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극복될 수 없기에’, 초장부터 정면으로 투쟁하고 나서라는 요구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조기 성교육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가 정신분석학파와 공산주의 진영에서 퇴폐 학문이라 오인 받고 축출 당했다.

여기서 성적 타락과 성적 해방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성 해방’이라는 문구가 프리섹스를 일컫는 것은 아니다. 라이히는 성의 무질서와 퇴폐적인 섹스산업을 비판하며 이것들이 사도마조히즘, 도착증 같은 성 왜곡을 일으켜 ‘오르가즘의 곤궁’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성병과 관련한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가 풀리는 전제로, 청소년은 청소년들끼리 성인은 성인들끼리의 자유로운 사랑을 통해 잠재되어 있는 성적 억압에서 깨쳐 나와야 비로소 자유를 얻고 권위에 도전할 수 있다고 피력한다.

라이히의 주요 분석 대상인 신경증적 성격은 오르가즘 능력을 잃을 때 생겨난다. 여기에서 오르가즘은 단순한 성적 흥분의 절정이 아니라 ‘아무런 장애 없이 생체에너지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능력’이다. 이런 흐름이 막힐 때 한 인간은 내부와 외부의 강압적 도덕 내지 규범 통제에 순응하는 상황으로 몰린다. 무의식에서 자기방어는 정신적으로 ‘성격무장’, 신체적으론 ‘근육무장’으로 나타난다. 인간구조는 심리적 물리적으로 기계화될 수밖에 없다.

성이 억압되는 사회일수록 ‘내 몸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한탄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성에너지를 써야 할 때 제대로 쓰지 않아 몸에 병이 드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환자화 되면서 노동력의 저하로 이어진다고 라이히는 의사로서 진단한다.

따라서 제발 열심히 사랑하고 오르가즘을 느끼고, 그 에너지로 신성한 노동력을 증강시켜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진다. ‘오르곤 에너지’가 암도 고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말년에 오르곤 에너지를 ‘우주의 기운’ 식으로 표현했다가 고초를 당하기도 했지만.
 

욕망 해방이 계급 해방

거듭하자면, 라이히는 가장 원초적인 성이 오히려 열려있어야 성범죄나 도착증이나 신경증 환자 등이 줄어들 것이고, 그로 인해 만국의 노동자들은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파시즘은 소멸되고 동시에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투쟁력이 복원, 노동은 신성시 되고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반해 인류 해방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로이트와 맑스가 만나는 지점이다.

성억압은 혁명(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맑스의 강령)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다. 성적 억압으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인내하고 통제하는 특성을 가지지만, 무지막지한 이런 억압은 자유에 대한 억압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체는 막상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작품이 가지는 고고함에 도달하지 못한다. ‘오르가즘의 상실’로 생체적-노동적 피로에 의해 예술가가 표현하는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이다. 고로 성해방을 통해 건강한 육체, 건강한 노동을 쟁취해 훗날 인류의 모습 그 자체가 위대한 예술작품에 버금가는 코뮨이 되리라는 희망을 던진다. 코뮨을 향한, 이른바 라이히의 생체적 유물론이랄까.

그러니 만국의 노동자여 오르가즘을 느껴라! 그것이 맑스의 역사철학을 계승하는 길이렷다! 이상적인 코뮨을 이루기 위해선 성해방이 필수고, 그것이 유물론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게 라이히의 호소다.

라이히는 세상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사랑 행위를 할 때, 성억압으로부터 벗어날 때 지도자(아버지)의 권위는 무너지며 성해방(피라미드식 구조에서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하부구조)은 노동해방(경제 하부구조)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모두가 평등한 코뮨이 완성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성해방이라는 개인사가 노동해방이라는 정치경제와 조응할 수 있는 매개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만 남았다. 답은 아마도 프롤레타리아트의 건전한 규합일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방법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욕망이 해방되면 계급도 해방될까. 이 시대의 난제다. 안타깝게도 역사의 진보는 더디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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